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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뫼 Feb 28. 2020

새로운 2월을 향해

‘내 인생에서 편집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요즘 내 삶을 놓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방송국 PD들에게 던진 질문이 생각났다. 대부분이 창피하거나 힘들었던 과거를 잘라내고 싶다는 얘기를 했는데, 한 사람이 이렇게 얘기했다. “잘라내고 싶은 부분이 없다. 창피했던 순간, 힘들었던 시간 어느 한 부분이라도 잘라내면 지금의 내가 아닐 것 같다.”   

   

모두 지우고 싶은 부분을 떠올릴 때 저런 대답을 하다니! 그때는 창의력이 남다른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 곰곰이 생각해보니 창의력과는 무관한 대답이었다는  걸 확신한다. 그는 현재의 ‘자신에게’ 충분히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저런 대답을 했을 것이다. 지금 내가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단번에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그때 내가 조금 달랐다면 어땠을까’ 하는 시절이 있긴 하다. 생각만 많고 이리저리 방황하던 20대 때, 결과가 명확하게 보이는 토익이나 자격증 시험을 열심히 준비했다면, 정년이 보장된 안정된 직장을 목표로 취업 준비를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 따위가 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절은 내 마음의 상태에 따라 ‘그런 시간이 없었으면 정말 어쩔 뻔했어’라는 소중한 날들이 되기도 한다. 물론 나에게 충만함을 느끼고 있을 때다. 그때 나는 직장도 없고, 돈도 없고, 그 덕분에 돈 쓰는 재미도 못 느꼈지만 그 생활에 나름 만족스러워하며 하루하루가 좋았다. 결혼 후, 아이를 키우면서도 그럴 때가 있었다. 내 시간은 거의 없이 하루를 육아와 집안일하는 데 모두 쓰면서도 내 삶이 괜찮게 느껴졌다.      


그런데 지금, 그 시절 나의 선택과 행동을 조금이라도 아쉽게 생각한다는 것은 내 마음에 빨간불이 들어왔다는 뜻이다. 마음이 그렇게 느낀 것은 내 행동과 습관이 가져다준 신호다. 몇 주 간의 나의 일상을 되돌아본다. 부지런 떨며 바쁘게 움직인 날도 있었지만 별생각 없이 무료하게 시간을 낭비한 날도 많았다.      

  



3년 전 2월 28일, 마지막 회사를 떠나며 나는 전업주부가 되었다. 그리고 매해 2월이 되면 ‘일 안 한 지 딱 1년이 됐네, 2년이 됐네’ 하며 나 혼자, 이상한 마음으로 그 시기를 챙겼다(?). 직장인, 맞벌이, 워킹맘…. 점점 내가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타이틀에 신경이 쓰이는 건 감출 수 없는 사실이다.      


죽은 자식 나이라도 세듯 앞으로 얼마나 더 ‘이놈의 2월 말’을 기억할까. 소망하건대 더 이상은 이 ‘이상한 2월’을 기억하지 않았으면 한다. 오히려 직장인이어서 나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는 걸 늘 기억했으면 한다. 전업주부로 아이를 키우고 가정을 돌보며 새로운 나를 만나는 충만함을 맛보길, 우울한 2월은 2020년이 마지막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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