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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 Feb 01. 2024

퇴사 후 5개월 차 드는 생각

돈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새벽 5시까지 일하는 일상이 반복되고 도저히 일할 수 없겠다 싶었다. 10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하면서 몇 번의 이직을 했었지만 이렇게 아무 대책 없이 그만둔 건 처음이었다. 일을 그만두고 난 뒤 약 한 달가량은 온당히 나한테 주어져야 할 주말을 맞이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두세 달째에는 직장을 다니면서 받은 휴가 같은 일상이 이어졌다. 그런데 이상하다. 2월 1일. 퇴사 후 5개월 차로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회사에 다니고 싶지 않다. "자기 같은 사람이 일하고 싶지 않다니. 진짜 많이 지쳤나 봐. 좀 더 쉬어봐" 전 직장 동료의 말에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 간간히 프리랜서로 일하며 건네지는 작은 스트레스에도 여전히 마음이 한껏 움츠러든다. 언제쯤 일의 찾은 성취로 가득했던 나로 돌아갈 수 있는 걸까?


가장 아쉬운 건 역시 돈이다. 퇴직금이 들어왔을 무렵 침구 청소기를 들였다. 난생처음 쓰는 도구는 '내가 먼지 위에서 자고 있었구나!' 싶을 정도로 효과가 대단했다. 눈으로 봤을 때는 잘 보이지 않던 먼지가 먼지 통에 차곡차곡 모여 있다. 엄마랑 나는 따로 살기 시작하면서 종종 서로의 사랑을 택배로 주고받곤 했는데 작지만 좋은 물건을 보면 꼭 가까운 이들이 생각나곤 했다. 그런데 비어 가는 잔고 앞에서의 나는 '집에 하나 보내면 엄마도 잘 쓸 텐데' 싶다가도 두 눈 꼭 감고 모르는 척해버리게 되는 거다.


마흔으로 향하는 길목에 서서 직업을 가지고 있지 않고, 구직 공고 사이트에는 이 정도 직장이면 일해봐도 괜찮겠다 싶은 곳을 발견해도 자꾸 멈칫거린다. 한참을 들여다보다가도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이내 멈춰 버린다. 아무래도 어떤 일을 해도 마음속 비어 있는 부분이 차오를 것 같지가 않다. 일에 미쳐서 20대와 30대 사이를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한 줌의 커리어만 남았다. 잠시 멈춰 돌아보니 누군가는 사업을 이뤘고, 가정을 이뤘다. 직장을 몇 년을 더 다닌다고 해서 죽을 때까지 나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을까. 어쩌면 앞으로 회사 안에서 영원히 성취감을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텅 빈 시간 속에서 내가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다. 이런저런 책과 영상도 찾아보고, 오래전에 그려봤던 비전 보드도 그려 본다. 돈은 왜 벌어야 하고, 어떻게 벌어야 기쁘며, 어떤 관계를 갖고 살아가야 내가 잘 살아가고 있다고 믿게 될지 불쑥 궁금해졌다. 나의 일, 나의 몸, 나의 인간관계, 나의 집, 나의 죽음. 어떤 고요와 풍요에 대한 바람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가까운 이들에게 맛있는 밥을 사고, 또 고심하게 고른 물건이 마음에 쏙 들 때 하나씩 선물하는 일. 돈을 벌면서 가장 행복하다고 느꼈던 부분들을 기록해 본다. 상처뿐이었던 일터 속에서 까맣게 잃어버렸던 당연한 기쁨들을 상기시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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