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이 모티브가 된 하루 일기.
"엄마 여기 선생님들은 말이 험하신 것 같아."
이사를 온 뒤, 1호는 학교 생활에 대해 말이 별로 없었다.
전학을 왔다는 부담감 때문인지, 아직 파악 중이라 그랬는지
인천에서 살 때와는 비교가 될 정도로 학교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줄었다.
그런 1호가 저녁을 준비하고 있는 내 옆에서 물을 따라 마시며 뜬금없이 말문을 열었다.
"선생님들이 말이 험하셔?"
"응. 자세히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가까워지기가 쉽지가 않네."
선생님과의 감정 교류를 잘해오던 녀석이라 가까워지기 쉽지 않다는 말이 그냥 넘어가지지 않았다.
혹시나 전학을 온 여파가 있는 것일까 걱정이 되었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어떤 점에서 그렇게 느꼈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음... 담임 선생님은 나보고 달달병에 걸린 환자래.
내가 요즘 학교에서 나도 모르게 다리를 많이 떨었나 봐.
영어 선생님은 우리처럼 수업 시간이 싫으신가 봐.
짜증 난 표정처럼 인상을 쓰시고는 머리가 비었냐고 하시더라고."
야채를 손질하던 손이 뚝, 하고 멈추었다.
아이의 말에 들고 있던 도구들을 차분히 내려놓은 채,
전후 사정을 모른 채로 흥분해서는 안 된다며 마음을 다독였다.
"선생님들께서 아무 이유 없이 그렇게 말씀하지는 않으셨겠지...
혹시, 수업 중에나 생활하면서 불편한 일들이 있었어?"
아이는 차분히 물을 마시며 생각하는 듯하더니 딱히? 라며 컵을 내려두고는
너무 신경 쓰지 마- 여기 학교는 원래 그래. 하고 등을 돌렸다.
"엄마, 나 놀이터 가서 조금만 놀다 올게!"
"어, 어...! 저녁 먹어야 하니까 한 시간만 놀다 와!"
띠리릭-
닫히는 문소리와 함께 마음속에서도 쿵,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예전에는 1호가 다니는 학교의 도서도우미 활동을 했었기에
주변의 다른 학부모회 엄마들과 이런저런 상담도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교류할만한 관계들이 없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선생님들의 성향도 아직 파악하질 못했기 때문에 괜스레 아이의 말만이 뇌리에서 떠돌았다.
섣불리 나섰다가는 되려 아이에게 악영향이 될 것 같아 조심스러워질 뿐이었다.
1호는 나갔다 들어오더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는지 준비해 둔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2호와 이야기도 나누고, 느리게 먹으며 장난만 치는 3호에게 형아답게 잔소리도 하였다.
저녁을 먹는 아이들을 두고 주방에서 뒷정리를 하며 열이 차오르는 머리를
흐르는 물과 함께 비워내려고 노력했다.
내 상식 선에서는 다리를 떠는 것에 주의를 주려고 병에 걸린 환자라는 표현을 쓴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될뿐더러, 나이가 나보다 어린 선생님이실지라도 아이들에게 머리가 비었냐는 말은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아닌가 싶었다.
이럴 때에는 토토로가 너무도 보고 싶어 진다. 머리가 복잡해지고 감정이 널을 뛸 때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너와 같은 상식을 탑재한 것이 아니야"
라며 일침을 놓는 토토로가 그리웠다.
토토로도 이번 건은 문제가 있다고 하지 않을까?
거실 작업대 위에 아이들이 올려 두었던 가정통신문이 스쳐 지나갔다.
-4월 00일 0 요일 학부모 공개수업 참가 확인서-
토토로가 오면 상의를 해야 했다.
무엇을 말해야 할지, 어떻게 말해야 할지 질문지라도 작성해야 할 판이었다.
지금 같은 기분으로는 투우사의 붉은 천에 꽂혀버린 황소의 흥분 밖에는 되지 않을 것이다.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분노할 때 분노하더라도, 제대로 된 사실만으로 이야기해야 할 테니까.
옷장을 열어 그날 입을 옷도 골라야 했다.
전쟁에 참여하는 무사의 마음으로 진한 펜을 골라 참가 확인서에 동그라미를 그려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