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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뫼 Jan 16. 2020

부대찌개와 안부 문자

새해 첫날 첫 끼로 부대찌개를 먹었다. 부대찌개는 1인분만 먹을 수 없으니 남편과의 외식이 아니면 거의 먹을 일이 없는 메뉴다. 오랜만에 얼큰한 국물을 먹고 싶어 선택한 메뉴였다. 사실 어느 식당을 가나 부대찌개의 맛은 비슷해 특별히 기억나는 부대찌개 식당은 없지만 나에게는 부대찌개 하면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대학교 휴학을 하고 1년 정도 정동에 있는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9월 중순에 출근하기 시작했는데, 입사한 지 얼마 안 돼 정동길은 노란 은행잎으로 장관을 이루었다. 점심시간이면 근처 직장인들이 은행잎을 밟으며 산책을 했다.

정동길에 유명한 부대찌개 집이 있었다. 1층도 식당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나는 회사 선배들과 2층에서 밥을 먹었다. 2층에서는 은행나무가 잘 보였다. 우린 노란 창밖 풍경을 보며 빨간 국물의 부대찌개를 먹었다. 찌개가 끓기를 기다리던 시간에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가 아직 기억에 있다. 평소 분위기를 이끌던 남자 선배가 라면 사리 봉지를 어느 쪽에서 뜯어야 쉽게 뜯을 수 있는지 내게 가르쳐주었고, 다른 여자 선배는 별 필요도 없는 걸 가르쳐준다며 괜히 핀잔을 주면서 웃었다.

우리는 서로 시시껄렁한 농담들을 주고받았지만 20대 초반의 나에게는 그때의 분위기가 흥미로웠고 또 재미있었다. 회사원들로 가득 찬 식당도, 그 선배들과 나누었던 대화도. 또 한 번은 한겨울에 그 식당에 갔다. 그날도 식당은 손님들로 꽉 차 있었고, 찌개를 끓이며 생기는 수증기로 식당 유리벽이 희뿌옜다. 겨울에는 왠지 찌개 냄새도 옷에 더 잘 배는 것 같다. 찌개를 먹고 나오면 머리카락과 외투에서 햄, 김치, 육수 등이 섞인 냄새가 나, 사무실의 다른 선배들까지 내가 부대찌개 먹은 걸 알 정도였다. 회사를 다니며 그 식당을 여러 번 갔겠지만 이렇게 딱 두 장면이 내 기억에 남아 있다.

또 다른 사람들은 고등학교 때 친구 쭈와 조재다. 20대 때 우린 만나자마자 먹었고 헤어지기 직전까지도 무엇을 먹었다. 주말, 홍대에서 만난 우리는 한 프랜차이즈 부대찌개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일단 먹고 시작해야 하는 우리였다. 배도 고팠고 찌개가 정말 맛있어서 우리는 연신 “여기 맛있다”며 수저질을 했다. 냄비에 햄이 한두 개 남아 있을 때 우린 “아, 배부르다”며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나는 남편과 부대찌개를 먹으며 이 ‘부대찌개 인연’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남편도 알고 있는 내 친구 쭈와 조재 얘기를 할 때 남편은 “알지, 알지” 하며 추임새를 넣었다. 그렇게까지 이야기하고 나니 친구들에게 전화를 안 할 수가 없었다. 이제는 둘 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서로 멀리 떨어져 살아 자주 볼 수 없는 친구들이었다. 작년에는 두 친구 모두 보지를 못했다.

전화를 하니 역시 아이들과 있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조재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생각하고 지내는 거지” 하는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전화도 정말 오랜만에 했기 때문이다. 둘은 아이들 얘기로 종종 전화를 한 모양인데, 내가 너무 무심하게 지낸 것 같아 부끄러웠다. 그래도 그렇게 이해해주는 친구가 참 고마웠다. 두 친구와 통화를 마친 뒤, 정동에서 같이 일했던 선배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궁금했지만 그들에게는 전화를 할 수가 없었다. 이제는 연락을 하지 않는 인연들이다.

한 살씩 나이를 먹으면서 해오던 것들을 안 하고 있는 것이 많다. 그중 하나가 새해 인사 문자다. 내가 언제 마지막으로 새해 인사 문자를 보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몇 년 전부터는 단체 카톡방에서도 새해 인사를 하는 이가 없다.

나는 한 명, 한 명에게 보내는 편이었는데 이제는 그렇게 보낼 여유가 없어서, 귀찮아서, 별 의미 없다고 생각해서 등등의 이유로 하지 않는 것 같다. 오랜만에 문자 하는 친구에게 “보험 권유 아님” “돈 부탁 아님” “결혼 소식 아님” 등의 메시지를 먼저 보내고 인사를 한다는 우스갯소리를 본 적이 있는데, 난 사실 오랜만에 연락받는 사람이 부담스러울까 봐 안부 문자를 안 보내게 된 이유도 있었다. ‘읽씹’을 경험하고서는 더욱 그렇다.

한 친구는 ‘받는 것도 자기 복’이라고 했는데, 난 그저 마음을 닫고 있지는 말자고 다짐해본다. 다만, 받는 것은 기다려야만 하지만 주는 것은 언제든지 내가 먼저 할 수 있으니, 주는 연습부터 하는 것이 마음을 닫고 있지 않은 사람의 자세인 것 같다. 하지만 옹졸한 나의 마음은 언제라도 닫힐 준비가 되어 있으니 참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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