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손이 떨렸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잠이 오지 않았다.
이게 뭐야?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증상이었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걷잡을 수 없이 불안했다. 집 안에도 집 밖에도 온전히 있을 수가 없었다. 밥을 제대로 먹을 수도 무언가에 집중할 수도 없었다. 아무것도 못하는데다 몸까지 극도의 긴장상태라 몹시 불편했다. 시간이 무력하게 흘러갔다.
불면의 밤이 하루 이틀 삼일 계속해서 이어졌다.
살은 쭉쭉 빠졌다.
인터넷 검색 결과는 '불안장애'라고 진단했다. 병원에 가야할 것 같은데 무서워서 병원에도 갈 수 없었다. 태어나서 앓아본 병이라고는 감기 밖에 없고 크게 다쳐본 적도 없기 때문일까. 낯선 분야의 질병을 본격적으로 대면할 용기가 나지않았다. 마음이 아프면 병원에 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었지만 당사자가 되자 전혀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사실 어느 병원에 가면 좋을지, 평판 좋은 병원이 어디에 있는지 등의 정보를 찾아볼 정도의 집중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시간은 계속 무력하게 흘렀다. 몸이 갉아먹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너무 고통스러웠다.
퇴사할 때만 해도 그토록 호기롭더니 왜 갑자기 불안장애가 온 걸까?
당시의 나는 세상에서 제일 싫은 일이 내가 담당하던 회사일 인 줄 알았고, 그 일만 제외하고 다 할 수 있을 줄 알았던 것 같다. 그 일이 너무너무 싫어서 그 일만 아니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많이 시달렸고 많이 지쳤기에.
하지만 고작 수험생조차 되지 못하는 자기자신이 못미더워졌을 것이다.
하면 다 돼.
아무거나 하면 돼.
그 아무거나에 스스로를 던지는 일이 얼마나 무모하고 폭력적인 일인지 몰랐다. 아무거나 하면 된다는 건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고 세상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건 학대다.
그토록 소중한 자기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는 살피지 않고 되는대로 살아버리겠다는 파괴적인 자세다.
그런식으로 생각해본적 없던 나는 내가 아무거나 하고 살 수는 없는 존재라는 자각을 하자 미친듯이 불안해졌던 것 같다. 그렇다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할까?
환자상태가 지속되자 그런 깊이 있는 질문은 아무 의미 없어졌다. 당장의 생존이 시급했다. 너무 괴로워서 죽어버릴 것 만 같았다. 나는 살고 싶었다. 병원에 못가겠으면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이라도 찾아야했다.
명상?
명상을 하라고?
마음을 다스리는 데 명상이 최고라고들 했다. 명상이 집중력과 멘탈관리에 좋다는 말에 몇 번 해본적은 있었다. 하지만 시간만 낭비하는 느낌이라 집어치웠다. 그때는 무용했을지라도 지금은 위급상황이다. 뭐라도 해봐야한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매일 명상을 하기 시작했다. 짧게는 10분 길게는 한시간, 언제고 틈만 나면 명상을 했다. 산책 중에 손이 떨리면 벤치에 앉아서, 집으로 돌아와서 누워서, 밥을 먹다 안 넘어갈때 갑자기. 하루 일과가 명상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정말로 틈만나면 했다. 집중이 안되도 그냥 했다. 내 생명줄을 명상이 쥐고 있는 것처럼. 믿을 건 명상밖에 없는 것처럼.
그리고 움직이고 싶지 않아도 계속 움직였다. 집 안에 있으면 나가고 싶고, 밖에 나가있으면 집으로 들어가고 싶은 불안정한 상태였다. 그런 마음을 다스리려 하지 않고 마음이 가는대로 다 따라 움직였다. 기껏 채비하고 나갔어도 집에 들어가고 싶으면 다시 들어갔고, 집에서 할 일이 있어도 밖에 나가고 싶어지면 바로 나갔다. 변덕이 이상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냥 움직였다.
맹목적 명상의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명상하던 중 갑자기 '꾸벅' 존 것이다. 손이 떨리고 가슴이 두근거려서 잠을 거의 못자던 중 그렇게 졸음으로 한 번 물꼬를 트자 잠이 쏟아져내렸다. 밀려있던 숙제를 한꺼번에 하듯한 잠을 자고 나자 상태는 훨씬 좋아졌고, 그렇게 조금씩 불안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천천히 환자에서 벗어났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환자였던 시기에 무척 여러번 되뇌었던 말이다.
괜찮아, 죽을 것 같아도 죽지는 않아.
이 말도.
환자시기는 나의 인생에 큰 의미가 있다. 영영 몰랐을 '마음의 병'세계를 제대로 알려주었다. 마음건강이 몸건강만큼 중요하다는 것도.
아무것도 못했어도 괜찮다.
지금 살아있다면,
숨이 제대로 쉬어진다면,
몸이 제대로 움직인다면,
마음이 무탈하다면,
다 괜찮다.
언제든, 하고 싶은 걸, 하면 된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