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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기 Sep 27. 2021

무의미의 의미에 관하여

이미 의미있는 인생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 관한 이야기

 최소한 서너 달은 된 것만 같다. 사무실에서 보는 사람들마다 신기한 듯 서로를 쳐다보았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회사는 일 년 전부터 재택근무를 병행했다. 그러다 회사 내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나오자 병행이 아닌 전원 재택에 들어갔다. 그러기를 몇 달. 최근에는 사전 승인을 통해 회사로 출근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재택과 병행할 때보다는 조금 더 엄격한 절차를 거쳐야만 회사로 출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수년 전 야후(Yahoo)라는 검색 플랫폼 회사에서 직원들의 재택근무가 화재가 된 적이 있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재택근무는 신선함 그 자체였다. 전 세계적으로도 수천 명이 다니는 회사에서 재택근무를 활성화 한 곳은 흔하지 않았다. 기사에서 소개된 야후 직원들의 원격 근무 방식은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나도 저런 회사에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노마드(Nomad)라는 단어가 오르내렸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내가 원하는 곳에서 일하는 환경이 선망의 대상 되었다. 어느 사진에는 수영장 썬베드에 누워 따뜻한 햇살 아래 무릎 위에 맥북을 올려놓고 업무를 보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일하다가 언제든 수영장으로 뛰어들 수 있는, 마치 파라다이스와 같은 환경처럼 보였다.


 코로나로 인해 이제는 많은 직장인들이 재택근무를 경험하고 있다. 나 역시 한 동안 재택근무의 달콤함에 행복한 시절을 보냈다. 아침, 저녁으로 출퇴근을 준비하는 시간을 절약하여 운동을 할 수 있었고 아이들과 함께 손잡고 등교도 할 수 있는 매력적인 시간들이었다. 보통 출근 준비에만 30분에서 1시간이 소요된다. 일어나서 세수하고, 머리도 감고, 어제 밤동안 자란 수염도 깎고, 옷도 다려 입는다. 그리고 다시 최소 30분에서 길게는 1시간 30분 정도 교통수단을 이용해 출근을 한다. 이렇게 출근 준비에만 1~2시간 넘게 시간이 소요된다. 여기에 퇴근 시간까지 더하면 출퇴근을 위한 시간에만 2~3시간 이상 소요된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출퇴근 시간을 매우 무의미한 시간으로 생각했다. 매일 습관처럼 일어나 반복적으로 하는 씻고, 입고, 출근하고, 그리고 퇴근하고, 벗고, 씻는 일련의 행동들에 대해 말이다. 그 시간이 10~20분도 아니고 몇 시간씩 되었던 적도 있기에 더욱 무의미하고 아깝게 느껴졌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가득한 전철에 겨우 몸을 욱여넣을 때는 정말 이렇게 사는 것이 최선인가 하는 생각도 여러 번 들었다.


 그러다 오늘, 몇 달만에 출근을 위해 그 무의미한 루틴을 다시 했다. 일주일 동안 자랐던 수염을 깎고, 콧구멍 밖으로 삐져나온 코털도 정리하고, 1cm가량 자란 손톱도 짧게 다듬었다. 스킨과 로션을 바르고 왁스로 머리 스타일을 정리했다. 다려진 옷을 입고 오랜만에 향수도 뿌려 보았다. 집에서 전철역까지 그리고 전철역에서 회사 사무실까지 따스한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빠른 발걸음을 옮겼다. 마치 햇살이 따발총이 되어 나에게 비타민D를 마구 쏘아 대는 것만 같았다. 오늘 저녁은 어제와 달리 잠이 잘 올 것 같은 좋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회사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무의미하다고 느꼈던 출근의 루틴들이 나름의 의미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 말이다. 옛날 선비들은 집에서 공부를 할 때 항상 의복과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책을 읽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재택근무가 길어지면서 출근할 때 입는 옷 대신 잠옷을 입고 일을 할 때도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샤워를 하며 머리를 감기보다는 어제저녁 그 모습 그대로 늦잠을 자고 일어나 책상으로 향했던 때도 있었다. 아마 이런 것들이 축적이 되어 조금씩 나를 육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안 좋은 방향으로 이끌지 않았나 싶다.


 오랜만에 보는 회사 동료들과 인사를 하고 후배들과 점심 식사를 했다. 월급날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부담은 덜 했지만 반가운 마음에 적지 않은 돈을 점심 식사와 커피 값으로 지불했다. 매우 적은 수의 인원이 회사에 나오기는 했지만, 오고 가던 동료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하니 조금씩 지쳤던 마음이 녹는 것 같았다. 매일 볼 때는, 사실 때로는 가족들보다 더 자주 보는 그들을 그만 보고 싶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봐서인지 그런 마음보다는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살다 보면 내 삶에 여러 가지 일련의 일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나의 경우 집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하는 등 집안일에 대해 무의미하다고도 느꼈던 때가 있었다. 매일 해도 다시 어질러지는 집과 한 끼 식사로 인해 수북이 쌓인 접시들을 보며 그 반복적인 가사노동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때론 사회에서 부와 명성을 쌓고 방송에도 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사람들의 삶과 나의 삶을 비교할 때가 있다. 어려운 사람을 돕고, 타인에게 모범과 존경을 받는 삶을 바라볼 때면 더더욱 나의 삶과 비교하며 그들의 삶은 의미 있고 나의 삶은 무의미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서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육아와 가족을 위한 가사노동은 상대적으로 덜 의미 있거나 때론 무의미하고 허무하다고 느낄 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무의미하다고 느끼는 것들도 한동안 하지 않거나 못하게 되면 그것의 의미를 다시 깨닫게 되는 때가 오는 것 같다. 나에게는 그날이 오늘이었다.



 번아웃이 지속되어 생활 패턴을 바꾸기 위해 회사로 다시 출근하기로 했다. 몇 년전까지 일상이었던 출근이 오늘은 특별하게 여겨졌다. 마치 매일 일상을 살다 잠시 여행을 갔다 온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무의미의 의미'에 대해 생각 해 보게 되었다.


 한 때 의미있는 삶을 살기 위해 무진장 애를 썼던 때가 있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가 무의미한 일을 하고 있다고 느낄 때 만큼 내 마음을 힘들게 하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이 의미가 있는 것들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출근하는 그런 일상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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