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logue

알아보지 못해 죄송합니다

이틀 전에 한 Day 근무는 굉장히 바빴다. 내가 일하는 곳의 Day는 늘 바쁘지만, 그날은 뭔가 더했다. 이것 하면 저것, 저것 하면 또 다른 그것, 시키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일이 생겼다.


이런 상황에서 조급하게 마음먹고 한꺼번에 하려 들면 오히려 일이 밀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조금 늦어도 괜찮아, 괜찮아, 라는 자기 최면을 걸고 하나하나 해결하다 보면 언제 일이 생겼냐는 듯이 후딱 진행된다. 일 년 남짓 일하면서 유일하게 제대로 깨우친 사실이다.


얼마나 바빴냐면 lab(피검사)도 혼자서 열 명 넘게 했고, ast(afrer skin test: 항생제 알레르기 검사)도 세 사람이나 했고, OP v/s에 전실, 거기다가 일에 서툰 신규 간호사의 커버도 쳤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내가 할 일이 엄청 많았어요. 힘들었어요. 흑흑. 나 좀 알아줘."라고나 할까. 하지만 이건 서막(序幕)에 불과했다. 그 이유는 바로 상태가 중한 환자 한 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서 이름 자체가 '중환자실'이지만 여기 안에서도 나름 경환과 중환이 존재한다. 나만의 기준이긴 하지만 중환자실에서 중환이라면 인공호흡기는 기본이고 승압제를 써도 혈압이 낮은, 즉 사망 가능성이 다분한 사람을 말한다. 이런 환자가 있으면 평소보다 더더욱 긴장해야 한다. 혈압이 시간마다 크게 변하고, 언제 cpr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데다가 응급처치도 그 누구보다 빠르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난 원래 항상 아침밥을 먹는다. 유치원에 다닐 적부터 대학교에 다닐 때까지 아침을 거른 적은 손가락 안에 꼽는다. 그런데 요 며칠 사이에는 도통 밥이 넘어가지를 않았다. 오프 수가 별로 없어서 밥보다는 잠을 선택하는 것 같다. 너무 피곤한 나머지 으레 진행되는 전체 인계도 파김치 상태로 들을 수밖에 없었다.


night번 team 차지 선생님께서 신환에 대해 간단히 인계하셨다. 50대의 남환이었는데 파쇄기를 몰다가 넘어져서 기계가 환자 몸 위에 지나갔다고 들은 것 같다. 처음 이송된 대학병원에서는 CS(흉부외과)가 없기 때문에 거기서는 간단한 처치 후 팩셀만 달고 우리 병원으로 옮겼다고 한다.


나는 일개 acting이니 환자의 상태를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전체 인계를 조금이나마 듣은 데다가 환자의 c-line 위에 norphine(승압제), 와 epi(에피네프린, 승압제) fluid(수액)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 것을 보고 환자가 어떤 상황인 지를 대략적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c-line에 있는 각각의 lumen(도관)에는 항생제, 영양제, 일반 수액 따위의 약물이 달려 있었다. 그것은 마치 커다란 나무와 흡사했다. 수액 열매들이 여러 개의 가지를 쳐서 c-line이라는 뿌리에 도달하는 형태이다. 거기다가 ventilator(인공호흡기)도 달고 있었고 수시로 하는 피검사로 인해 a-line을 가졌고, CTD는 양쪽 chest에 두 개나 박혀 있었다.


전체 인계 후 개별 인계 시간이 다가왔다. 차지 선생님들은 담당 환자 앞에서 인계를 하신다. 나 역시 주시했던 그 환자의 옆에서 인계를 들었다. 그러다가 옆에서 불필요한 알람이 울리면 즉각 끄고, alert 한 환자가 '물 주세요.', '거즈에 물 적셔서 주세요.'와 같은 자잘한 부탁을 해오면 바로 간다. 인계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중환이 눈을 뜨고 나를 쳐다본다. '상태가 이렇게 심각한데도 눈은 꿈뻑꿈뻑 뜨네? 엇. 정신이 드시는가.' 싶었다. 인계를 들을 때도 mental은 있으시다고 들은 것 같다.




