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을 쓰는 이유

회사에서는 왠지 만족감이 들지 않아...

by 노용기

사도 바울. 어느 날 우연히 성경의 역사와 관련된 책을 보다가 그의 원래 직업을 알게 되었다. 그는 천막을 만들어 팔던 육체 노동자였다. 실제 그는 예수를 전하는 사역과 육체노동을 통한 경제 활동을 병행하였던 것이다. 그의 직업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인생에서 배우고 익혀야 할 것이 명확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기술과 그렇게 제조한 무언가를 판매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삶의 본질이 먹고, 배설하고, 잠자는 것이듯, 생존의 본질은 만들고 파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나는 무엇을 만들 수 있나? 나에게는 어떤 제조 능력이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팟 캐스트를 통해 어느 기업의 역사를 들었고, 창업자가 화학을 전공하여 껌을 만들어 팔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마침, 회사에 화확과를 석사로 졸업한 동료가 있어 물어보았다. "화학과 졸업하면 껌 만들 수 있나요?" 나의 엉뚱한 질문을 들은 그녀는 그저 웃기만 했다. (그녀 말로는 화학 전공해도 껌을 스스로 만들지는 못한다고 한다. 껌 조차 만들지 못하는데 그러려면 화학 전공은 왜 한 건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 역시 MBA를 졸업했지만 작은 회사조차 어떻데 경영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생각에 잠시 슬퍼졌다.)


나는 10년 이상 회사에서 세일즈와 마케팅 업무를 해오고 있다. 세일즈 업무를 하면서 회사에서 Best Salesman Award라는 상도 몇 번 받았으니 영업 실적은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그러나 엄밀히 그건 회사의 브랜드와 제품 때문이지 나의 실력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스스로 위안을 위해서라도, 판매는 조금 할 줄 안다고 해두고 싶다.


미국의 어린이들은 자기 집 앞마당에서 레모네이드를 팔아서 돈을 벌어본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 돈으로 다시 다른 무언가를 사고팔고, 그리고 나중에는 주식까지 사는 것이다. 나에게는 마당이 있는 집이 없다. 있다 치더라고, 여름 음료인 레모네이드를 만들어 팔려면 얼음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얼음을 만들거나 안 녹게 하려면 전기가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노점상을 하시는 분들 중에는 전기를 쓰는 분도 있지만, 그걸 다하면서 천 원에서 이 천 원 하는 레모네이드를 팔아서 남은 수익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아마도 몸에 나쁜 저가의 재료를 쓰지 않는 한 순익을 남기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이 돌고 돌아 어느새 글쓰기까지 와버렸다. 글 쓰기라는 것은 인간이 가진 고유의 능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글을 잘 쓸려면 작문 책을 한 두 권 즘 읽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게다가 천부적인 소질까지 있으면 좋을 것이다. 좋은 글은 쓰지 못할 수는 있다. 그러나 글 자체는 누구나 쓸 수 있다. 손, 입 또는 발로 글은 쓸 수 있다. 즉, 나에게는 글을 제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하루를 마치고 퇴근할 때 항상 마음이 무겁다. 하루 동안 내가 한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동료들과 상사들은 잘하고 있다 말해 준다. 그러나 타인의 평가로 나의 행복을 저울질하고 싶지는 않다. 타인의 평가는 날씨가 변하는 것처럼 언제든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회사일은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분업화된 회사에서 마음과 생각이 맞지 않는 사람들을 설득해야 한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두려움을 갖고 매사를 결정해 나가야 한다. 누군가에게 계속 부탁과 읍소를 하면서 내가 하지 않은 일까지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성격에도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물론 가족과 생존을 위해 하기 싫은 일이라도 해야 한다는 것이 나이 40을 넘은 나의 마음가짐이다.)


그러나 글 쓰기는 다르다. 분업이 아닌 나 혼자만의 예술이 주는 만족감이 크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계획하고 실행하며 결과를 볼 수 있는 장인 정신이 필요한 일이라 그런 것 같다. 또한 아무도 없는 방에 틀어박혀 조용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머릿속에 엉킨 실타래를 글로 풀어내는 작업이 나의 마음을 편하게 한다. 아직 이걸로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니 누군가의 평가가 그리 중요하지도 않은 것도 한몫을 한다. 비판과 칭찬보다 나의 만족이 더 중요한 것이다. 그러다가 가끔 나의 글로 위로를 받거나 도움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이 나타나기라도 하면 그 진심 전해져 마음이 따뜻해 해지기도 한다. 글쓰기는 나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일이다. 또한 글 쓰면서 누군가의 눈치를 보거나 어려운 부탁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외국어나 컴퓨터 활용 기술을 배우지 않아도 한글을 읽고 쓸 수 있으면 자연스럽게 시작해 볼 수 있다.


물론 무라카미 하루키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밝혔듯이 글쓰기는 자칫 링에 올라가는 것은 쉽지만 버티기는 쉽지는 않은 일이 될 수 있다. 글쓰기로 어떤 것을 이루려는 사람들에게는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링 위에 한 번 올라가 보는 것으로도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아마추어다. 나 같은 사람에게 글 쓰기는 명예나 노동이 아닌, 하루를 마치고 마음을 호수처럼 고요하게 하는 명상처럼 일상인 것이다. 오늘 하루도 글쓰기로 하루를 마감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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