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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다

죽음

나무는 빗물과 토양의 영양분을 뿌리에서 흡수하여 가지를 뻗고 열매를 가꿔낸다. 즉,  땅에서 하늘로 성장한다.  환자는 그와 반대다.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와 치료되는 구조다. 폴대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수액들을 infusion pump라는 장치가 일정한 속도로 침상 위의 환자에게 주입되도록 도와준다. 수액은 선을 타고 환자의 쇄골 아래에 위치한 c-line이라는 뿌리에 도달하게 된다. 그 과정을 통해 수액이 환자의 혈관을 타고 순환 혈액량을 증가시키고 영양을 공급한다.


어떤 약물은 50/30까지 떨어진 환자의 혈압을 120/80까지 올린다. 이를 승압제라고 부른다. 혈압을 올리는 약이라는 뜻이다. 소변을 많이 나오게 하는 약물도 있고(이뇨제) 억제하는 약도 있다. 이처럼 수액 치료는 환자 치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능을 한다. 저승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이승으로 돌려보내는 중계자 같은 역할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죽음(의료진은 expire 했다고 표현한다) 앞에서는 수액 주입도 전부 무용지물이 된다. 지금부터 그 과정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환자의 자리에는 커튼이 쳐져 있다. 옆 환자가 보기에 좋지 않은 장면이기 때문이다. 가끔 나에게 그 상황을 묻기도 하고, 나에게 불안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제일 먼저 EKG 리듬이 일직선이 되면(expire을 하면) 인턴 콜을 한다. 그럼 그분이 사망 선언을 한다. 이렇게.


O시 O분 OOO님 OOO(질병명)으로 사망하셨습니다.


보호자도 사망 선언을 같이 보는 경우가 있지만 이번 경우는 그러지는 않았다. 여하튼 사망이 선고된 후로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expire 한 환자의 침대 위에 대롱대롱 달려져 있는 수액은 단두대의 이슬처럼 처형된다. 위에서 아래로 내쳐진다. 수액은 차가운 scissor(가위)에 의해 반으로 잘린다. 잔여물은 환자의 생명 연장을 언제 했냐는 듯이 꾸르륵 소리를 내며 싱크대 바닥 하수구로 사라진다. 발가벗겨진 잔해들은 제 역을 다 했으므로 폐기물 통으로 사라진다. 열매들이 시라 졌으므로 infusion pump도 의미 없다. 나뭇가지(pole대)에서 분리되어 물티슈와 같은 형식으로 된 크리넬이라는 제품으로 닦여져 창고에 제 자리를 찾는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블로그 (아래 링크)


이제 뿌리를 떼어낼 차례다. c-line을 제거해야 한다. cut scissor로 c-line 봉합 부위를 잘라내고 4x4거즈로 지혈한 후에 베네스톡이라는 반창고로 고정한다. 출혈을 방지하기 위해 모래주머니를 c-line을 제거한 부위에 둔다.


foley catheter(환자에게 말할 때는 소변줄이라고 말한다)도 제거해야 한다.

<이미지 출처>

- http://www.indiamart.com (좌)

- https://www.google.co.kr/amp/s/vitalitymedical.wordpress.com/2011/11/08/what-is-the-difference-between-a-foley-and-intermittent-catheter/amp/ (우)


보통 폴리 카테터는 멸균 세트와 함께 세팅된다. 왼쪽 사진을 기준으로 말하자면, 밑에 한 갈래짜리를 환자의 방광에 넣는다. 나머지 두 갈래도 중요한 기능을 한다. 두 갈래 중에서 아래쪽 부분에 소변이 나온다. 소변이 나오는 것이 확인되면 bag을 연결시켜 소변이 고이게 한다. 그 후에 윗부분(빨간색으로 처리되어있는 곳)에 주사용수를 10cc가량 넣는다. 그럼 우측 이미지처럼 카테터가 부푼다. 카테터를 살짝 빼서 밀리지 않는다면 방광에 잘 고정된 것이다.


대략적인 foley catheter 삽입 과정을 서술해보았다. 하지만 죽음을 맞이한 환자에게는 이를 역으로 시행해야 한다. 방광 속에 이미 부풀어진 풍선을 빼내기 위해서는 빈 주사기로 빨간 처리된 부분에 연결해 바깥으로 쭉 밀어내야 한다. 그럼 풍선 속의 주사용수가 빠져나온다. 그 후에 침대에 고정된 소변 백을 제거해 잔여물은 의료폐기물통 속으로 처리한다.


