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과 회복탄력성

우선 한 발자국만 움직여보기

by 앨리

작년 가을, 하늘은 파랗고 나무들이 오색으로 물들어가던 어느 날 패러글라이딩을 하러 갔었다.

발이 공중에 떠오를 때까지 열심히 달리며 발을 굴려야 한다는 설명을 듣고 나는 힘껏 달리며 발을 굴렸다.

그런데 너무 긴장한 탓이었는지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고 말았다.

땅으로 내려앉은 패러글라이딩을 다시 펼치고 재정비하는 수고를 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죄송하고 민망해하고 있었는데 나를 태우고 가야 했던 사람이 엄청 짜증을 내는 게 아니겠는가.

무안하고 미안한 마음에 어떻게 하늘을 날고 내려왔는지 기억도 제대로 나지 않는다.

그러고는 저녁을 먹으러 갔는데 상한 기분이 도통 풀리지가 않았다. 같이 간 가족들이 무슨 일이냐고 묻길래 이러저러했다며 말을 하는데 갑자기 설움이 북받쳐 오면서 눈물이 나는 것이다. 한 번 터진 눈물은 멈추질 않고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고 말았다.

일행들은 사람이 실수를 할 수도 있는 건데 왜 아무 말도 못 했냐고 하며 직접 업체에 전화를 걸어 사과까지 받아내줬다. 이렇게까지 울 일은 아닌데 나 때문에 분위기가 엉망이 된 것 같아서 미안해서 또 울고.

평소 같으면 그 자리에서 속 시원하게 말을 하거나, 깔깔 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일인데 갑자기 눈물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나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마도 나의 우울증 증세가 점점 깊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때 제대로 각성했던 것 같다.


우울증은 이런 것이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갑작스럽게 눈물이 터져 나오기도 하고, 세상만사가 귀찮아 아무도 없는 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혼자만 있고 싶기도 하다.

그런 위태로운 상태로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던 시기였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병원이든 상담 센터든 찾아가 보자.'

이대로는 안된다고 외치는 마음의 소리를 듣고 결국 심리상담센터를 찾아갔다.

심리 검사를 받고 일주일에 한 번씩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상담을 받은 지 3주쯤 되었을 때 상담 선생님께 물었다.

"솔직히 말씀해 주세요. 지금 제 상태가 약을 먹어야 하는 상태인가요?"

"검사 결과의 수치상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앨리 씨는 회복탄력성 지수가 매우 높게 나왔어요. 회복탄력성이 높다는 것은 현재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노력을 할 수 있는 긍정적인 마음의 힘이에요. 앨리 씨와 비슷한 우울증 수치를 가진 사람들에게서 이런 높은 회복탄력성 지수는 좀처럼 볼 수 없습니다. 이미 앨리 씨는 3번의 상담만으로도 조금씩 변하고 계시니까요."

다행히도 상담을 받으면서 나 자신도 놀랄 만큼 나는 변화되고 있었고, 내가 걸어온 길을 찬찬히 되돌아보는 시간도 되었다.


마음이 지하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 순간에도 '좋은 생각, 예쁜 생각을 해서 빨리 벗어나야지.' 하며 나를 다그치게 된다. 하지만 이런 생각조차 부담이며,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있다. 이럴 때 나는 가능한 밖으로 나가서 걸었다.

걸으면서 하늘도 한 번 바라봐 주고, 나무도 보고, 사람 구경도 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머릿속이 비워진다.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오기까지가 힘들지만 우선 딱 한 발자국만 움직여보기.

그리고 내 마음속의 부정적 자아가 긍정적 자아를 잠식하지 않도록 천천히 조금씩이라도 회복탄력성을 키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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