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생각하다

혼자서 환자 옮기기

“00야.”

“네.”

“영상의학과에서 내려오래.”


시간을 보니 6시 40분. 하필이면 이 시간이야. 일곱시 바이탈 해야하는데. 갔다 오면 나는 환자 침대 정리도 하고 급하게 바이탈도 돌아야 한다. 분명 보호자 면회 시간이랑 겹치겠지. 보호자는 담당간호사도 아닌 나에게 환자 상태가 무어냐고 꼬치꼬치 물을 것이다. 일분 일초가 중요한데, 스피드 있게 일을 해야 하는데, 그런 상황이 오면 난 해야 하는 바이탈도 못하겠지.


어찌할 줄 몰라서 발만 동동 구르다가 ‘00야, 다 했어?’라고 물어오면 ‘아뇨, 이러이러하느라 못했어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변명을 하겠지. ‘그래, 얼른 해.’가 ‘너 때문에 집에 못가잖아.’라고 들릴 지 모르겠다. 끔찍해. 이런 상황이 나올까봐 그저 한숨이 나온다. 나 때문에 함께 일한 모두에게 폐가 되고 싶진 않다.


그 할머니 자리를 지나갈때면 또 ‘간호사가 주사를 못 놔서~’ 꿍시렁꿍시렁거리겠지. 본인 혈관이 안 좋은 줄 모르고 그저 간호사 탓이다.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은 사람들이 한 사람 혈관 못 찾는 건 그 이유 밖에 없다. 며느리한테 전화 걸어 달라며 고래고래 소리 치고, 전화를 건네니 목 터져라 간호사 욕만 한가. 간호사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못된 유형의 환자다. 그 와중에 의사에게는 교수’님’ 호칭 꼬박꼬박 붙이는 아이러니함. 저기요, 교수’님’께서 혈관도 없는 사람 찔러서 피검사 나가라고 했거든요. 그런 건 일절 알고 싶어하지도 않겠지. 나보다 몇 갑절은 오래 살아온 사람이고, 오늘의 일도 지난 모든 날의 합이다. 그런 사람에게 내가 뭐라고 말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나. 욕만 먹겠지. 애초부터 간호사에게 신뢰가 없는데 내가 뭣하러.


 한쪽 귀로 흘려보내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그게 안된다. 그래도 노력해야겠다. 생기지도 않은 일 걱정하지 말고 마음을 비워야겠다. 이런 생각은 정신건강에 해로우니까. 내 노동에도 끝은 있을지어다.




 chest decubitus를 찍으러 가야 했다. 나의 완벽한 계획은 6시 10분 쯤에 찍으러 가는 것이였다. 6시 바이탈, 비에스티도 다 했다. 약도 전부 먹였고 마약 타러 약국도 다녀 왔기 때문에 엑스레이만 찍고 오면 만사 형통이다.


영상의학과로 전화를 걸었다. 세 번이나 받지 않았다. 도무지 전화를 받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화가 치밀어올랐다. 수화기를 ‘탁’ 소리 나게 내던졌다. 없던 분노조절장애가 생긴 듯 하다. 요즘 나는 사소한 일에 화가 나는 습관이 생겼다.


암, 뇌졸중, 등등 돈 많이 들고 견디기 힘든 질병은 스트레스가 원인일 때가 있다. 난 아직 살아갈 날이 많다. 가고 싶은 곳도, 먹고 싶은 것도 천지다. 하루하루 먹고 살려고 아등바등하다 병에 걸리면 누구 탓을 돌리리? 진상 환자, 안 좋은 소리만 하는 사람들 때문이라고 말하면 누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여줄까? 다들 개소리라고 하겠지. 그렇게 되면 어태 일한 것도 허송세월이다. 머리에 기분 나쁜 전류가 흐르는 느낌이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영상의학과에서 전화를 안 받는다고 보고하니, 응급 영상의학과로 말해보라 하신다. 응급영상의학과로 전화를 거니 수화음 두 번 울리고 바로 받는다. 자초시종을 말하니 내 나이 또래의 젊은 남자가 ‘지금 바빠서 전화 못받을거예요. 조금 있다 다시 한 번 걸어보세요.’ 무미건조하게 말한다.


