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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ologue

모두를 침묵하게 만드는 마법의 한마디, ‘중환자실 간호사인데요’

내 직업이 뭐냐고 묻는 사람이 부쩍 많아졌다. 이제 얼굴이 학생 같아 보이지 않아서 그런가보다. 이런 데서 세월의 흐름을 직격탄으로 맞고 있다. 날짜 따위가 바뀌는 건 전혀 의미가 없다. 삼교대 근무를 하고 나서부터 오늘이 몇 월 며칠인지에 대한 흥미를 완전히 잃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카페에 일하는 동생을 보러 갔을 때도 그 말을 들었다.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는데 어떤 남자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아니, 도발했다.

“저는 극한 직업이에요.”


난 보통 직업에 대한 말을 아낀다.

하지만 저 말을 들은 순간 나는 0.1초도 주저함 없이

“저도 극한 직업이에요.” 되받아쳤다.

이유는 모르지만 그러고 싶었다.


남자는 지지 않았다.

“일할때마자 최악의 순간에 부딪혀요.”


슬슬 오기가 생겼다. 내가 이길 것 같은데. 그런데 이런 걸로 이기면 뭐하나. 씁쓸한 마음도 들었지만 이대로 질 수는 없었다.

“저도 그래요. 제 일상 자체가 최악의 순간입니다.”


동생은 나에게 그만 말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여하튼 내 반응을 보고 남자는 내가 무엇으로 먹고 사는 지 무진장 궁금했나보다.


“그래서, 직업이 뭔데요?”


곧바로 반격했다. “중환자실에서 일해요.”


전류처럼 톡톡 쏘고 찌릿찌릿했던 남자의 입은 내 한마디에 정전되고야 말았다. 그러고는 꼬리를 내렸다.


“인정. 저는 시체 못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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