보호자에게 돌려줘야 할 환자의 물건도 챙겨야 한다. 찬장에서 까만 비닐봉지 두여 개를 꺼내와 환자 칸에 있는 물건을 전부 챙긴다. 물통은 물을 비우고 난 후에 넣어야 쏟아지지 않는다. 가끔 기저귀와 물티슈를 안 받는 보호자도 있다. 남은 물품은 기저귀나 물티슈가 필요한 다른 환자(보호자가 없는 환자, 보호자가 물품을 사 오지 않는 경우 등)들에게 요긴하게 쓰인다. 나는 그럴 경우에 조그마한 나눔을 제공해주신 분에게 정중히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린다. 그러고 나서 마지막 가는 길 잘 가시라고 한번 더 빌어드린다. 내 기도가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기관삽관을 한 환자의 경우에도 폴리카테터와 비슷한 원리로 제거한다. 고정하기 위해 풍선이 부풀려져 있는데 이를 제거한 후에 기도 속에 삽입된 관을 꺼내면 된다.


돌발상황도 부지기수로 일어난다. 코와 입에 피나 잔여물을 토하며 expire 하는 경우가 그 예다. varix bleeding(식도정맥류), LC(간경화) 환자가 대부분인데 이럴 때는 열심히 suction(흡인)을 해야 한다. 코를 석션하면 입으로 피가 나오고, 입으로 석션하면 코로 피가 콸콸 넘치던 그 상황을 아직도 기억한다.


환의의 단추가 제대로 채워지지 않았으면 정리하고, 피부가 더럽혀졌다면 다시 한번 닦은 후에 시트로 환자를 가린다.


그럼 장례식장에서 운반차를 끌고 온다. 중환자실 인력들이 다 같이 합심하여 환자를 들어 올리고 나면 침대 위는 언제 환자가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휑해진다. 환자를 모니터 하기 위해 세팅한 선 줄만 널려 있을 뿐. 그것들과 침대를 닦아내고 주변 정리를 하면 이제 진짜 사망 환자 정리는 다 했다.


처음에는 이 과정이 너무도 무서웠다. 시체를 본다는 생각에 섬뜩했다. 보조 여사님 중에서 expire 환자를 운반차에 들어 올리는 것을 거부하는 분도 있었다. 하지만 수없이 하다 보니 이제는 무뎌진 것 같다. '너 왜 이렇게 감정이 메말랐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러지 않으면 일을 못한다. 그리고 나도 인간인지라 가끔은 구석에서 눈물을 훔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여러 생각이 들기도 한다. 수많은 보호자의 슬픔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분도 있지만 되려 외면받는 경우도 많다. 살아가면서 빈부격차가 있듯 죽음에도 빈비격차가 여실히 존재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 역시도 모두가 나를 찾고, 보고 싶어 하고, 그리워하는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번뿐인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도록 성실하고 반듯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또한, 죽음은 이승의 모든 물질적인 부분과 단절된다. 돈 오만원을 환자 주머니에 넣으면 생명연장이 될지도 모른다는 미신을 믿은 보호자가 환자복에 오만원을 넣었었나 보다. 환자의 사망 이후, 나에게 '주머니에 오만원이 있으니 돌려달라'는 말을 했었다. 이 사례를 보고 난 여실히 깨달았다. 죽음은 정말 빈 손으로 가는 거구나. 이 일을 겪고 나는 더 많은 물질을 얻기 위해서 과욕을 부리는 것을 삼가야겠다고 다짐했다.


마지막으로 드는 생각은 주변 사람들에게 내 진심을 평소에 전달해야 후회가 없다는 것이다. 죽은 자에게 '사랑해, 고마워, (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고생만 하다 가네, 잘 가'라고 말하는 보호자를 정말 많이 봐왔다. 그들의 목소리에는 미처 말하지 못한 후회의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내가 이 글에서 가장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있을 때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있을 때 잘 해도 더 잘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 바로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데 오늘만큼은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한다는 한마디, 고맙다는 말 한 번이라도 해보면 어떨까? 정말 의미 있는 하루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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