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리단체에서 일하기
학부생일 때부터.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21살 때부터 장애인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꾸준히 했다. 그때 당시에는 자폐와 아스퍼거와 지적장애 등 장애 등급이 나눠져 있었다. 현재는 '발달장애인'으로 묶여 있고, 내가 입사했던 비영리단체는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주간활동지원센터였다.
처음 면접을 보러 갔던 날에도 대답을 열심히 하고, 장애인 종합 복지관에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와 아스퍼거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꾸준히 봉사했음을 어필했다. 그런 만큼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또한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다.
면접 결과는 다행히도 합격이었다. 타지에 내려와서 일자리가 안 구해지는 역경을 9개월 정도 겪다가 얻은 일자리라서 더욱 값지게 느껴졌다. 더군다나 전공을 살리고 싶다는 간절함이 이루어져서 마냥 좋기만 했다. 내가 6년 공부한 전공을 버리지 않아도 되면서 하고 싶었던 장애인 복지 분야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되다니! 앞으로 모든 게 다 잘 될 것만 같았다.
면접 후에 1달 정도의 교육 기간을 가진 후에 24년 1월 2일에 입사해서 일하게 되었다. 아직 새로운 이용인들이 안 와서 기존에 있던 이용인들 중에서 한 명을 같이 지원했는데. 봉사활동을 해보기도 했고, 전공자라서 그런지 센터를 이용하고 있던 이용인들 중에 최중증 중 최중증인 이용인을 선임 선생님과 같이 보게 되었다.
"가까이 가면 꼬집고 머리채 잡히니까 뒤로 물러나 있으세요."
그 선임 선생님한테 들었던 말은 충격이었다. 타해가 그렇게나 심하다고? 하지만 타해가 있다고 하더라도 좋아하는 걸 찾아봐야겠다.라는 생각으로 이용인에게 다가갔다.
"위험해요."
그 선생님은 내가 꼬집히거나 잡힐까 봐 해준 말이겠지만, 난 듣지 않았다. 내가 안 듣고 이용인에게 다가가서 같이 블록을 가지고 놀고, 손뼉 치고 하니까 더 이상 아무 말하지 않았다. 입사하고 처음으로 같이 활동하고 블록 놀이를 하고 하다 보니 어느 정도 라포 형성이 된 것 같았다.
'이 정도면 괜찮네~'라고 생각했던 건 큰 오산이었다. 같이 블록을 가지고 놀이하다가 블록이 쏟아지자 책상을 뒤집어엎고, 바로 머리채를 잡을 줄은,, 선임 선생님이 나랑 이용인을 바로 떼어놓고 흥분이 가라앉을 때까지 거리를 두고 지켜봤다. 이용인은 흥분이 가라앉은 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손뼉 치면서 노래하고 다시 블록 놀이를 했다.
"괜찮으세요?"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멍하니 있었고, 그 선생님은 내 상태가 괜찮은지 살폈다. 너무 놀라서였을까 심장이 너무 두근두근했다. 이 이후로도 이런 일은 끊임없이 일어났다. 괜찮다고 생각하고 자신하지 말걸. 주의를 줬을 때 거리를 좀 두고 그랬으면 이렇게 머리채를 잡히거나 뒤집어엎는 걸 보지 않아도 됐을 텐데.. 하지만 그 후에도 이런 일은 몇 번씩이나 반복됐다. 문득 장애인 복지를 할 수 있다고 좋아하고 자신했던 과거의 내가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왜 스타트업이랑 관련되어 있냐고?
스타트업인 곳은 다른 센터에서 받아주지 않는 이용인들,
적응하지 못하고 나온 이용인들이 모이게 되는데.
이 센터에는 아직 이용인이 3명 밖에 없었지만, 그 3명이 다 최중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