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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 보낼 수 없는 편지

DM

by Gin

알고 지내던 이들에게서 자꾸만 너희의 소식이 들려왔다.

그때마다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세차게 비가 내리던 그날이 떠올랐다.

몇 시간을 기다리더라도 만나서 제대로 따져 묻고 싶었던 날.

다 부질없는 짓이었고, 결국은 포기해버리고 말았던 날.


'더 이상은 궁금해하지도, 알고 싶어 하지도 말자. 두 번 다시는 너희와 엮이지 않을 거야.'


술을 마시며 흘려보냈고, 몸을 앓아가며 도려낸 너희였다.

그렇게 생으로 끊어낸 너희였다.


한 2년이 지나서였나? 잘 쓰지 않던 메일로 편지 한 통이 날아 들어왔다.

너에게서였다.



잘 지내...?
연락이 끊긴 이후로도 계속 걱정이 되어서 써 본다.
나랑 걔는 지금 군대에 와 있어. 얼마 후면 전역이고.
가끔 네 이야기를 하고는 해. 그때 참 좋았지 하고 말이야.
걔로 인해서 널 알게 되었지만, 난 그동안 네가 날 진심으로 대해 줬다는 것을 알아.
나도 그랬다는 걸 너도 느꼈다면...
전역 후에 한 번 볼래? 전처럼 같이 밥이나 한 끼 하자.
불편하지 않다면 연락 줘. 연락처 남길게.



발신인을 보고서 클릭을 할지, 말지 숱한 밤을 고민했다.

메인 창을 켰다 끄기를 반복하며 '잘 지내...?'로 시작하는 제목에 대해 분노했다.

간신히 그들과의 기억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온 나를, 다시금 아픈 기억 속으로 끌고 가는 한마디였다.


머뭇거리는 손으로 제목을 누르고 메일을 읽어나갔다.

짧다면 짧은 문장들을 수차례 읽어가며 몰아치는 감정들의 폭격 속에서 멈춰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읽기만 했다.

자음과 모음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문장들 뒤로, 네가 내게 무엇을 원하는지 의도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


편지의 맨 밑에 적힌 너의 번호를 보면서 끝없이 떠오르는 물음표들로 정신이 혼미했다.

너와 다시 연락을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무슨 의도로 연락을 한 것일까?

나에게 있어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너희에게는 좋은 추억거리로 남은 것일까?


수많은 생각을 걸러내어도 결국 남은 한 가지는,

"너를 통한다면 그 사람을 다시 볼 수 있을까?"라는 것이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게 너무도 간사하고, 무척이나 치졸했다.

먼저 연락을 준 것은 너인데, 내가 떠올린 것은 잔인했던 그였다.


우리가 헤어진 진짜 이유, 그것이 알고 싶었다.

시간이 갈수록 원망만이 짙어져서 결국엔 나 자신을 책망했던 그 이유.

내 탓이라 치부했지만 내 탓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던 진실을 알고 싶었다.


오랜만이야 반가워, 만나자 따위의 인사는 적지 못했다.

오랜만이었지만 반갑지 않았다.

만나고 싶었지만,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이 궁금했지만, 알고 싶지 않았다.


내가 남길 수 있었던 것은 편지의 마지막에 적혀 있던 숫자들처럼 다리가 되어 줄 11자리 숫자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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