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치유하는 글쓰기
요즘 누군가가 내게 가장 갖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단연 '평안'을 고를 것이다. 마음의 평안만큼 모든 것 위에 필요한 것이 있을까 싶다. 이는 물론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 수 있다. 내일 당장 먹을 것이 없는데 평안을 추구하기란 인간의 속성에 맞지 않을 수 있다.
최근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많은 부분이 불안으로 가득 차 있음을 느낀다. 실체가 없기에 더 불안한 것일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실체를 들여다본다면, 현실을 한번 더 본다면, 오히려 불안감이 좀 더 사라질 수 있다. 그런데 글로 적지 않고 생각 속에서만 머물다 보니 실체가 잘 보이지 않고 겉만 맴도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게 생긴 불안은 처음에는 마치 작은 성냥불처럼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다가 어느 순간 나라는 존재를 다 태울 정도로 커질 때가 있다. 그때는 정말 내가 불안이라는 실체 없는 마음에 사로 잡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나이가 드니 이러한 불안은 더 커져감을 느낀다. 자신감이 줄어서 일까? 왠지는 모르겠다. 오늘 펀드 투자 관련 책을 보니 나이가 젊은 펀드 매니저들은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경력이 오래된 펀드 매니저들은 다소 보수적으로 투자를 한다는 말이 있었다. 그 책에 따르면, 펀드 매니저 생활이 오래될수록 경제 침체기와 주식의 폭락 등을 여러 번 몸으로 경험하여 아무래도 과감한 투자보다는 위험 관리 측면에서 펀드를 관리한다고 한다. 나도 그래서일까? 예전처럼 도전보다는 안정에 무게를 두는 편이고, 불안한 상황을 점점 잘 견디지 못하는 듯하다.
여기에는 몸 상태도 예전 같지 않음도 일부 작용하는 것 같다. 몇 달 전 심하게 허리 디스크 통증을 앓은 이후로 몇 시간씩 앉아서 일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과거에는 실력이 되지 않으면 시간으로라도 승부를 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 마저도 어렵게 되었다. 정말 똑똑하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일하지 않으면 성과를 내기 어려운 상태가 된 것이다.
최근 오랜만에 휴가를 내었다. 오랜만에 휴식을 취하며 읽고 싶었던 책도 읽고, 차로 2-3시간 거리에 있는 곳으로 여행도 다녀왔다. 내일이면 다시 출근을 해야 하는데, 쌓여 있는 일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다. 그렇다고 몇 시간 남은 휴가를 업무를 하는데 보내고 싶지는 않아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면서 내 마음을 읽고 표현하다 보면 풍랑이 치던 마음이 조금씩 호수처럼 잠잠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내 주변에 바뀐 것은 없다. 걱정하던 일의 양이 줄어든 것도 아니고, 미래에 대한 각종 불안 요소들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그냥 이 불안한 마음을 글로 표현했을 뿐이다.
가끔 영화를 보다 보면 전쟁으로 트라우마를 겪었거나 장애로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끼리 원을 그리며 둘러앉아 자신의 얘기를 터 놓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지금 코로나 때문에 그리고 내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내어 놓을 만한 사람과 장소가 없는 내게 아마도 글 쓰기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