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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기 Jun 26. 2021

탈모에 관하여

안 당해보면 모르는...

 이런 글까지 쓰게 될 줄은 몰랐다. 탈모에 관하여라니... 하지만 이것도 나의 일상 또는 인생의 한 부분이기에 생각을 정리해 보려 한다. 


 사실 탈모라는 것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을 몰랐다. 할아버지께서 대머리셨지만 아버지는 그렇지 않았기에 머리 벗겨짐이 아버지 대에서 끊겼나 보다 생각했다. 물론 이런 생각이 전혀 과학적이지 않다는 것을 안 건 훗날 탈모에 대해 공부하면서부터다. 어쨎건 나는 탈모 걱정 없이 염색도 하고 퍼머도 하며 자유로운 20대를 보냈다. 

  

 머리카락이 조금씩 빠져나감을 의식한 것은 30대에 접어들면서이다. 가끔 주위에서, 특히 어머니께서 바닥에 누워 있는 나를 보시면서 점점 머리숱이 줄어드는 것 같다며 말씀을 하시곤 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거울에 비친 내 머리가 휑해 보이거나 하지는 않았기에 그리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본격적으로 머리숱이 줄어들고 느꼈던 것은 담배를 태우면서이다. 직장에서 스트레스가 가중되면서 가끔 담배를 물었다. 사실 좀 억울한 것은 담배를 즐겨 피우는 사람처럼 하루에 반 갑 또는 한 갑씩 피운 것도 아닌데 이 시기 탈모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출근을 위해 왁스를 바를 때면 머리 한쪽이 자꾸 비워져 보여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살짝 바람이 불어 머리 스타일이 흐트러지거나 갑작스럽게 내리는 비를 맞는 날이면 여지없이 탈모 증상이 눈에 띄게 보이기 시작했다. 


 탈모가 진행되자 그때부터 마음이 조급해졌다. 우선 샴푸부터 바꿨다. 성분이 순하거나 탈모에 좋다는 샴푸를 쓰기 시작했다. 방송에서 탈모 전문의가 좋다고 한 미역, 검정콩 등도 섭취를 늘려갔다. 맥주 효모도 탈모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해외 직구 사이트를 통해 맥주 효모를 구해 먹었다. 주위에서는 반신욕이 탈모에 좋다고 해서 일주일에 정기적으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기도 했다. 이렇게 여기저기서 들은 정보와 민간요법을 모두 동원해 보았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런 노력들이 탈모 진행을 늦추는데 조금은 도움이 된 것 같지만 머리털을 나는 데까지는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던 무렵 아내의 친구 남편으로부터 탈모 병원을 추천받았다. 가끔씩 아내의 친구 모임에서 한 두 번 뵌 분인데, 그분도 탈모 때문에 명의(名醫)를 이리저리 알아보았다고 했다. 그중에 한 병원을 선택 해 진단을 받고 약을 받아 몇 년째 치료 중이라고 했다. 효과가 있었다는 그분의 말에 고심 끝에 병원을 찾아가기로 했다. 수많은 광고보다는 지인의 말 한마디에 원래 더 잘 넘어가지 않는가!    


 장시간 차를 타고 찾아간 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후 약을 받아 왔다. 약 종류가 상당히 많았는데, 마치 의사분께서 나름 연구한 끝에 발견한 레시피(Recipe) 같은 느낌이었다. 어떤 약은 장 건강에 좋은 약이었고, 어떤 약은 두피에 피지를 덜 나게 하는 약이었다. 물론 그 약 중 몇 개는 실제 발모에 도움이 되는 약이었다. 병원을 찾아갈 때만 해도 탈모가 상당히 진전된 상태였기 때문에 나는 의사 처방을 전적으로 믿고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처방전에 따라 하루 세 번 빠짐없이 약을 복용하고, 머리에 약품을 바르고, 처방된 샴푸로 머리를 감은 지 몇 달 후, 조금씩 효과가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탈모가 생활에 큰 불편을 주는 증상은 아니다. 다만, 감정적으로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내 경우에는 미용실에 갈 때 그렇다. 미용실에 머리를 손질하러 가면 일단 샴푸를 먼저 한다. 그 후 자리에 오면 미용사 분께서 머리를 약간 말려 주신 후 가위로 머리를 다듬기 시작한다. 사실 이렇게 샴푸와 머리를 다듬는 이 시기가 나에게는 매우 길게 느껴진다. 머리가 젖은 상태에서 탈모 증상이 더 적나라하게 보이는데, 마치 발가벗은 느낌이라 할까? 뭐 그런 감정이 들기 때문이다. 머리가 말라 있을 때는 그래도 탈모 증상이 조금 감춰지는데, 머리가 젖은 상태에서는 머리카락이 서로 뭉치며 허연 두피를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마치 속살을 타인에게 드러내는 것처럼 그 시간이 나에게는 부끄럽기도 하고 견디기가 어려운 순간이다.


 탈모 치료의 효과를 보기 시작하면서 미용실에서 느끼는 부끄러움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허연 두피가 가느다란 머리카락으로 가려지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탈모가 상당 부분 개선되면서 그때 치료를 멈추고 다시 예전 방법으로 즉, 식사와 생활 습관으로 현 상태를 유지해 보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 사실 의사분께서는 약이 몸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했지만 매일 복용하는 약 종류가 너무 많다고 느끼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때부터 약을 끊었다. 머리카락도 탈모 전 상태까지 어느 정도 호전되어 자신감도 오른 상태였다. 


 그렇게 약을 끊은 지 6개월에서 1년이 지나자 탈모는 다시 눈에 띄게 진행이 되었다. 아니 전보다 좀 더 심해진 것 같다. 정말 더 있다가는 청나라의 변발 스타일이 될 것만 같았다. 지금은 다시 병원을 찾아 약을 복용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기 빌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살다 보면 누구나 한 가지 이상 아픈 곳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기술이 많이 발전했지만 세상에는 아직 치료 못하는 질병이 의외로 많다. 그리 심각한 병은 아니지만 생활에 불편을 주는 소소한 병들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그때마다 마음을 편하게 먹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쉽지는 않다.) 굳이 만날 필요는 없지만 이왕 이렇게 만나게 되었다면 함께 가는 친구처럼 동행이 필요한 것이다. 탈모를 굳이 친구라 부르고 싶지는 않지만 향후 몇십 년간 완전한 치료제가 생기기 전까지는 계속 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항상 기술의 발전과 관련해서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 있다. 이렇게 인간의 삶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기술, 예를 들면 탈모 치료제의 개발보다 AI 등 인간의 일자를 빼앗는 기술에는 다들 그렇게 매달리는 건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탈모인으로서 항상 불만이 생기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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