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기회로
"사업하는 사람들, 참 안됐다."
"얼마 전에 개업했다는데 시작부터 이래서 어쩌나."
"경제도 문제다 정말......"
가족들과의 식사 중에 나온 말들이다.
그런데 남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코로나 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처음에는 남일 같기만 하던 코로나의 여파가 이젠 내 수입에도 적잖은 타격을 주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여느 프리랜서와 마찬가지로 나는 매달 불규칙한 수입을 벌고 예측할 수 없이 들쑥날쑥한 스케줄 속에서 일한다.
그나마 코로나가 등장하기 이전까지는 나만의 고육책이 있었다. 그건 바로 영어 강의였고 (비록 큰돈을 벌어다 주진 못하더라도) 나의 든든한 고정 수입이었다. 아주 바쁠 때를 제외하고 거의 매달 꾸준히 이 '고정 수입'을 벌어왔었다. 덕분에 내 주변 동료 프리랜서들이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수하고 나서 다음 일거리를 찾아 헤매며 불안해할 때, 나는 비교적 심리적으로나 금전적으로나 여유로울 수 있었다.
그런데 이놈의 코로나 19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켜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나 또한 어쩔 수 없이 영어 강의를 당분간 쉬게 되었다.
다행히 감사하게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번역 의뢰가 들어와서 어찌어찌하여 적게나마 수입을 창출하고는 있지만, 기존에 계획되어 있던 영어강의와 통역일 또한 기약 없이 연기되면서 본의 아니게 소득이 확 줄어버렸다.
뭐, 적자는 아니니까, 액수가 적긴 해도 수입은 간헐적으로 들어오고 있으니까, 나보다 큰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라며 스스로를 위로해보지만......
앞으로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어떻게 하면 우울해지지 않고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할 수 있을까 고민이다.
코로나 19가 장기화되어가는 시점에서 나 같은 프리랜서는 어떡해야 할까?
바쁘던 일상이 갑자기 한가해진 요즘 같은 시기를
어떻게 해쳐가야 할까?
처음엔 갑자기 늘어난 시간을 두고 뭘 해야 할까 이런저런 고민을 너무 많이 해서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그런데 어느덧 이런 일상에 적응하여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래서 오늘은 이렇게 노트북을 펼치고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되었다.
이런 시국에 나 같은 프리랜서는 대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싶어서, 나만의 소소한 일상을 공유해보려고 말이다.
1. 다 멈추고 휴식
작년에 참 열심히 일하고 달려왔다.
그간 브런치 포스팅에 소홀했던 것도 사실 바쁜 일정 때문이었는데(그건 나만의 핑계일지도ㅎㅎ), 자랑하는 것 같아서 조금 쑥스럽긴 하지만, 작년부터 올해 초까지 이룬 일들을 몇 가지 열거해보자면,
- 출판사와 원서 번역을 계약했고
- 언론사의'현대문학 번역상'을 수상했고
- 해외 연극의 자막을 한국어로 번역했고
- 공연 후 관객과의 만남과 해외 아티스트의 라디오 인터뷰를 통역했고
- 한국 문학 샘플 번역을 했으며
- 해외 언론사 기자에게 국내 유명 작가의 인터뷰를 통역해주었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을 수 있는 그런 성과들이지만, 내게는 끊임없이 쉬지 않고 숨 가쁘게 달려왔기에 가능했던 일들이다.
그동안 이런 다양한 일들을 할 수 있어서 너무나도 감사했다.
하지만 그만큼 내 몸을 혹사시키면서 간절히 '쉼'을 원해온 것도 사실이다.
매주 주말마다 '이번 주까지만 일하고 다음 주엔 꼭 쉬어야지'를 거듭 다짐하며 계속해서 휴식을 미루다가 결국 몇 달씩이나 주말을 반납하고 일만 했다.
그런데 그토록 원하던 휴식을 드디어(?) 갖게 된 것이다(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해본다).
'지금은 쉬어가는 시기'라고 스스로에게 상기시키며, 반드시 지금 이 시기에 꼭 무언가를 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스스로를 너무 다그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한창 바쁠 때 꼭 해보고 싶었던 게 뭐였더라, 기억을 더듬어 보면서^^;
2. 밑천 다지기
며칠을 마냥 아무것도 안 하고 쉬기만 했더니 서서히 따분해지더라.
어느덧 '이렇게 비생산적으로 하루를 보내도 되나'하는 마음이 조금씩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러다 이런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프리랜서에게 지금과 같은 강제 휴식기는 본인의 밑천(역량)을 다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전에 '프리랜서가 일이 없을 때 시간을 보내는 방법'에서 한번 언급했듯, 프리랜서 통번역사인 나의 경우, 시간이 있을 때 틈틈이 독서하기와 글쓰기, 통역 스터디를 해야 내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
일이 많을 때는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더 멋지고 정제된 표현으로 번역했을 텐데' 혹은 '통역 전에 더 많은 자료를 읽고 다양한 표현들을 외웠더라면 더 다채로운 표현들을 뽐내며 통역할 수 있었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그러니 지금 시간이 많아졌으니, 그동안 그렇게 시간 없어서 못했던 공부를 하고 나 자신을 더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이젠 더 이상 시간이 없어서 뭘 못한다는 핑계를 댈 수가 없게 된 것이다.
해야지 하고 생각만 해놓고 늘 미뤄온 무언가가 있다면 지금이 적기이다.
