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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다

소소한 행복

 ICH(Intracranial Hemorrhage)로 누워 계시는 할아버지 한 분이 계신다. 할아버지는 하루종일 누워 계신다. 자극을 줘서 깨워야 겨우 일어나신다. 왼쪽 눈을 못 뜨시는 걸로 봐서 오른쪽 뇌의 혈관이 잘못된 것 같다. 수술한 오른쪽 머리는 빡빡 깎여 있고, 수술한 흔적이 있는 자국에는 베타딘(소위 말하는 빨간 약)이 발려 있다. 뇌 수술을 하고 나서 배액관을 달았지만 할아버지 상태가 호전돼서 뺀 듯 싶다. 하루종일 눈 감고 있는 사람에게 구강으로 식사하는 것은 무리다. 그래서 코에는 l-tube(콧줄)이 달려 있다. 이 줄로 영양액도 공급하고 약도 들어간다. 이가 있긴 하지만 드문드문 빠져 있다.


 아침 일곱 시. 정신 없이 인잭을 하다가 할아버지 차례가 됐다. 피딩 통과 영양액도 할아버지 카트 위에 무심히 올려져 있었다. 인잭을 하고 바로 피딩을 달아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그 계획은 1초 만에 깨졌다.


보호자가 정신 없이 할아버지를 깨우고 있었다. 외양으로 보아하니 할아버지의 부인과 아들 같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꿈쩍도 않으신다. 이러다가 할아버지 주무시는 것만 보고 면회를 마치지 싶다.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이대로 지나치기에는 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인잭을 주면서


“할아버지!” 흔들어 깨우니 어르신의 오른쪽 눈이 갑자기 커졌다. 이내 ‘얘는 왜 나를 깨워.’ 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신다. 할아버지의 꿀꿀한 기분과는 정 반대로 보호자의 얼굴에는 화색이 돈다.


“어이구, 내가 깨울때는 안 일어나더니 아가씨가 깨우니 일어나네.”


나의 사소한 행동이 그들에게는 큰 기쁨임을 잘 알고 있다. 행복이란 건 거창한 데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옆에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할아버지를 이왕 깨운 김에 지남력도 파악하고 보호자에게도 좋은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대뜸 물었다.


“이 분은 누구에요?” 물으니 할아버지는 나를 쳐다보신다.


“어르신, 저 말고 오른쪽을 보셔야죠.” 내 말을 듣고 오른쪽을 쳐다보시더니 띄엄띄엄한 목소리로 “우리 집 식구.” 라고 말씀하신다. 할머니의 얼굴에는 ‘나 완전 기뻐요.’ 아우라가 감돌았다. 그래요 이왕 하는 김에 한번만 더 해봅시다.


“여기 왼쪽 분은 누구에요?” 물으니 천천히 왼쪽을 쳐다보신다. ‘장남’이라고 말씀하시기에 “장남이요?” 되물었다. 할아버지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지더니 “장남 말고 처남.” 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요, 맞아요, 잘했어요. 다른 구역은 몰라도 여기만큼은 행복 뿜뿜이다. 잔치 분위기 같다. 피딩까지 다 달고 나니 앞에서 나를 찾는 소리가 들린다. 후다닥 가려고 하니


“아가씨, 고마워요.”

할머니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나에게 고맙다고 하셨다.


그분들이 작은 것에 기쁨을 누리듯 나도 작은 행동에 알게 모르게 보람을 느끼고 있다. 힘들다고 못해먹겠다고 때려치우고싶다 해도 가끔 기분 좋은 일 하나로 나쁜 마음이 사그라질때가 있다. 지금이 이런 시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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