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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 Jul 18. 2019

월급날에 맞춰 꿈꾸기가 어려워서

월급 D-7, 꿈과 돈의 상관관계.

흔한 직장인의 월급날은 이렇다. 1 지난달 쓴 신용카드 님의 퍼가요 2 얄팍하지만 해지할 수 없는 적금 님의 퍼가요 3 생필품 님 퍼가요. 어찌어찌 3주가 지나고, 월급 받기 일주일 전(가장 가난할 때) 불현듯 뭔가 배우고 싶은 욕망으로 들끓는다. 건강을 위해서 운동도 시작하고 싶고, 미래를 위해서 영어 공부를 하고 싶고, 마음의 교양을 위해 책도 사고 싶다. 돈이 적당히 쌓여있던 3주 전에는 깡그리 까먹고 있던 욕망이 스멀스멀 들끓는다. 그런데 통장 잔고를 보면 쩝.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직장인은 꿈도 월급날에 맞춰 꿔야 한다. 문제는 늘 타이밍이다.



월급 D-7

이상한 일이다. 운동을 간절하게 시작하고 싶다. 당장 등록하면 앞으로의 인생이 바뀔 거 같다는 생에 반짝 희망에 차오르다가 황급히 은행 애플리케이션으로 잔고를 확인한다. 물론 당분간 얌전하게 집-회사-집을 오가야 겨우 견딜 수 있는 금액이다. 아, 통장 속에 찍힌 숫자가 귀여워도 너무 귀엽다.


월급 D-5

‘직장인은 꿈도 월급날에 맞춰 꿔야 한다.’는 생각이 불쑥 든다. 괜히 서글프다. 마트폰으로 동네 요가원을 검색하고, 눈여겨보고 있던 곳에 전화를 한다. 가볍게 둘러만 보고 올 생각이다. 쓸 돈도 없. 그리고 돈이 있어도 다니기 싫어질 이유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요가원은 꼭 10년 만이다.


월급 D-4

집에서 빠른 걸음으로 15분 정도 걸으면 요가원에 도착한다. 운동하러 가는 길도 중요하다. 오가는 시간의 거리와 공기를 예민하게 느껴본다. 문을 슬쩍 열고 요가원을 둘러본다. 맨 몸으로 단련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어쩐지 심장이 두근거린다. 강사님도 친절하다. 오랜 시간 수련한 사람들은 건강하고 단단하다고 생각한다. 아차, 정신 차려 보니 요가원 회원증을 들고 있다. 도 모르게 빨간 신용카드를 꺼내 들었다. 어쩌면 절대 쓰면 안 되는 돈이다. 맞다, 탈이다. 3개월, 일주일에 두 번 운동할 수 있다 한다. 다음 달의 나는 스스로를 원망하게 될까. 칭찬하게 될까. 빚으로 요가를 질렀다.


월급 D-3

첫 요가 수업 날이다. 좁다란 탈의실 사람들로 붐빈다. 누구도 입을 떼지 않는다. 완벽하게 고요하고 좁은 공간은 일상에서 요가로, 요가에서 일상으로 가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수련실 안에는 지그재그로 정갈하게 깔려 있는 매트가 있다. 수업 전 명상하는 사람도 있고, 몸을 쭉쭉 늘리는 스트레칭하는 사람도 있다. 그저 매트에 벌렁 누워 휴식을 취하는 이도 있다. 약간 높은 단상 위에 서있는 선생님 뒤에는 커다란 통창에 푸르른 나무가 보였다.


“가볍게 늘리세요”, “쉬세요”, “호흡을 느껴보세요” 요가는 신기한 운동이다. 어떤 동작이든 급하게 움직이는 법이 없다. 숨이 벅차오를만하면 쉬는 시간을 갖는다. 운동을 하다가도 중간중간 불을 툭 끄고, 호흡에 집중하는 법을 배운다. 순식간에 50분이 지났다. 아주 오랜만에 한 운동은 생각보다 더 개운하다. 막한 듯함의 끝은 물론 현실이다. 빚더미 위에 또 하나의 빚을 얹었다. 그래도 오늘은 참 행복하다.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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