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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ologue

할아버지

이브닝에서 나이트 넘어가는 시점인 열시 사십분부터는 열한시 바이탈을 해야 한다. 우연히 스쳐지나가는 자리에서 인계를 하는 목소리 한 마디가 들렸다.


“할아버지는 내일 아웃가면 되고.”


안돼.. 머릿속에 혼란이 생겼다. 나름 내적 친분이 생긴 할아버지 한 분이 계신데, 내일 병실로 간다는 뜻이다. 이대로 할아버지를 보내면 후회할 것만 같다.


사실 내가 할아버지를 좋게 생각한 이유는 며칠 전, 저녁 면회 시간에 죽을 먹여드리는 할머니에게 “이거 아가씨도 좀 줘.” 라고 소소한 웃음을 줬기 때문이다.


남이 먹던 죽 주면 누가 좋아하겠냐는 할머니, 그 와중에 흐뭇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할아버지, 온 몸이 부서지는 듯한 몸을 삐걱거리며 “마음으로만 받을게요. 고맙습니다.” 한마디 하고는 일을 해야 하는 나. 대충 이런 상황이였다.




아무도 나한테 그런말을 한 적 없었다. 스스로 음식을 떠먹을 수 없는 상태에서 누군가에게 음식을 줄 생각을 하는 건 폭넓은 생각을 해야 가능한 일이다. 생과 사가 달린 일에 나에게 ‘생’을 주겠다는 뜻 아닌가? 나만의 합리화를 하면서 그때부터 할아버지를 눈여겨봤다.


며칠간 할아버지를 관찰(?)한 결과 화법 역시 내가 좋아하는 종류였다.


예를 들자면, 배에 멍이 들 정도로 아픈 주사인데도, “하나도 안 아파.”, “비계가 많거든.” 씨익 웃으신다. 위트와 유머와 재치가 넘치는 분이다. 그래서 할머니도 매 시간에 면회오셔서 정성을 다하시는 듯 하다.


할아버지의 대변을 치워야 하는 상황. 할아버지는 거구다. 옆으로 할아버지를 끌어올리는 행동도 상당히 힘에 부친다. 사실 나만 힘든 건 아니다. 본인의 몸을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할아버지도 상당히 지치는 상황이다. 이마와 콧잔등이 그것을 증명해준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마지막에 늘 ‘고맙다.’고 말씀하신다.


이런 할아버지를 떠나보내야 하다니. 환자가 많아서 해야할 일이 많고, 예민한 사람까지 있어서 가뜩이나 지치는 상황에서 할아버지는 나에게 작은 힘이였는데.



“어르신, 내일 병실 가신대요.”

“내가?”

“네. 이제 저 못봐요. 내일은 쉬거든요. 할아버지 거기 가서도 잘 지내셔야 해요.”

“잘 쉬어. 다음에 또 만나자.”

“안돼요 할아버지. 우리 다시는 보지 말아요. 여기 오면 건강이 안 좋아졌다는 건데..”

“언젠가는 또 보겠지. 그동안 잘 대해줘서 고마워요.”


짤막한 인사가 끝났는데도 할아버지는 내 손을 끝내 놓지 않으셨다.


할아버지 부디 가기서도 안녕하세요. 우리 다시는 보지 말아요. 제 얼굴 보면 좋은 것 하나도 없어요. 이것 역시 제가 말할 수 있는 최선의 말입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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