상황이 녹록지 않지만 어떠한 일이 벌어지는 한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도록 열심히 할 테니,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나갈 수 있길. 환자에게는 죄송한 말이지만 이런 수준 낮은 차원의 기도를 잠깐 했다.


역시나 그럴 줄 알았다. 1시간마다 환자의 CVP를 측정해야 했다. 가장 힘든 것이 1 hrs마다 지속적으로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이 곳은 전쟁터처럼 정신없이 일이 빵빵 벌어지기 때문에 한 시간쯤은 금세 지나간다. 거기다가 이벤트 하나라도 발생하면 1시간 간격으로 해야 하는 일을 늦게 챙기거나 못 챙기는 불상사도 간혹 생긴다. BST도 아니고 CVP check라니! 그래도 별 수 없지. 나는 좋으나 싫으나 그것을 할 의무가 있다. 싫다고 말하는 것도 실례인 것이, 내 몸이 힘든 것보다는 그분의 생명이 훨씬 중요하니까.


환자의 BP(blood pressure, 혈압)가 장난 아니게 떨어졌다. 자동 기계로 측정하니 70까지 나온다. 학생 간호사에게 수동 기계로 측정할 것을 부탁했다.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반응이 없었다. 혈압이 안 재져요?라고 물었는데 대답을 하지 않는다. 답답해서 한번 더 물었다. 아무 말 없이 내 눈치만 본다. 그냥 안되면 안 된다고 말하면 될 것을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게 나왔다. 그랬더니 그 환자의 담당 간호사(차지 선생님)께서 그만하라는 식으로 말씀하셨다.


나는 남한테 당하면 당했지 싫은 소리를 잘 못하는 성격이다. 왜냐하면 나도 서투니까. 이미지 메이킹이 아니라 이건 정말이다. 그런데 그 순간에는 내가 예민해졌나 보다. 결국 내가 혈압을 측정하긴 했는데 학생이 못할 만도 했다. 사실 나도 잘 안 들렸다. 대략 80/60 같은데. 결국 승압제의 주입 속도가 올라가고야 말았다.


수시로 ABGA도 시행하였으나 결과가 좋지 않아 그런지 sodium bicarbonate도 2 vial을 bolus로 부었다. one vial이 20cc니까, 40cc를 direct로 주입한 것이다.


열도 점점 오른다. 38도라서 ice bag apply를 했지만 호전되지 않고 오히려 39도까지 올라서 paceta를 달았다. paceta는 BP(혈압)가 떨어지는 side effect(부작용)가 있어 환자의 혈압을 확인하고 달아야 한다. 다행히도 BP가 100이 넘어 파세타를 달 수 있었다. 그래도 열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나중에는 거의 40도에 육박하고야 말았다.


몇 달 전에 비슷한 경우를 본 적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공통점이 상당히 많다. 그 사람 역시 건장한 남환이었고 교통사고로 왔었다. 시간에 따른 혈압의 변화가 굉장히 심했으며 그도 인공호흡기에 승압제 여러 개를 달고 있었다. 열이 40도 넘게 치솟았으며 paceta를 투여해도 별반 달라지는 것 없었고 결국에는 DNR state로 CPR 없이 expire 하고야 말았다. 그 분과 비슷한 수순을 밟을 것만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루 전만 해도 가족들과 아무렇지 않게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받으셨을 텐데. 아니면 우리 아빠처럼 친구분들과 술 한잔 하셨을 지고 모르는데. 평범한 가장으로서 가족을 위해 한평생을 살아오셨을 것이다. 이 곳에서 생(生)과 사(死)를 넘나드는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셨겠지.


