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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대 한장으로 버티는 나는 왜 간호사일까요”
영하의 날씨에 좀처럼 꺾이지 않는 코로나19 확산세에 선별 검사소와 병원 등 현장에서 숨 가쁜 하루를 보내는 의료진.
'호캉스'를 갔다가, 휘트니스센터에서 운동을 하다가 확진자와 동선이 겹쳐 검사를 받으러 왔다는 사람들, 방호복 안 습기 때문에 손발이 얼어붙는데도 패딩 점퍼로 무장하고는 "검사가 늦다"며 호통치는 이들을 보면서 간호사는 "나이팅게일 선서 외칠 때 평생 의롭게 살라 해서 의롭게 살라 노력하는데 당신들은 어떻게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할 수가 있냐"고 울부짖었다.
특히 생리가 시작됐지만 패드를 갈 시간이 없어 위생 팬티에 기저귀까지 동원해야 했던 일을 떠올리며 "퇴근 후 롱패딩 안에 감춘 붉은 자국을 집에 와서 보니 그냥 다 놓아버리고 싶다"고 했다.
<인간은 철저히 자신만을 위해 살아간다> 병원에서 몸소 깨달은 사실이다. 옆에 사람이 죽어간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나부터 봐달라고 하는 장면을 수도 없이 봤다. 시신을 수습하는 것도 두렵지 않았는데 산 사람이 더 무섭더라. 어린 나이에 그런 장면을 많이 봐서 이젠 환자 보는 게 질려버렸다.
인간이란 원래 그런 존재인가? 나도 똑같은 상황이 되면 저렇게 행동했을까?와 같은 생각까지 들어서 한 때 삶과 죽음에 관한 책을 엄청 빌려봤던 기억이 난다.
화장실을 못 가니까 생리대 못 가는 건 당연했다. 병원복에 혈흔이 묻어 여벌 바지를 빌려주는 건 예사였다. 다들 허리디스크, 방광염, 우울증은 기본이였다. 더 큰 병에 걸린 경우도 허다했다. 물론 아무도 그런 건 신경 안 써준다. 혼자서 감당해야 할 몫이다.
지금 이 사태에 일하시는 분들한테 대단하다는 말을 하는 것도 책임감을 더 주는 듯한 느낌이 들어 죄송하다. 그래서 난 그런 말을 안 꺼낸다. 동종업계 종사자였지만 나는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니 할 말도 없다.
아파서 진료를 보는거면 최소한의 인간 구실은 좀 했으면 좋겠다. 검사가 늦니 뭐니 이딴 푸념 좀 그만 하고. 어쩔 수 없는 사정이라 코로나 검사하는거라도 그런 말은 이해가 안 가는데, 놀 거 다 놀고 한다는 말이 고작 그런 건가?
요즘 본인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견주가 됐는데 견주로서 한 마디 하자면 개도 그렇게는 행동 안 한다. 간호사 계급장 다 떼고 말하자면 개만도 못한 것들이 참 많다.
오버타임 수당 못 받아도 괜찮았다. 듀티가 거지같아도 욕하면서 버텼다. 다리가 터질 것 같아도 숙명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가시 박힌 말이 사람을 허무하게 만들더라. 내가 왜 여기서 이런 대접 받으며 일해야하냐는 생각이 내 뇌를 잠식하는 순간 더이상 일을 못하겠더라. 저 분들도 그런 기분 아닐까.
코로나 전선에서 싸우는 의료진은 코로나 걸릴 거 감수하고 일한다는 걸 진상들은 모를 거다. 그게 얼마나 큰 결심이였는지도 모를 거다. 부작용이 다 밝혀지지도 않은 병인데 그러한 두려움을 뒤로하고 일한다는 걸 전혀 모를 거다. 앞으로도 모를 거다. 영원히 모를 거다. 그 사람들은 알 생각조차 하지 않을 거다.
나는 간호사를 하는 동안에는 모든 일에 최악을 생각했다. 인간성에 대한 기대치를 전혀 가지지 않았다. 일하는 동안에는 그런 것들이 소름돋게 맞아들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내 생각이 맞을 거다. (이게 무슨 궤변인 지는 모르겠지만.. 욕도 먹어보고 여러 번 얻어맞아도 보니 진상들 하는 짓은 눈을 감고도 다 안다.) ‘개만도 못한 것들’이 가시 박힌 말로 활개치는 이상 코로나와 맞서 싸우는 의료진이 지속적으로 버틸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