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다

그저께 오후 일곱 시 삼십 분경에 벌어진 일이 나에게 매우 충격으로 다가와 짤막한 글을 남긴다.



대출한 책의 기한이 다 됐다. 저번처럼 연체돼서 읽고 싶은 것들을 빌리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길까 봐 이번에는 반드시 제 기간에 반납하기로 결심했다. 피곤하지만 도서관 방향으로 굴러가는 버스에 지친 몸을 맡겼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책을 읽었다. 벌써 저녁 7시다. 배가 출출해져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의식은 현실이 되어 도서관을 지나 우리 집 쪽으로 길을 향했다. 초등학생 무리가 내 뒤를 지나가고 있었다.


"우리 엄마 간호사다." 어떤 학생이 말했다.

나는 괜스레 솔깃해져서 일부러 천천히 걸어가며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


우리 엄마 간호사? 뭔가 자랑하려는 내용 같은데. 과연 주변 친구들이 무어라 반응할까? '오~ 진짜? 우와~' 이런 식일까?


는 무슨.


내가 간호사 야동을 봤는데, 야동에서 간호사가 따X힌다니 어쩐다니. 야동 배우가 간호사 코스프레 옷을 입고 야동을 찍는다나 뭐라나. 자기는 풀로 봤다나 뭐라나.


와, 멘붕. 살다 살다 그런 말을 대놓고 들은 건 처음이었다. 내가 그 나이였을 때는 학종이'따먹기'놀이의 뜻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 단어를 그런 뜻으로 구사하다니. 다른 면에서 정말 대단하다 싶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화가 나고 뭐고 간에 뒤돌아서 크게 소리치고 싶었다.


"내가 니들이 말하는 그 간호사다!!!!"라고.


하지만 그러지는 못했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과거와는 다르게 체격이 크다. 세상이 무서워서 괜히 말했다가 오지랖 부리지 마라며 얻어맞으면 나만 손해다. 속으로 분을 삭이며 집에 들어갔다.




내가 하는 일로 사람들에게 칭찬받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없고, 없을 것이다. 일례로 기저귀를 갈아줘서 고맙다는 환자의 말에도 내가 해야 할 일이니 고마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건 정말 너무하다. 얼마 전에 화제가 된 네이트 판 글의 간호사 비하를 넘어섰다. 세상에 어떤 직업이 야동이랑 얽혀가며 욕먹을까?


간호사에 대한 인식이 이 정도였구나. 바람이 빠져 흐물흐물해진 풍선처럼 힘이 빠졌지만, 곧 생각을 전환하기로 했다.


나는 십 년 안에 책을 출판하여 사람들에게 간호사에 대한 인식이 올바르게 박히도록 널리 알릴 것이다. 아울러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간호사에게 얽힌 성적 고정관념 및 대상화를 뿌리 뽑는 것이다.


초등학생의 그 말 한마디가 나비효과가 되어서 살아가는 데 밑거름이 될거라 생각한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끝은 창대하리라. 반드시 해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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