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순간에서 최고를

첫 면접 준비

그렇게 모 학교 간호과 합격 소식 날짜가 다가왔다. 앞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 이유로 자신감이 극도로 떨어져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기대했다가 실망하면 내 마음만 안 좋으니까, 라는 생각으로 어머니의 붕어빵 장사를 도왔다.


하지만 나의 진심은 그게 아니었다. 누구보다 합격을 원하고 있었다. 나를 위로해주는 것은 책뿐이었다. 주변에서는 나한테 넌 안 된다, 그러게 공부 좀 하지, 제주도 말고 원서 다 써 봐라, 같은 말만 주야장천 해서 내 고민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합격의 기쁨을 누리고 새터 간다, 옷 산다며 자랑하는 친구들에게 이런 것을 말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시크릿 류의 자기계발서를 읽으며 '긍정적으로! 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라고 되뇌었지만 무색하게도 악마가 점령한 나의 다른 내면이 선한 나의 내면을 잠식하고 있었다. 그동안 제대로 된 준비 없이 '무조건 부딪혀 보자.' 따위의 태도에 대한 응징 이리라.


작가 토마스 드러워스는 "하나의 막대기에는 끝이 두 개 있다."라고 말했으며, 에머슨은 "인간은 자연에서 언제나 양극성을 만난다."고 말했다. 내가 딱 그 상황 같았다. 합격이라는 긍정적인 인생경험과 불합격이라는 상반되는 상황.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나.


젠장, 서류 합격 시간이 30분 남았다. 속이 잿더미가 될 것만 같다. 시간이 점점 다가온다. 붕어빵을 담으면서도 혼자서 카운트 다운을 했다.


떨어지면 집안 망신이기도 하지만, 알량한 자존심이 용납을 못할 것 같다. 무엇보다도 나에 대한 한계를 정하고 스스로를 한없이 비하하는 짓도 그만하고 싶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살지, 이렇게 태어날 바에야 부모님은 애초부터 나를 낳지 말지, 살면서 수많은 고비가 있을 텐데 대학 합격조차 제대로 못한 나는 무한 경쟁시대에서 철저히 도태된 사람, 그냥 죽어버릴까? 그러면 나에게 생각 없이 말을 내뱉은 사람들도 반성할까? 악어의 눈물을 흘리겠지만 그래도 나에게 조금이나마 미안한 감정을 느낄까? 따위의 생각의 연결고리도 그만 짜고 싶었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싶었기에 제발 합격하고 싶었다. 합격하면 고등학교 때 하지 않은 공부를 열심히 할 자신도 있었다.


누군가가 촌구석에 있는 학교에 왜 이리 집착하냐고 그랬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집에서 재수를 시켜주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제발, 제발, 합격, 하지만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마우스 커서를 달칵 클릭했는데 결과는 진짜 합격. 면접을 볼 기회를 얻었다. 이제 모든 것은 내가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달렸다. 나만 잘 하면 된다.


세상 모든 것을 얻는 기분이 바로 이것 같았다. 몇 줄의 글로는 이 기쁨을 절대 묘사하지 못한다. 그때 그 기분은.


학교는 어느 광역시에서 40분은 더 가야 나오는 시골에 위치하고 있었다. 지역 이름도 20여 년 살면서 처음 들어봤다. 그곳을 무시하는 건 절대로 아닌데, 내가 그곳으로 면접을 보러 가지만 않았어도 평생 모를 법한 지역명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특이했던 그 지역이 나중에는 영화 제목으로 매우 유명해졌다. 영화가 개봉됐을 때도 '다들 제목이 이게 뭐지?'라는 반응이었는데 나 혼자만 그 지역 생각이 먼저 나 괜스레 반가웠다. 역시나 주제도 지역과 연관성이 깊었다. 영화를 보면서도 속으로 '아, 맞아! 저랬었지.' 혼자서 키득키득거렸다. 에고, 이러다가 학교 이름을 공개할 것 같아 이쯤에서 그만하겠다.




나 혼자 가면 위험할까 봐 같이 동행해준 사촌 언니가 상당히 힘들어했다. 그럴 만도 했다. 우리 집에서 버스를 타고 반나절이 걸려서야 학교 인근 광역시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그 누구보다 간절해야 할 당사자도 지쳐갔는데 언니는 오죽했을까.


그곳의 첫인상. 터미널이 최신식이었다. 번쩍번쩍. 전국에서 가장 낡기로 소문난, 80년대식의 우리 지역 터미널과는 차원이 달랐다.


여기도 이런데 서울은 얼마나 클까? 이래서 다들 도시에 있는 학교에 가서 견문을 넓히려 하는구나 싶었다. 한편으로는 시골에 있는 학교도 합격할까? 아등바등하고 있는 내가 한심했다. 그렇지만 마냥 좌절하지는 않았다. 이번 일을 발판 삼아 절치부심하리라 마음먹었다.


커다란 문구센터에서 파는 예쁜 문구류도 많았는데 당시에는 주변을 자세히 살필 여력도 없었다. 잘 곳도 따로 정해놓지 않은 데다가 내일 아침에 학교로 가는 버스시간도 알아봐야 했기 때문이다.


부랴부랴 터미널 근처 중국집에서 탕짜면을 먹고, 눈에 보이는 찜질방에 무작정 들어가 하룻밤을 묵었다.


거기서 급하게 면접 준비를 했다. 자기소개, 지원동기, 간호사가 되고 싶었던 이유와 같은 인성 질문 위주로 벼락치기를 했다. 언니가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며 설명을 해줬는데도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그리고는 마지막에 분명히 '하고 싶은 말이 있냐'라고 여쭤보실 거라며, 그때는 반드시 손을 들고 어필하라고 조언해줬다. 겉으로는 고개는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뭐라고 말하지, 어쩌지.'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두세 시간가량 연습을 했고, 그래도 잠은 자야 정신이 맑아질 것 같아서 억지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시끄러운 핸드폰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잠을 못 잘 줄 알았는데 그래도 몇 시간 잠은 잤나 보다. 부랴부랴 입고, 삼각김밥으로 아침을 때우고는 시골 마을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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