그래서 요즘 나는 무조건 책 한 권을 들고 카페로 향한다. 매일 독서하며 언젠가 번역시 활용할 수 있을 다채로운 표현들을 찾아보려 노력 중이다.
그리고 유튜브를 보면서 프리랜서로 다양하게 수입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을 배운다.
부디 다음 브런치 포스팅에는 새로운 수입원 하나를 늘렸다고 자랑하며 공유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3. 반성과 참회
이렇게 갑자기 예상치 못하게 많은 시간이 생기니, 그간 거절해 온 사소한 일들, 힘에 부쳐서 소홀히 처리했던 일들이 떠오른다. 당시에는 너무 바쁠 때 들어온 일이라서 클라이언트의 제안에 대충 얼버무리고 넘겨버려서 흐지부지 되었던 일들.
일단 그때 어떻게든 의뢰를 받고 나서 차근차근 스케줄 조정을 해볼 걸 그랬나, 싶은 아쉬움과
나를 찾아주는 클라이언트에게 좀 더 감사해하며 겸손할 걸 그랬다, 싶은 후회가 몰려온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하면 좀 더 체계적으로 업무 스케줄을 관리할 수 있을까.
이 참에 함께 일할 든든하고 믿을만한 프리랜서 파트너를 물색해볼까?
4. 적극적인 SNS 활동
예전에는 인스타그램, 페이스북과 같은 SNS 활동이 단순히 할 일 없을 때 하는 단순한 오락거리, 시간 낭비로만 여겨졌다.
남들 뭐하나 살펴보면서 그들과 내 삶을 끊임없이 비교하는 것만큼 자존감을 갉아먹는 짓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내가 존경하는 한 강사의 유튜브 동영상을 보다가 SNS 마케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을 보게 되었다.
거기다가 얼마 전에 본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서 사업을 시작한 주인공 박새로이가 길거리에서 직접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며 가게 오픈 소식을 홍보하자, 이를 본 여주인공 조이서가 한 대사 "요즘 누가 그렇게 마케팅해요?"가 인상적이기도 했고.
그래서 큰 마음먹고 비공개였던 인스타그램의 계정을 전체 공개로 변경했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해 예전부터 인스타그램 포스팅은 꾸준히 해지만, 그저 일기장 같은 용도로만 사용했다.
때론 징징대기도 하고 좋은 일이 있을 땐 자랑하기도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담과 생각을 늘어놓는 사적인 공간으로만 활용해왔고,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내 생활을 공개할 마음이 없었으며, 인스타그램을 통해 누군가를 먼저 찾아보는 노력은 더더욱 하지 않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수동적으로 활용해 온 인스타그램을 새롭게, 적극적으로 활용해보기 시작했다.
꽁꽁 묶어 놓았던 계정을 전체 공개로 바꾸고 포스팅에 해쉬태그를 달고, 내가 평소에 관심 있던 분야를 해쉬태그로 검색도 해보고, 이런저런 낯선 사람들의 페이지도 몰래 놀러 가 눈팅도 했다.
그랬더니 전부터 사용해온 SNS 플랫폼이 문득 새롭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경험들도 하게 되었다.
과거에 함께 일한 적 있는 기자님과 감독님, 내가 문학 번역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멋진 작품을 쓰신 작가님과도 인친을 맺어 그들의 개인적인 포스팅을 보다 보니 왠지 그들과 조금이나마 더 친해진 기분이 들었다.
몇 년 동안 연락이 끊겼던 지인이 오랜만에 나를 알아보고 친구 신청도 해줬다.
업무와 관련된 키워드로 해쉬태그를 달았더니 관련 에이전시에서 내 포스팅에 '좋아요'를 눌러주기도 하고 말이다.
해쉬태그 기능을 잘 활용하면 예상치 못한 좋은 인연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5. 절약의 습관화
이번 코로나 19를 통해서 '진정한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평소에 비해 소비하는 습관이 많이 줄어들었다.
평소에는 주로 점심을 밖에서 해결하고 일도 줄곧 카페에서 했는데,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을 늘리고 식사비와 교통비를 줄였더니 그것만으로도 소비가 크게 줄었다!
프리랜서로 생활하면서 가장 힘든 게 돈 관리인데, 대체 언제부턴가 씀씀이가 헤퍼지고 소비 금액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일이 적을 땐 어쩔 수 없이 소비를 줄이게 되지만, 일이 많고 돈을 많이 번 달에는 그만큼 스트레스를 받았으니 스트레스를 해소하겠다는 명목으로 카드를 함부로 쓰고 결국 늘어난 수입만큼 지출하게 되더라는......
그런데 요즘 집에만 있으니 쇼핑몰도 못 가고 백화점도 못 가다 보니 카드를 긁을 일이 줄어들었다.
기껏해야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구매하거나 화장품을 사보는 정도(온라인 쇼핑에 입문하게 된다면야 또 다른 얘기가 되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번을 계기로 지금의 알뜰한 소비습관을 잘 유지할 수 있다면, 이 또한 뜻밖의 소득 아닐까.
코로나는 정말 밉다.
사람들을 못 만나다 보니 그만큼 프리랜싱 영업을 하기도 힘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콕하며 보내는 하루하루가 아깝고 지겹다.
아마 자영업자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테지만, 그 외에도 직장인들과 각계 각 분야의 사람들 모두가 나름의 사연과 피해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런 힘든 상황에서는 그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겠지만,
우리 모두 '위기가 기회다'라는 그 흔한 말을 한번 못 이기는 척 믿어보는 게 어떨까.
그게 바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