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남자친구와의 연락은 일주일에 한 번에서, 한 달에 한 번으로 점차 줄어갔다.
보고 싶다는 말에 그는 항상 단답으로 답을 했고 그런 남자친구 대신 너와의 연락이 길어져 갔다.
"요즘은 연습실도 잘 안 가."
"대학교 결과 기다리느라 많이 예민한 것 같더라고."
그의 곁에 있는 너에게 연락을 받을 때마다 수없이 많은 갈등을 겪어야만 했다.
질투의 감정도, 분노의 감정도 모두 그로 인해서 비롯된 것들인데
모든 감정의 화살은 너에게로 쏟아져 갔다.
기다림에 지쳐서 포기를 하려 해도 닿지 않는 연락에 이별을 전할 길이 없었고,
혼자서 메말라가다 나도 모르게 발길이 이어질 때도 많았다.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였음에도, 설레는 마음만으로 순간이동을 한 듯했지만
아파트 입구에 멈춰 서서 그의 집을 올려다볼 때면 한숨만이 푹푹 내쉬어졌다.
오늘 올래?
별 것 아닌 문자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설레는 것인지, 두려운 것인지 모를 정도로 심장은 미친 듯이 크게 뛰어댔고
손 끝이 파르르 떨리며 끝없는 진동이 이어졌다.
"잘 됐네! 좋은 시간 보내고 와."
그에게 연락이 왔다고 전달했더니 단숨에 답장을 보내온 너였다.
같은 동네에서 코 앞에 살면서도 스치듯 마주치는 요즘이라며,
무척 이도 바쁜 시기라고 계속해서 말하던 너였다.
바쁨을 강조하는 너의 말에서 은연중에 어색한 웃음이 섞여 있었다.
그를 알아채지 못할 내가 아니었다.
그를 알아채지 못하길 바라는 너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만나러 갈 것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와의 시간은 여느 때와 똑같았다.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고, 함께 시간을 보냈지만 그와 나는 서로 다른 시간 위에 서 있었다.
"내일 신입생 OT에 가. 가면 선배들도 계시니까 연락하기 힘들 거야."
'연락하기 힘들 거야 - 연락하지 마'로 들린 것은 어째서였을까.
아마도 그가 전하고 싶은 진심이 들렸던 것이겠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잘 다녀 오라며 웃으며 인사를 해주었다.
어색하게 보낸 시간에 익숙한 인사를 건네며 문을 닫았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가라앉는 마음을 다독여냈다.
층이 내려 갈수록, 내 마음도 지하 깊은 곳으로 내려가기만 했다.
그가 말했던 연락하지 말라는 시간은 바람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하루, 이틀. 정신없이 바쁘겠다 생각하며 넘어갔다.
사흘, 나흘. 연락이 없는 것에 불안했고, 무슨 일이 있진 않은지 걱정했다.
일주일, 열흘. 너에게도 닿지 않는 연락에 분노했다.
두 사람 모두에게 버려진 것이라는 생각에 하늘이 무너지고 분노로 머리가 돌아버리는 것 같았다.
친한 친구의 핸드폰을 빌려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보름이라는 시간이 지날 동안 곁에서 무너져 내리는 나를 보며 친구는 덤덤히 포기하라 했었다.
현실을 부정하기에 바빴던 나는, 마지막 부탁이라며 통화 한 통만을 요구했고
뚜르르- 신호가 가는 동안 친구의 손을 붙들고서 치솟는 울분을 삼켜냈다.
"여보세요?"
시간이 멈추고, 머리가 차게 식어갔다.
분명 연결된 것은 남자친구의 전화였지만, 들려온 것은 낯선 여자의 앳된 목소리였다.
남자친구의 연락처가 맞는지 물었더니, 자기야- 소리와 함께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내 자기였던 그는 사라지고, 악마 같은 목소리의 낯선 남자가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어떻게 된 거야...?"
깊은 한숨 소리와 함께 남자친구가 건넨 한 마디.
남자가 이 정도로 연락이 안 되면, 눈치껏 알아먹어야 하는 것 아니야?
2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지내오면서 단 한 번도 겪으리라 상상하지 못했던 아픔이었다.
믿을 수 없는 그의 말에 함께 듣던 친구조차 숨을 멈췄다.
언제 끊어진 것인지, 넋이 나간 내 대신 친구가 끊어 버린 것인지 핸드폰 액정은 검기만 했다.
다시 걸어 보았지만 연결되지 않는 전화는 이내, 너에게로 향했다.
한 번만 받아 주기를. 딱 한 번만 받아 주기를.
딱 한 번만 받아서 평소처럼 변명해주기를 수없이 바라고 또 바랬다.
마지막 동아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연결되지 않는 전화에 계속해서 매달렸다.
그와 지나온 모든 시간이 봄날이었다 생각했것만
따스한 봄날은커녕, 메마른 가뭄도 사치인 나날이었다.
뚝 끊겨 버린 신호음과 함께 내 마음의 계절도 뚝, 하고 부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