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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순간에서 최고를

생애 첫 면접 보러 가는 날 (2)

우선, 개미떼처럼 까만 옷을 입은 사람들로 가득 찬 강당에서 일차적인 충격을 받았다. 다들 올림머리로 잔머리 하나 없는 깔끔히 묶은 헤어스타일에, 이목구비를 생기 있게 만드는 화장, 소위 말하는 면접정장을 입었고 적절히 굽이 있는 면접 구두를 신고 있었다.


정장 차림의 남자도 몇몇 보였다. 나보다 적어도 5~10살은 많아 보였다. 그들을 보고 '간호사라는 직업은 남자에게도 각광받는구나. 그리고 기술 하나로 정년까지는 먹고살 수 있는 직업이니 간호사로 다시 진로를 선택하더라도 충분히 메리트가 있겠구나.'라고 느꼈다.


난 버스 안에서 교복 입은 아이를 본 순간부터 '잘못된 퍼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상상초월이다. 퍼즐 조각을 뒤엎고 처음부터 다시 끼워 맞춰도 시원찮을 판이었다. 경쟁자들을 보고 깨달았다. 면접은 이렇게 준비해야 하는 거구나..


그다음에는, 이 곳을 빼곡히 채운 사람들 중에서 고작 여덟 명만 뽑는다는 말에 이차 충격을 받았다. 그것도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말을 들었는데, 면접자들을 안내하시는 학교 선배님들이 그 사실을 수긍하는 것 같았다.


'헐, 미쳤다. 난 망했다.'

비속어가 저절로 나왔다.


사실 경기도권의 간호과에 원서를 냈는데 후보 1200번 대였다. 광속 탈락도 아니다. 이건 애초부터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었다. 인생의 쓴 맛을 제대로 느꼈다.


 어떤 학교는 가족이나 친척이 간호사라면 가산점을 주는 곳도 있었다. '나는 왜 가족이 간호사가 아니야? 진짜 인생에 도움이 하나도 안 되네.'라고 애꿎은 가족 탓을 하기도 했다.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우대하는 곳도 있었다. '에이x, 이럴 줄 알았으면 고등학교고 뭐고 다니지 말고 그냥 간호조무사 자격증 따고 검정고시 칠 걸.' 같은 식의 다른 인생길을 상상하기도 했다.

 남자에게 가산점을 준다는 곳도 있었다. '나는 남자로 태어나지 왜 여자로 태어났을까? 그렇다고 성전환을 할 수도 없고.'와 같이 진지해야 할 성 정체성에 대해 한없이 가볍게 고민도 했었다.

 토익 점수가 있으면 플러스가 된다는데, 토익은커녕 영어공부도 제대로 안 한 나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도서벽지나 농어촌에 사는 사람에게 우대를 해 주는 곳도 있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섬에 박혀서 살 걸. 집 나가서 산골로 갈 걸.. 이라며 되지도 않는 생각도 했었다.


이처럼 사람은 벼랑 끝에 치닫게 되면 오만가지의 이유를 들어 자신을 합리화하고 정당화시키려고 한다.


그리고 무한 경쟁체제에는,


1) 선천적으로 무언가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2) 혈연, 학연, 지연이 판치는 세상에서 내 주변 사람이 나와 관련된 직업을 하고 있어야(백이 있어야)
3) 남들보다 잘하는 것 하나는 있어야

살아남는다.


그러지 못한 자는 불합격자라는 이름으로 주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철저히 도태당한다. 물론, k대 합격한 사람이 s대 가려고 강남의 큰 별 학원에 가는 경우면 예외겠지만 나는 그게 아니지 않은가. 나는 무조건 전자다.


전자의 경우에도 수많은 타래로 나눠진다. 분명 나는 그중에서도 가장 밑바닥일 것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 곳은 우리나라에서 낙후된 시골에 위치한 학교다.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이지 간호과 중에서 '입결'이 가장 낮은 곳 중에 하나라는 말이다. 다들 안된다고 혀를 끌끌 찬 나 같은 애도 서류에서 합격시켜줬으니.. 그럴 법도 하다.


나는 절실하다. 왜냐하면 여기서 떨어지면 갈 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에 휩싸이다가 한 가지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힘 내보자! 내가 여기서 합격하면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다.


이러한 근거 없는 자신감과 오기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처음에는 주변 사람들이 까만 옷을 입고 깔끔한 프린트물을 보며 면접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그저 주눅만 들었는데, 결론이 얻어지니 나도 열심히 하자는 생각만 들었다.


'뭐라도 말해보자, 내 간절함과 진심을 전달해보자! 그걸 내 무기라고 생각하자!'라는 생각으로 어제 벼락치기한 것들을 쭉 훑어봤다.


그러다가 깔끔하고 인상이 환하신 분들이 나를 불렀다. 대기해야 할 차례라는 것이다.


'후우'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한 번 가다듬고는, 그들을 따라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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