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각설하고, 그 전화는 바로 수능 성적이 나온 후에 쓴 사 년제 대학에 합격했다는 내용이었다. 애초부터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지만 합격했다는 말에 눈동자는 흔들, 심장은 쿵쿵거렸다.
5초 동안 고민하다가 나도 모르게 죄송하지만 등록하지 않겠다는 말을 했다. 그분은 사무적인 말투로 알았다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담임선생님은 간호과에 떨어지면 어느 대학에 갈 거냐고, 재수를 할 수는 없지 않겠냐며 4년제 대학에 원서를 작성하라고 했었다. 싫다고 우기던 나에게 자꾸 이렇게 행동하면 간호과에 대한 진로상담은 일절 하지 않겠다는 협박을 해 왔다.
그 당시에는 그분의 말이 진리인 줄 알았다. 결국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가, 나, 다군에 원서 세 개를 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서야 돈을 줘야 음료가 나오는 자판기처럼 그분은 간호과가 있는 학교를 기계처럼 추천해줬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그분이 사 년제 대학에 로비를 받았다는 소문을 들을 수 있었다. 사실이든, 거짓이든 그것은 나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럴 줄 알았다. 그럴 것 같던 사람인지라 '그 선생님은 그런 행동을 할 사람이 아니야.'라고 자위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우등생이 아니고, 우리 아빠 역시 우체국장이 아니었다. 나는 아버지의 업을 부끄럽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그 자가 나를 이런 생각을 하게끔 만든 거다.
힘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그런 어른이 되지 말아야지.'라고 속으로 끊임없이 되새김질을 하는 것뿐이었다.
뭐 하나 내세울 것 없는 나는 마음속에 또 하나의 상처만 입었다.
끊임없이 앞으로만 달려가는 버스, 하하호호 웃으며 가족끼리의 식사를 하는 사람들, 미니 붕어빵을 먹으며 행복해하는 아이들, 그 광경을 관조하다 이내 걱정에 잠기고야 말았던,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나.
하지만 이런 망상에 잠겨 있을 시간도 내게는 없었다. 내일은 어느 학교의 간호과 면접을 볼 수 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