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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끄적이 엄마의 짧은 단상

소소한 일상이 모티브가 된 하루 일기.

by Gin

감정 동화



아이들을 키우면서 제일 힘들었던 것이 있다.

"감정" 이라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것이었다.


나 자신의 감정도, 토토로를 대할 때의 감정도,
커가는 아이들의 감정도, 그 사이에서 서로가 나누는 감정들도
하나같이 섬세하고 연약하기 짝이 없어서 쉬이, 대할 수 없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내 문제다 싶어서 나 홀로 감정을 다스리기에 바빴다.

참아도 보고, 내던져도 보고, 하소연도 해보았지만 감정이라는 놈은 쉽게 다스려지지 않았다.

토토로는 언제나 잔잔한 물결 같았고, 아이들은 순간 나타났다 사라지는 벼락 같았다.


태풍처럼 휘몰아치는 감정의 폭풍 속에서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텨내던 나는

결국, 감정이라는 커다란 벽에 기대어 지친 몸을 쉬게 하며,
하루를 버텨낸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가장 크게 어긋나던 것은 1호와의 대화였다.

1호와의 교류는 하나부터 열까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쩜 이렇게 안 맞을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1호가 툭, 툭 내뱉는 말들이 신경을 거슬렀다.
우리집보다 외할머니 집을 편하게 느끼는 것이 불쾌했다.
잘못 된 점에 대해 고쳤으면 좋겠다 말을 하면, 다짜고짜 짜증부터 내는 아이의 행동에 당황스러웠다.



엄마는 왜 자꾸 내 감정을 무시해?


너도 엄마의 감정을 받아들이려 하질 않잖아!


점점 1호의 생각의 흐름을 유추할 수 없었다.

아이의 감정이 어떻게 뻗어 나가는지를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그렇게, 어긋나고 비켜가다 보면 언제나 우리는 서로에게 고함을 치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말이라는 칼을 겨누었고, 끝없는 전쟁 속에서 지쳐가고 있었다.


변화가 생긴 것은 매달 들르던 근처의 서점에서 아이들이 책을 고르고 있던 날이었다.

한참 책장 사이를 거닐던 1호가 슬그머니 다가와 "이 책 어때?" 하며 책 한 권을 내밀었다.


*[사춘기 준비 사전] - 저자, 박성우


내용을 볼 수 있도록 전시 된 책을 읽어 보고는 자신에게 꼭 필요할 것 같다며,

다른 책은 본인의 용돈으로 살테니 이 책만큼은 선물로 사줄 수 있는지 물어보는 것이었다.

아이가 자신의 감정에 대해 살펴보고 싶다는 말에
제대로 알아봐 주지 못하는 엄마여서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흔쾌히 책을 결제 해주고 집으로 돌아 오자마자 책을 읽고 있는 아이를 보았다.

한 장, 한 장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때로는 멍하니 시선을 두었다가 다시금 책으로 시선이 향하는 모습에

문득, 아이와 함께 읽으며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글을 써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1호야, 엄마가 물어보고 싶은게 있는데..."


책을 읽고 있는 1호에게 다가가 쪼그려 앉으며 조심스레 물었다.

우리가 서로의 감정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으니, 조금 더 쉽게 알 수 있는 감정 동화를 써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아이는 눈이 동그래지며 두 손을 모아 입을 가렸다.




너무 좋아! 엄마랑 같이 할 수 있는거야?



끝도 없이 아이디어를 쏟아내는 1호의 눈에서 희망이라는 여린 빛이 살포시 서린 듯 했다.

이내, 시끌벅적한 오빠가 궁금했는지 2호도 다가와 갸웃거렸다.

2호에게도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밝게 웃으며, 발을 동동거리고는 목을 껴안으며 안겨왔다.


아이들이 이토록 좋아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이들이 발을 구르며 좋아할 정도로 마음을 몰라주고 있었구나 하는 마음도 들었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잠시 시선을 피했지만, 이내 눈을 맞추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아이들의 들뜬 표정이 내 안의 미안함을 녹여주고 있었다.


노트북을 펴고서 아이들과 마주 앉았다.

수많은 감정의 이름들이 구슬처럼 주르륵 쏟아져 나왔다.

아이들이 쏟아내는 많은 구슬들을 한 줄로 나란히 세워 목차를 만들고, 배경을 세워 뼈대를 잡았다.

아이들과 함께 집을 짓는 마음으로 단단한 바탕을 고르고 기둥을 세우며, 예쁜 그림을 그려나갔다.


감정을 모티브 삼아 동화를 쓴다는 것은 나에게도 새로운 도전이 되었다.

감정 하나에 수많은 해석이 딸려 나왔고, 여러 갈래의 설명이 나열 되었으며,

열매가 알알이 맺힌 포도송이처럼 아이들의 상상력은 끝도 없이 맺혀나갔다.


우리는 느껴지는 "감정" 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는 나눌 수 있는 "감정" 에 대한 토론을 했다.


서로가 서로의 생각을 알게 되었고,
하나의 감정을 어떻게 받아 들이는지 디테일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점차, 서로의 마음에 다가서고 있었다.
나란히 서서 걸을 준비를 해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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