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이 모티브가 된 하루 일기.
애기들 잘 먹더라. 챙겨 가.
장거리 스케줄을 다녀오느라 아이들을 친정에 맡겼다가 데리러 간 날,
꼭두새벽에 도착해서 아이들을 챙기고 있는 나에게 반찬통을 건네어 주셨다.
묵직한 반찬통에 담긴 짜장.
호박이며 당근, 양파, 고기가 잔뜩 들어간 엄마표 수제 짜장.
이름 앞에 별명이 짜장 OO인 우리 아이들이라면 분명히,
밥 두 공기씩은 가볍게 호로록 비웠을 테지.
한 놈, 두식이, 석삼을 챙겨 입히고, 짜장이 담긴 에코백까지 손목에 걸었다.
어슴푸레 동이 터 올 무렵, 신호등을 건너는 네 명의 그림자.
잠이 덜 깬 채로 터덜 터덜 걷는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좀 더 자, 고생했어 내 새끼들. 사랑해~"
한 놈, 두식이, 석삼을 차례대로 어르고 달래며 방으로 들여보냈다.
에코백에 담겼던 짜장이 꽤나 무거웠다.
혹여나 모자랄까, 누르고 눌러 담은 엄마의 마음은 언제나 묵직했다.
짜장은 나에게, 아픈 음식이었다.
어릴 적, 친정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실 때 동생을 키워야 했던 것은 오직 나뿐이었다.
나 조차도 챙김을 받아야 했던 나이에, 어린 생명을 보살펴야 하는 것이 무척 버거운 일이었다.
넉넉지 못한 살림에 용돈을 달라고 하기도 어려웠고,
어린이날, 생일, 크리스마스 같은 기념일에는 선물을 받고 싶어도 티 한 번 내보지 못했었다.
그런 나에게도 나름의 플렉스를 하는 날이 있었다.
동생을 위해 축하를 하는 날.
정말 간간이 받는 용돈을 차곡차곡 모아서,
디데이를 기다리며 설레는 마음을 다스렸다.
부모님 몰래 동생과 둘이서만 즐기는 만찬날이었다.
동생의 손을 잡고 집 앞 중국집에 들어서면 항상 고르는 것은 짜장면 한 그릇.
간혹 용돈이 많이 모인 날에는, 군만두나 물만두 추가!
소소한 추억이 있는 음식임에도 왜, 짜장이 아픈 음식이냐...
내가 받지 못했던 챙김을 동생을 챙겨줌으로써,
스스로 마음을 위안하던 음식이라 그럴 것이다.
잘 먹는 동생에게 양보하는 누나.
용돈을 모아서 추억을 선물하는 누나.
동생을 잘 챙기는 착한 누나.
그 타이틀을 위해 몇 날 며칠을 걸어 다니고,
고픈 배를 물을 채워, 허기를 잊어가며 모으고 또 모았다.
정작, 내 입에 들어오는 것은 조금씩 덜어주며 젓가락에 묻은 소스들 뿐.
배를 채울 그 무엇도, 허기를 달래주는 그 무엇도 입안에 남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착한 아이 신드롬에 스스로를 밀어 넣고 있었다.
짜장은 나에게 착한 아이 신드롬과 같았다.
나는 아직도 짜장을 보면 무의식적으로 양을 가늠하고 있었다.
"애기들 잘 먹더라. 챙겨 가."
전달받은 마음에도 내 몫은 없었다.
묵직하게 눌러 담긴 용기 안에도 나에게 주는 마음은 뚜껑에 맺힌 물방울정도라 생각했다.
그렇게 마음을 좀 먹어 갔다.
"엄마, 배고파요~"
아이들의 성화에 식사를 준비했다.
갓 지은 밥 위에 따끈하게 데운 짜장을 부었다.
각자의 식판 위에 밥과 국 반찬을 채워, 상 위에 하나씩 올려주었다.
3호의 곁에 앉아 밥을 잘 비벼주고 한 입씩 떠먹여 주고 있던 그때,
"엄마, 아아-!"
포크로 밥을 뜨며 내게 말을 건네는 3호였다.
어설프게 떠진 밥풀이 후드득 떨어지는 것이,
얼어붙었던 마음이 녹아 툭 툭, 고드름이 떨어지는 듯했다.
"어? 그럼 나도! 엄마, 내 것도 아아-!"
"왜 오빠만 줘~ 엄마, 제 것도요!"
너도 나도 주겠다며 숟가락에 한가득 퍼 담은 짜장밥을 들이밀었다.
아이들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짜장은 내게 아픈 음식이었건만, 너희에게는 애정이었는지
해맑게 건네는 손길에, 핑 돌아버린 눈물이 앞을 가리웠다.
한 명, 한 명의 애정을 받아먹었다.
한 숟가락의 애정과 눈물을 함께 삼켜 넘겼다.
착한 아이이고 싶었던 나는, 착한 아이들을 낳아 애정을 받아먹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