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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기 Aug 13. 2021

평가에 관하여

It's Not your fault.

 중간 평가의 시즌이다. 보통 회사에서는 일 년에 한 번 또는 두 번 정도 직원들을 평가하는 시간을 갖는다. 보통 7-8월에는 연초에 세운 목표들을 중심으로 어느 정도 도달했는지 평가를 한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나면 한 해 동안 이룬 성과를 바탕으로 점수를 매긴다. 이때 상사의 평가를 받기도 하고, 요즘은 동료들의 평가도 함께 받는다. 최근에는 이러한 평가를 좀 더 자주 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일 년에 한 번 또는 반년에 한 번씩 하는 평가로 직원들에게 피드백을 주는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평소 업무에 대해 잘못한 점들과 개선할 점들에 대해 최소 매 월 피드백을 주어야 효과가 있다는 주장이다.


 가끔 사람들이 나에게 직원들에 대한 평가를 물을 때가 있다. 김 대리는 어때? 오 차장은 어떤 사람이야? 그때마다 매우 당황스럽다. 솔직이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아주 오래된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김국환이라는 가수의 "타타타"라는 노래 가사 중 일부다. 나는 솔직히 나 자신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다. 그런 내가 누군가를 평가한다는 것은 매우 부담스럽다. 그의 고민과 남모르는 노력 그리고 열정을 내가 잘 알 수 없다. 그리고 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잣대로 사람들을 판단하기 때문에 타인의 진정한 면을 판단하고 평가하기에 부족한 점이 많을 수밖에 없다.


  과거 일했던 팀장 중에 한 사람이 중간 평가 시간에 나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노 대리는 OO업무를 잘 못하는 것 같아. 당시 나는 팀장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와 사이가 좋을 때는 그 반대의 평가를 받았는데, 사이가 틀어진 다음부터는 정 반대의 평가를 받게 되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부정했지만 그 말이 나에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는 것은 막을 수는 없었다. 나는 점점 그 팀장이 말한 특정 업무에 대해 자신감이 줄어들었고, 실제 성과도 조금씩 하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전까지 해당 분야에서 좋은 성과를 내던 내가 그 말 한마디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 것이 싫어 나 스스로를 위해 정말 이를 악물고 열심히 했다. 그 결과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객관적인 성과를 내었다. 물론 그 사이 마치 트라우마를 깨는 것처럼 힘들었던 시간들이 있었다.


 나이가 있다 보니 이제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피드백을 줄 때도 있다. 과거의 경험 때문인지 나는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 그가 가진 재능과 잠재력을 언급할 뿐 그가 가진 부족한 점에 대해서는 가능한 말하지 않는 편이다. 누군가는 이런 내가 객관적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또 그 직원을 위한다면 어떤 부분을 개발하는지 알려 주는 것도 필요하지 않냐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내가 피드백을 주는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편이지 평가를 하는 편은 아니다. 기회를 주면 스스로 해보면서 무엇이 부족한지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그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개발해야 할지 물어보면 그때 답을 주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 기준으로 그를 평가해 그의 부족한 점을 말한다면 오히려 나의 잘못된 평가로 오히려 잠재력을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다.


 사람은 누구도 모든 면에서 완벽할 수가 없다. 그리고 편향된 사고를 한다.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정말로 옳지는 않다. 특히나 잘 알지도 못하는 타인에게 평가를 하는 건 조심해야 한다. 물론 나도 실천이 쉽지는 않기에 항상 조심하려고 한다. 최근에 함께 일하는 어린 친구가 나에게 피드백을 요청했다. 그가 잘하고 있는 분야에 대해 다섯 가지 정도 얘기해 주었다. 그랬더니 혹시 부족한 점은 없냐고 한다. 그래서 부족한 점이 있지만 그 건 내 생각이고 그런 것 보다 지금 잘하는 부분을 더 잘하는데 집중하면 좋겠다고 말해 주었다. 그래도 계속 나에게 부족한 점을 말해달라고 했다. 그 순간 속으로만 생각했다. '이 친구, 마조히즘인가?'


 요즘은 누가 나를 칭찬하면 받아들이는 편이다. 예전에는 "아닙니다"라며 습관적인 겸양의 미덕을 보였지만, 요즘은 "감사합니다."라고 답하려고 노력한다. 습관을 바꾸는 것이 어렵다. 그러나 이 부분은 개선하고 싶은 부분이다. 그리고 타인이 내게 하는 부정적인 평가는 빨리 잊으려고 노력한다. 물론 그런 말을 들을 때는 굳이 태도 나쁜 사람으로까지 오해는 사고 싶지 않아 "예 알겠습니다. 좀 더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말은 한다. 나이가 드니 몸의 유연성은 떨어져도 관계에서의 유연성은 아주 조금 늘었다. 굳이 그 자리에서 부정하거나 대들 필요는 없다. 살짝 몸을 틀어 영화 매트릭스에서 총탄을 피하는 것처럼 살짝 몸을 틀어주기만 하면 된다. 지나간 탄알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사실 여기서 더 나아가 성인(聖人)의 경지에 이르려면 나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을 위해 복을 빌어 주거나 기도를 해 주어야 한다. 이 단계까지 가기가 어렵다면, 나 스스로에게 좋은 말을 자주 해 주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라 본다. 요즘 나는 자기 전에 그날 내가 잘한 일에 대해 생각한다. 물론 하루를 돌이켜 보면 창피하고 후회되는 일도 많다. 하지만 그런 일보다 조금이라도 스스로 칭찬할만한 일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것들을 계속 잘해나갈 수 있기를  바라며 잠이 든다. 그러면 마음이 호수처럼 잠잠해지고 편안해진다. 스스로에게 관대해 지는 것.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꼭 습관으로 드려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든 시기이다. 이럴 때는 서로에 대한 평가보다는 격려가 필요하다.


“오늘도 수고 많으셨고, 잘 해 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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