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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기 Oct 04. 2021

씨앗에 관하여

약해진 몸과 정신 회복하기 

 걱정이 걱정을 멈추게 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일단 어떤 문제에 대해 고민과 걱정을 하다 보면 그것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지거나 점차 확장되는 특성이 있다. 그러므로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은 평온한 상태에서 걱정거리 하나를 끄집어내는 것은 잔잔한 호수에 돌을 이어 던지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걱정이 심할 경우에는 몸이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잠이 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잠자리에 들 때 무심코 걱정거리 하나를 생각해 내는 것은 때론 생각지 않은 재앙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새벽 1~2시처럼 밤이 깊을수록 오히려 정신이 점점 말짱해진다든지 아침까지 언제 잠든 것인지 모른 채 깨어나 온몸이 피로감이 사로 잡힐 수가 있다. 


 이러한 현상은 생각에서 뿐 아니라 행동에서도 나타난다. 예를 들어 술을 마실 때 딱 한 잔만 한다거나 술로만 끝나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보통 술을 마시게 되면 연속이던 불연속이든 한두 잔 더 들어가게 된다. 또한 술만 마시는 것이 아니라 안주에도 손이 가게 된다. 술 자체는 칼로리가 높지 않다고 하는데, 술을 먹고 나면 우리가 살이 찌는 이유가 술과 함께 먹는 안주 때문이라고도 한다. 모든 술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떤 술에는 감미료라는 것이 들어 있어 혀를 자극한다. 이렇게 자극된 혀는 더 강한 자극을 원하게 되고 그래서 때로는 맵고 짠 안주를 찾는 경향이 있다. 


 몇 달 전 몸이 자주 지치고 식사를 한 후 몇 시간 흐르지도 않았는데 배고픈 현상이 잦아 한의원을 찾은 적이 있다. 나이가 들어서라고 생각했다. 사무실에서 앉아서 일만 하는 것인데, 마치 몸속 안이 텅 빈 것처럼 기운이 쑥 빠져나가는 기분을 자주 경험했기 때문이다. 가끔씩이라도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는 운동을 했고 몸에 근육이 전혀 없는 체질은 아님에도 겉은 40대이지만 속은 마치 60-70대처럼 느껴졌다. 한의원에서 약 처방을 받았고, 그 약을 먹은 다음부터는 지치고 배고픈 현상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사실 그 약은 일반적인 한약으로 알고 있는 검고 진한 물약이 아니라 가루 형태로 마시는 차처럼 물에 타 먹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러한 형태의 약이 어떻게 내 몸에 변화를 일으켰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약을 반쯤 먹었을 때 한의원을 찾았다. 내 몸에 일어난 변화, 즉 배고픔이 사라지고 몸이 지치는 현상이 줄어든 이유가 궁금했다. 한의사뿐께 의심의 눈초리로 물었다. "약을 먹은 다음부터 식욕이 생기지 않아요. 평소에 삼시 세끼를 다 챙겨 먹어도 배고픔이 있었는데, 이 약을 복용하고부터는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별로 없게 되었습니다."나는 혹시라도 그 약에 식욕 억제 성분이 있는 거 아닌가 생각했었다. 내 질문은 들은 한의사 분은 말씀하셨다. "평소에 필요한 영양소가 충분히 함유된 약입니다. 그래서 배고픔을 덜 느끼는 거예요. 환자분이 좋은 레스토랑에 가서 밥을 먹을 때 아무리 적은 양을 먹어도 속이 충만함을 느끼지만, 저렴한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할 때는 아무리 많은 양을 먹어도 금세 배고픔을 느꼈던 경험이 있나요? 좋은 레스토랑에서는 양질의 영양소가 충분한 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고, 저렴한 식당은 조미료로 맛을 내고 재료의 영양소가 잘 보존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있어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 한약을 섭취하고 나서도 앞으로 영양소를 잘 챙겨서 드셔야 합니다."


 생각해 보니 나는 그동안 바쁘다는 이유로 간편식을 많이 찾았었다. 그리고 잦은 스트레스로 자극적이고 입에 당기는 음식을 주로 섭취했다. 단백질은 찾기 어려운 식단이었고 고열량의 탄수화물이 많은 식사를 주로 하고 있었다. 마치 튀김옷은 가득한데, 그 안에 고기는 매우 적은 치킨이나 탕수육 같은 음식만 먹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 나는 내 몸에 다른 씨앗들을 뿌려보기로 했다. 집에서 차를 마실 때도 가능한 카페인이 함유된 홍차나 커피보다는 대추나 표고버섯을 사다 놓고 틈날 때마다 끓여 마셨다. 요리를 할 때도 가능한 가공육이나 인스턴트 요리를 줄이고 단백질이 풍부한 식재료를 골라 요리를 했다. 그리고 고기를 먹을 때는 가능하면 볶거나 튀기기보다 삶아 먹는 방법을 취했고, 고기를 먹을 때는 쌈 같은 야채를 함께 먹는 방법을 택했다. 마지막으로 주식인 밥을 현미로 바꾸고 검은콩을 듬뿍 넣어서 먹었다. 특히 현미와 검은 콩밥을 먹고 나서는 기존보다 양을 반공기로 줄였음에도 먹고 나면 항상 속이 든든하고 다음 식사 때까지 배고픔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요즘 나는 내 삶에 어떤 씨앗을 뿌릴 것인지 생각해 본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잠자리에서 일어나 스마트폰으로 하루를 시작할 것인가? 아니면 간단한 스트레칭이라도 하면서 하루를 시작할 것인가? 배고픔을 느낄 때 과자로 허기를 달랠 것인가 견과류로 해결할 것인가? 생각이란 것을 할 때 걱정을 할 것인가 감사를 할 것인가? 내 몸과 마음에 어떠한 첫 씨앗을 뿌리는 가에 따라 당장의 한두 시간이 달라지고, 그 한두 시간이 쌓여 하루가, 그리고 내 삶이 조금씩은 달라질 것이라 기대한다. 물론 쉽지는 않다. 여전히 퇴근하고 힘들어 지쳐 있을 때는 한 권의 책보다는 스마트폰을 찾게 되니 말이다. 하지만 만약 평일에 바쁘고 스트레스받는 일상으로 인해 좋은 씨앗을 뿌리기에 어려움이 있다면 다소 여유가 있는 주말이라도 좋은 씨앗 뿌리기를 하나씩 실천해 보고자 한다. 어쩌면 달리 방법이 없다. 약해진 신체와 정신을 회복하고 인생에서 괜찮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좋은 씨앗을 심는 방법 말고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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