분명 병동부터 먼저 찍고 있을 것이다. 중환자부터 먼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항상 병동부터 찍고 우리는 맨 마지막이였다. 책상에 앉아서 스마트폰만 만지며 칼퇴만 고민하는 사람이 생각한 정책일 것이다.




한쪽 발에 cast를 하고 있는데다가 거동까지 불편한 할머니를 휠체어에 앉히는 건 상당히 고된 일이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힘이 부친데, 코에는 nasal prong이 대롱대롱 걸려져 있고 소변줄까지 달려 있어 상황은 극악이다.


날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인계 중인데 누구한테 말하겠어. 액팅 뛰는 후배 한명이 있는데, 걔한테 말하기도 좀 그랬다. 어차피 오늘 하루종일 뛰다가 방전될텐데 초장부터 파김치를 만들게 하고 싶진 않았다.


10초만에 능숙한 솜씨로 후닥닥 모니터를 정리한 후에 휠체어를 고정했다. 난 할머니와 정면으로 마주보는 자세로 있었다. 양쪽 팔을 할머니 어깨에 깊숙히 넣어 지탱했다. 할머니를 들어 올리려고 다리와 팔에 힘을 줬다.  왼쪽 손에는 폴리카테터를 들었다. 팔이 저려온다. 그래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자칫 하다 넘어지면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격이다. 힘들다, 버겁다, 고생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마음속으로 계속 되뇌었다. 할머니는 거동을  못 해서 다리를 바닥에 딛는 것조차 무서워했다.


“천천히, 천천히.”

“알겠어요. 천천히 가요.”


이끌고 가는 나도 힘들지만 할머니는 남에게 자신의 몸을 맡긴다는 불안감이 커 보였다. 상황을 모면하려는 듯 자신만의 주문을 중얼거렸다.


할머니의 고집은 상당했다. 저를 잡으세요, 라고 말했는데도 내 손을 뿌리치고는 휠체어 난간에 의지했다. 일분 동안 실랑이를 벌이다 겨우 자리에 앉혔다. 심장병 환자는 감기에 쉽게 걸리기 때문에 이불을 덮어 달라고 신신당부하시기에 담요를 덮어드렸다. 휠체어에 태우는 데만 오분 넘게 걸렸다. 등에 땀이 흥건하다. 휠체어에 앉은 순간부터는 오로지 내 몫이다. 빠르고 안전하게 이송하면 시간을 번다. 이제 곧 퇴근한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단숨에 휠체어를 끌었다.


그럼 뭐하나. 먼저 엑스레이를 찍는 사람이 있어서 기다려야 하는데. 앞에서는 요양보호사 분과 어르신 환자 한분이 의자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도 의자에 앉아서 할머니와 대화를 했다.


환자들이 나에게 나쁜 말만 하진 않는다. 좋은 말도 많이 해주신다. 특히 할머니들은 시집 잘 가라, 좋은 남자 만나라와 같이 주로 남자와 관련된 얘기를 하신다. 그분들 세대는 특히나 결혼이 발목 잡는 시절이였으니 충분히 이해가 간다. 결혼에 대해 생각한 적은 없어서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필요성을 느끼진 못하겠다.


할머니도 나에게 한마디 하신다. 얼굴에 살집이 있고 둥글넙적한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고 하셨다. 손으로 동그랗게 제스처를 취하시는데, 기운 없는 할머니가 만들 수 있는 최선의 동그라미였다. 너는 꼭 그런 사람 만나, 류의 진심이 느껴졌다. 저는 턱이 갸름한 사람이 좋다고 하니, 그런 사람은 복이 없단다. 얼굴형이 동그래야 무난히 살아간다던데, 나는 잘 모르겠다. 갸름한 사람이 좋아.


할머니 차례가 돼서 엑스레이를 찍고, 한번만에 엘리베이터를 타서 중환자실에 도착했다. 아까보다는 수월하게 침대에 몸을 뉘이고, 할머니 몸을 좀 더 위로 가게 했다. 빛의 속도로 모니터를 설치하고, 바이탈을 하러 갔다. 오늘도 힘든 하루였다. 일을 해서 무엇을 얻은 지는 모르겠지만, 얼마 안되는 돈이라도 벌 수 있어 감사하다고 생각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생각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