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누가 더 진솔한가
진솔하다 - 진실하고 솔직하다. (표준국어대사전)
그 강의 과제의 평가 기준은 한 가지였다. ‘얼마나 진솔한가?’. 형식은 자유, 주제는 ‘나’. 범위가 넓은 만큼 선택지는 많았다. 지나온 내 인생에서 여러 가지 주요 사건들을 골라내고, 그중에 엄선하여 주제를 정했다. 내가 가장 진솔할 수 있는 이야기로 말이다.
그 글의 예상 독자는 오직 한 사람, 평가자였다. 평가 기준은 ‘진솔함’이니 진솔하기 위해 열중했다. 시작은 아픔, 끝은 극복이었던 과거를 소설 형식으로 구성했다. 타 강의 과제보다 분량이 긴 과제라 여러 감정이 담겼다. 과제를 하며 울고, 웃고, 기뻤다. 고난을 극복했던 당시의 감정이 살아나 뿌듯하기까지 했다. 글을 쓰며 스스로 100% 진솔했다고, 자부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80점. 글쓰기 과제로 우수과제 선정은 여러 번 되었을망정 95점 이하를 받아본 일이 없었던 나에게는 상당히 충격적인 점수였다. 높은 점수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다. 공부를 시작하기 전부터 글로 소득을 얻고 있는 사람으로서 응당 해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제출한 과제를 다시 읽었다. 내용은 진솔했고, 주제나 형식에 어긋난 점은 없었다. 일부 감점 요소가 있다고 해도 20점이나 깎일 정도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무엇이 문제일까. 소설 구성으로 인물의 이름을 바꾸어서? 실명이 아니면 진솔하지 못한가? 독자가 오직 평가자 한 사람이기 때문에 가명을 쓰지 말았어야 했나?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교수자가 강의 중에 자신의 일을, 혹은 감정을 소설로 엮어냈다고 예시를 든 글 역시 캐릭터의 대변이였다.
그게 아니라면. 중간고사 과제에 일부 언급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서? 전혀 다른 주제를 택했어야 했나? 그렇다고 해도 형식은 완전히 달랐다. 중간고사에서는 에세이 형식이었고, 소설 형식은 전혀 다른 문장으로 구성했다. 내용 역시 일부 중복되었을 뿐이고, 나에게 특별했던 일을 글로 쓰려니 겹친 것뿐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이유로 상당한 감점을 행할 것이라면 애초에 평가 기준에 명시를 했어야 한다고 본다. 중간고사 과제와 조금도 겹치지 않는 새로운 주제를 택하라고.
그것도 아니라면. 정말로 평가 기준이 ‘진솔함’ 하나였다면. 그 글이 얼마나 진솔한지를 어떻게 판단했을까? 글쓴이가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한 번도 만나보지도,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어보지도 않은 이가 어떻게 ‘진솔함’의 정도를 알 수 있는 걸까? 이 글은 10할 진솔하고, 이 글은 9할이 진솔하고, 이 글은 5할이 진솔하고. 평가 기준으로서의 진솔함은 그렇게 구분 가능해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글이라는 것은 상당히 주관적인 분야다. 쓰는 이도, 읽는 이도. 각자의 주관에 따라 천차만별로 나뉘고는 한다. 나에겐 정말 감동적이고 좋았던 글이 타인에게는 다시는 읽고 싶지 않은 글이 될 가능성은 넘칠 만큼 충분하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점수가 매겨지고 그로 인한 성적이 학업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라면. 가능한 한 객관적인 지표가 필요하지 않을까.
시간이 많이 지난 일이다. 내 글 스타일이 교수자의 취향에 맞지 않았다 치부하고 넘어가면 그만인 일이다. 다만 풀리지 않은 의문이 이따금 고개를 들이밀고 생각의 실을 잡아채 타래를 만들어서. 더 늘어지지 않게 이 글로 매듭을 지어 끊어버릴 셈이다. 이제는 애매한 평가 기준으로 점수를 매기는 교수자를 만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