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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다운 Aug 10. 2022

닫힌 문 앞에서

  달리기 좋아해요? 저는 종종 하루 끝자락에 달리기를 해요. 아파트 뒷문으로 나가면 공원이 있어요. 온갖 추억을 소환하는 한여름밤 공기도 있고요. 달리기는 가볍게 머리칼을 흔드는 바람으로 시작해서 흥건하게 젖은 몸을 식히는 바람으로 끝나요.

  어젯밤에도 실컷 달렸어요. 평소보다 늦은 시간이라 인적이 드물더라고요. 기분 좋은 바람이 갑자기 스산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는데, 하필 아파트 뒷문도 닫혀버린 거예요. 뒷문을 여는 방법은 카드키, 세대 호출, 경비실 호출이에요. 카드키는 없었고 세대 호출은 아이들이 곤히 자는 시간이라 엄두도 못 냈죠. 경비실 호출을 누르고 간절한 마음으로 응답을 기다렸어요. 연결음이 끊기도록 대답은 없었어요. 

  '담을 넘어야겠다' 주위를 둘러보고 실행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문을 향해 걸어오는 사람이 보였어요. 아까 공원에서 달릴 때 봤던 검은색 트레이닝 복을 입은 건장한 남자. 나와 같이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어요. '저 사람은 문을 열 수 있을까' 키패드에서 한 발짝 멀어져서 그를 지켜보고 있었어요. 경비실 호출을 하더군요. 담을 넘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어느 쪽 담이 더 낮을까 둘러보고 있는데 그가 먼저 훌쩍 담을 넘었어요. '오호라 저 쪽이군' 하자마자 문이 열렸어요. 그 사람이 맞은편에서 문을 열어준 거예요.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들은 그의 뒤통수가 점점 멀어졌어요.

  고맙더라고요. 그가 없었어도 나는 담을 넘어 집에 왔겠지만 사소한 배려가 따뜻했어요. 내가 먼저 담을 넘었어도 그에게 문을 열어주었겠지만, 그가 먼저 담을 넘어주었고 문을 열어줬으니까요. 챙김 받은 느낌이랄까요. 문득 마지막으로 챙김을 언제 받아봤나 싶어 졌어요. 늘 아이 챙겨주기 바쁜 일상을 살고 있으니까요. 아무런 대가 없이 나를 챙겨준 사람이라. 참 고맙네요!





Photo by Zac Ong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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