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어떻게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매일 저녁 잠자리에 들 때마다 나는 죽음을 떠올린다. 하루를 마감하는 것과 인생을 마치는 것과 같다고 느끼는 것이다. 매일 해야 할 일들이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일들을 다 하기에는 하루가 너무도 짧다. 특히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많은 나에게 잠자는 것은 죽는 것처럼 괴로울 때가 많다. 그래도 잠을 자고 나면 내일을 기약할 수 있다. 그런데 병상에 누워 며칠 후의 죽음을 앞두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그때 머릿속으로 살면서 내가 해야만 했던 일들이 계속 떠오른 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무거운 검은 그림자가 내 몸과 마음을 짓눌러 절대 헤어 나올 수 없는 그 기분은 표현조차 어려울 것 같다.
초등학교 때부터였던 것 같다. 시간으로 인해 나 자신을 질책하며 괴롭히기 시작했을 말이다. 매번 지키지 못할 약속을 방학 계획표에 그려놓고, (물론 시간표를 그릴 때만큼은 충분히 해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방학 기간 내내 스스로 자책하고 나에게 실망했다. 이러한 삶은 수십 년을 지난 지금도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다. 이 무슨 저주란 말인가! 매일 해야 할 일은 많은 데, 저녁이 되면 정작 계획대로 한 게 없는 나를 보며 괴로움에 잠을 이루지 못할 때도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괴로움 속에서도 하루 스마트 폰 평균 사용 시간은 3시간을 우습게 넘긴 다는 것이다.
시간 관리에 실패한 나는 우울해졌다. 우울함은 나에게 잠을 선물했다. 그렇게 수많은 날을 잠으로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났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계획을 세우지 말자! 문제의 근원을 제거해 버리자! 그 순간 머리가 맑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 동안 나는 평온한 날들을 보냈다. 스스로에게 약속한 것도 없으니 지킬 것도 없어졌다. 나 스스로를 탓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드디어 시간이 아닌 내가 삶의 주체가 되었다. 진정한 자유인이 된 것이다. 매일 밤 휘몰아치는 파도와 같던 내 마음도 잔잔한 호수로 변했다. 그러나 그 평안함은 오래가지는 못했다. 아무 계획 없이 하루하루를 살았더니 일상이 평온함을 넘어 지루해졌다. 권태와 우울의 시계추에서 권태에 가까워진 것이다.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마치 무미건조한 날들이 영원의 회귀처럼 무한 반복된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견디기 힘들어졌다. 이제는 마치 시간에 감옥에 갇혀 더 이상 갈 곳 없이 권태와 우울을 반복하며 살다가 죽는 일만 남은 것 같았다.
그렇게 수면과 불면을 반복하던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일요일 아침이 찾아왔다. 그날도 해야 할 일은 많았다. 밀린 회사 일도 있었고, 생존을 위해 배워야 할 것도 있었다. 그리고 하루하루를 버티기 위해 체력도 길러야 했으므로 피트니스 센터도 다녀와야 했다. 이 것 외에도 집안 청소/설거지/빨래 등등 할 일이 많았다. 그런데 그 날따라 해야 할 일 목록에 있던 것 중 하나가 아이와 자전거 타기였다. 날씨는 제법 쌀쌀했고 미세먼지도 약간 있었다. 그러나 아이는 나가고 싶어 했다. 숨 막힐 듯 밀려오는 그러나 답변하지 못한 수 십통의 메일을 뒤로하고, 나는 아이와 나가기로 결심했다.(주말에 일하는 건 화장실 청소만큼이나 괴롭다.)
나는 그 날 1시간 넘는 거리를 아이와 함께 자전거로 달렸다. 날도 춥고 거리도 멀어 힘들 만도 한데 아이는 괜찮다며 내 뒤를 잘 따라왔다. 오히려 내가 중간에 다시 돌아가고 싶었지만, 끝까지 가고 싶어 하는 아이 때문에 포기를 할 수 없었다. 쌀쌀한 날씨 속에서도 한 시간 정도 달리니 몸이 뜨거워져 옷 속은 어느덧 땀으로 축축해졌다. 그 날 아이는 처음 1시간 넘게 자전거를 탔다. 나와 아이 모두에게 나름 기념비 적인 날이 되었다.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고 맛집에 들려 늦은 점심 식사를 했다. 되돌아 가는 길은 너무 힘들 것 같아 전철을 이용했다. 집 근처에 도착하니 겨울이라 이미 해가 기울고 있었다.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불어 한기가 느껴졌다. 뜨끈한 어묵을 지나칠 수가 없었다. 어묵 한 꼬치와 국물 한 사발을 목으로 넘기니 아이의 얼굴에도 다시 온기가 돌았다. 우리는 감기에 걸리기 직전의 몸을 한 채로 집에 돌아와 바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갔다. 목욕을 한 후 나는 따뜻한 코코아 한 잔을 끓였다. 해가지자 전등불을 끄고 가족끼리 함께 누워 영화를 봤다. 그리고 어느덧 잘 시간이 되었다.
그날도 계획한 일의 대부분을 하지 못했다. 앞서 언급한 회사일과 공부 그리고 체력 단련은 근처도 가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게 후회가 없는 날은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날 침대에 누워 단 한 번에 뒤척임도 없이 기분 좋은 숙면을 취했다.
*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분들은 후회 없는 하루를 보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시는지요?
* 혹시 저와 같은 고민이 있었다면 어떻게 해결하셨는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