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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ologue

기억에 남는 할아버지

“할아버지.”

“네.”

“할아버지는 정말 차분하시네요. 치료도 잘 받으시고요. 간호사에게 존댓말 쓰는 분은 드문데.”

“하하.”

“할아버지는 젊었을 적에 무얼 하셨나요?”

“농사 짓고 했지. 그걸로 아들 다 키웠어요.”

“고생이 많으셨네요.”

“고생 많이 했지.”




나와 대화를 했던 할아버지가, ABGA도 점점 안 좋아져서 기관삽관을 하고 벤츄리를 달았다. 그걸로도 안 되는지 벤틸레이터로 바꿨다.


진정제, 승압제, 항부정맥제, 팩셀로 할아버지의 c line은 난장판이 됐다. 꼬인 줄을 푸는 것도 시간이 만만치 않았다.


시간이 흘러 할아버지의 왼쪽 손은 necrosis가 왔고, 오른손은 부종으로 빵빵했다. 손으로 꾹 눌러도 피부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자극에 더 이상 반응하지 않았고, 가끔 끔뻑끔뻑 뜨는 눈은 나와 대화했던 시절의 또렷한 눈빛이 아니였다.


보호자도 포기했는지 DNR 동의서에 서명을 했다.




이틀 쉬고 출근하니 할아버지 자리는 흔적도 없었다. 대신 다른 환자가 누워있었다.


요 며칠간 많이 바빴다. 누군가에게 할아버지에 관해 물어볼 기회도 없었다. 할아버지의 소식을 찾아볼 시간도 부족했다.


그러다가 나이트 근무 어느 날, 시간이 남아서 그제서야 할아버지의 상황을 봤는데


expire


눈물이 핑 돌았다.

평생 농사만 짓고, 고생하다 여기 왔다며 웃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생각났다.

할아버지의 매력은 부드러운 백발 머리칼, 밑으로 쳐진 눈꼬리, 선한 얼굴과 어울리는 부드러운 말씨였는데.

마음이 먹먹하다.


할아버지

거기서는 고생하지 마세요.

안녕히 가세요.

안녕히.. 부디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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