자다 깨서 그리고, 애들 보면서 그리고, 밥 하다가 그리고, 커피 마시면서 그리고, 비행기에서도 그렸다. 백팩에 항상 종이 몇 장과 물감, 펜을 넣어 다녔다. 공치는 날도 있었지만 어떤 날은 짧은 시간 동안 꽤 맘에 드는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릴 게 없는 날은 사진첩을 둘러보았다. 그러면 오래전 기억이 떠오르고 그 기억을 종이에 그려나갔다.
그러다가 전시를 하기 위해 그동안 그린 그림을 쭉 세워놓고 보았다. 부끄러운 그림도 있었지만 괜찮게 느껴지는 그림도 있었다. 몇 개의 그림은 길게 생각하지 않고 쓰레기통에 버렸다. 또 어떤 그림들은 액자를 맞추기 위해 모아 놓았다. 내가 머릿속에 생각하고 있던 이야기의 흐름이 어렴풋이 보이는 것 같아 행복했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이런저런 생각하지 않고 붓을 들고 그리다 보면, 어떤 방향을 찾게 되니, 지금 당장 내 앞이 안개처럼 뿌옇게 느껴지더라도, 우선은 그리자는 것.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고 무조건 시작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