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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다

내가 덩치 큰 남자였더라면

일하면서 멍 때리면 안되는데. 나도 모르게 멍하니 방구석을 쳐다보다가 흠칫했다. 욕짓거리가 나오는 곳으로 시선을 향했다. 한 아저씨가 부인 같아 보이는 중년 아주머니를 타박하고 있었다. 한 줄 요약을 하자면 ‘왜 아프고 지랄이야. 씨발년이.’ 였다. 아주머니는 저항은 커녕 죄인마냥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무슨 이유로..


내가 허우대 있는 남자였으면 다가가서 말렸을텐데. 혹은 신규였다면 특유의 패기로 똘똘 뭉쳐 자초시종이라도 물어봤을텐데. 예전에 환자에게 주먹으로 눈을 얻어맞고 나서는 그런 싸움에 끼여들기 싫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건 싸움도 아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나뉘어 있는 영락 없는 폭력이다.


상담을 받을 타이밍이 돼서 복도에서의 고성방가는 일단락됐다. 하지만 나의 찝찝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일하다가 여유로워질때면 아주머니의 슬픈 얼굴이 생각났다. 아파도 서러운데 남편까지 저런 대접을 하면 정말 살고 싶지 않을 것 같다.


저런 언어폭력은 하루아침의 일이 아니겠지. 결혼하면서부터 계속 당하고 살아왔던거겠지. 지금 이 순간만 꾹 참고 넘기면 되겠다는 생각이 쌓이고 쌓여 주름살이 하나 둘 늘어났겠지.


이건 아주머니의 잘못이 아니다. 본인이 하는 말이 부인 뿐만 아니라 주변사람에게도 민폐라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남자의 잘못이다.


그 아주머니에게 난 그 어떠한 위로와 보호막이 되어주지 못했다. 내가 덩치 큰 남자가 아니여서..... 라는 핑계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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