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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다

지붕뚫고 하이킥 취준생 황정음


나같은 애 받아주는 데라곤 이딴 쓰레기 같은 회사 밖에 없어요.

원서 백군데나 넘게 넣어도 날 뽑아준 회사는 여기 한군데 뿐이에요.

나도 쪽팔리고 창피해서 죽을거 같아요.
지훈씨 같은 사람(의사) 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거예요.

그치만 여기는 제 첫직장이에요.

이 수많은 건물들 중 그래도 제 자리 하나는 준 첫직장이에요.

드럽다고 때려치면요? 내가 뭘 할 수 있나요?
이게 내 현실이에요.

어차피 내 이력서갖고 저정도 회사밖에 취직 못하는게 제 현실이에요.

내 처지 아니까.. 내가 버텨보려고 그래도 들어온 곳이에요.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황정음이 한 대사이다. 한때 지붕킥 애청자였어서 기억이 더더욱 난다. 밤새도록 지붕킥만 봤던 시절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시트콤이나 드라마를 챙겨 보는 편은 아니지만 '몇년마다 한 번'의 빈도로 챙겨본다. 대신 한 번 보면 올인하는 타입이다. 제일 최근에 본 드라마는 차승원, 공효진 배우가 나온 최고의 사랑인데 벌써 6년이나 지난 드라마다. 난 그만큼 티비를 잘 안 본다. (최근에 프로듀스에 열광한 건 예외로 치자)


각설하고, 기억나는대로 내용을 적어보겠다. 서운대 출신(정음은 서울대라고 속여서 지훈의 조카 준혁의 영어 과외를 한다. 학벌 위주의 사회에서 서운대는 정음의 치부이자 떼어낼 수 없는 꼬리표라고나 할까.) 취준생 정음은 수많은 낙방 끝에 드디어 취직에 성공한다. 하지만 알고보니 그곳은 다단계 회사였다. 수상한 느낌을 감지한 정음의 남친 지훈(극중 대학병원 레지던트)이 정음의 직장을 염탐한다. 직장 상사에게 불합리한 단체기합을 받고도 악으로 깡으로 견디는 정음을 보고 결국 지훈은 폭발하고 만다. 이런 직장 그만두고 얼른 나가자고 설득하는 지훈에게, 정음은 첫 문단에 적어놓은 대사를 말한다.


이 시트콤을 처음 봤을 당시에 나는 준혁학생과 세경에게 초점을 뒀다. 나는 준혁학생처럼 오토바이를 타는 식의 일탈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그 뺨치게 철딱서니 없는, 공부가 마냥 싫기만 한 고등학생이였다. 그래서 준혁의 열심히 노는 행동(?)을 보고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꼈다. 또한 나도 그 시기에 짝사랑을 했던지라 무심한 듯 하나씩 세경을 챙기는 준혁학생이 마치 내 모습 같았다.


몇 년이 지나고 나서 지붕킥을 다시 보니 이제는 정음에게 감정이입이 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정음이 나이 많은 어른으로만 보였는데 이제는 내가 극중 정음보다 나이가 더 많아져버렸다. 시트콤이 종영된 지 오래된만큼 내 나이대도 바뀐 것이지. 약간 씁쓸하기도 하고..


나 역시 정음처럼 일을 때려치우고 싶다는, 그런 생각을 한 게 한두번이 아니다. 하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그만두더라도 다른곳에서 다시 이 일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가족도 못 믿는 현대 사회에서 믿을 건 오로지 나 자신인데, 나도 나를 못 믿을 때가 많다.




내 글을 보면 전반적으로 우울하고 지질한 감성 투성이다. 우리 엄마는 한번도 내 글을 보신 적이 없다. 하지만 대충 어떤 분위기인지는 대충 알고 계시는 것 같다. (내가 하는 소리가 '힘들다'여서 그런가..) 그래서 그런지 내가 글을 끄적일때마다 '신나고 재밌는 내용 좀 적어라. 그래야 독자가 늘지!'라고 한 소리 하신다.


그럴때마다 나는 "재밌는 일이 있어야 재밌는 글을 적지!"라고 변명을 한다. 그러면 엄마는 말씀하신다. "말대꾸 좀 그만해!!"


요즘 20대에게 재밌는 일이 어딨는가? 대학 입학할 때부터 캠퍼스의 낭만을 느끼지도 못한 채 취업준비를 해야만 하는데. 요즘 대학생들은 1학년 1학기때부터 학점을 잘 받기 위해 피터지게 공부한다고 한다. 그래도 취업이 안 되는 세상이다. 연애, 결혼, 취미활동이 사치가 된 지 오래다. 하루하루 잠자면 내일 닥칠 일이 두려운 게 이십대의 현실이다.


그저 현실적인 이야기를 적고 싶었다. 내 감정에 인공향신료와 조미료가 가미하고 싶지 않다. 나는 항상 이런 이야기도 좋아해주는 분이 한 명쯤은 있겠지, 라고 생각하며 글을 적는다.


나중에는 현경에게, 더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는 자옥에게 감정이입이 될 날이 올 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지붕킥은 참 매력있는 시트콤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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