가서는 안 될 방향으로 틀어져버린 시간의 흐름에는 그 누구도 저항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도 시간과의 싸움을 벌이며 힘겹게 진료를 받고 있는 것이고, 의료진들도 순간순간마다 최선의 처치를 하는 것이다. 나 역시 속으로는 잘못되어버린 그 날에 대해 착잡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침착한 태도로 일을 하며 상황을 관조(觀照)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루가 흘러갔다.




다음 날도 늘 그렇듯 핸드폰 알람 소리에 본능적으로 눈을 뜨고 태연의 I를 들으며 출근을 했다. 'my life is so beauty' 노래 가사가 내 방 안에 울러 퍼진다.


하루 종일 아등바등 챗바퀴를 굴리는 햄스터 같다는 기분이 들어 서글프기도 했지만, '그래도 나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어!'라는 자기 위로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다 마주친 나이트 번 팀 차지 선생님께 인사를 했다. 늘 그렇듯 밤에 안 바쁘셨냐고 여쭈어보니 가장 먼저 말씀하신 것이 "그 환자분 expire 했어."였다.


겨우 반나절 지났는데, 이렇게 빨리 가실 줄이야.


전체 인계를 들어보니 밤 사이에 BP가 급속도로 떨어져 회복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code blue를 띄웠고 한참 동안 CPR을 쳤다. 그렇게 해도 환자의 상태를 이전처럼 되돌릴 수 없음을 인지한 보호자가 CPR을 그만하자고 해서 중단됐으며, 그렇게 운명하셨다고 한다.


어제 하루뿐이었지만 그래도 여덟 시간 즈음을 그 환자를 돌봤는데,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사사로운 감정에 휩싸이면 일에 집중할 수 없다.




늘 그렇듯 같은 수순으로 근무를 끝냈다. 마치고 나서는 집에 가서 일찍 자는 편인데 그날은 같이 데이 근무를 했던 친구네 어머님의 외래 진료를 기다려 드렸다. 마침 어머님의 지인분께서 밭에 미나리가 많으니 마음껏 캐 가라 하셔서 쌀 한 포대를 가득 채울 만큼 캐고는 가벼운 마음으로 집에 가는 길이였다. 그러던 와중에 갑작스레 전화 한 통이 왔다. 바로 엄마였다.


"현아, 너네 중환자실에 돌아가신 분 아나?"

"응?"

"이름이 OOO인데."

"아, 알아. 그분."

"엄마 친구 OO슈퍼 했던 사람 남편인데."

"헐."

"너 어릴 때 기억 안 나나? 슈퍼 오면 예쁜아 예쁜아 하고 되게 잘해줬었는데."

"아, 나는 기억이 잘.."

"그냥 그렇다고. 엄마 바쁘다. 끊을게."

"응."


엄마의 마지막 말 한마디를 듣고 나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이런 사람밖에 안 됐구나. 그저 손이 많이 가는 환자,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환자라고 생각했는데 부끄러웠다. 이렇게 가실 줄 알았으면 말이라도 한 마디 걸어드릴걸. 다른 사람한테는 그렇게도 말을 잘 걸었으면서 왜 나는 그러지를 못했을까. 아저씨 나을 수 있다고 좋은 말이라도 해 드릴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인데, 나는 왜 그것조차 해드리지 못했을까.


나를 그런 눈빛으로 쳐다보신 것도 병원복에 적힌 내 이름을 보고 나를 알아봤기 때문인 건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그것은 나만의 착각이겠지.


사람은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만날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최선을 다 해야 한다. 나는 그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는 마음가짐이 아녔기에 이 글을 통해서 스스로를 성찰한다. 또한 오랜 세월이 지났다는 이유로 그분을 알아보지 못한 점도 굉장히 죄송스럽다.


오늘은 엄마의 귀가시간이 늦어지실 것 같다. 상갓집에 가신다고 하니 내 몫까지 함께 명복을 빌어달라고 부탁드려야겠다. 마음이 무거워지는 저녁이다.


writing: 2017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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