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그녀는 가끔, 내게 "요즘은 괜찮아?"라고 묻고는 했다.
괜찮냐는 질문 안에는 여러 가지의 내용이 녹아들어 있었다.
괜찮다고 말했다. 아무렇지 않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녀도 느꼈을 것이다. 나는 아직 괜찮지 않았다.
전보다는 많이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 틈에 있어도 전처럼 낯설지 않았고, 그 안에서 느껴지는 불편함도 무던하게 견뎌냈다.
어둠을 찾아 헤매지 않았고, 혼자 있을 자리를 찾아 서성이지도 않았다.
SNS를 통해 새로운 인연도 조심스레 만들어갔다.
함께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어느새 서로에게 하나뿐인 친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도 차마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었다.
바로, 너에게서 오는 뜬금없는 연락들이었다.
SNS라는 공간은 그런 곳이었다.
모르는 사람들과의 새로운 인연을 이어주기도 했지만,
잊고 싶은 이름, 피하고 싶은 인연 또한 문틈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처럼 닿게 되는 곳이었다.
기억에서 비워 내었던 메일 주소, 휴지통에 두었던 너의 답장이 스팸 메일처럼 다시금 내게로 날아든 것이었다.
너는 항상, '잘 지내?' 하며 메시지를 시작했다.
첫 문장에서부터 이기적인 너의 인사였다.
그 말은 늘, 너의 근황을 털어놓기 위한 관문이었을 것이다.
주저리주저리 적힌 내용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차피 메시지의 내용은 '한 번만 만나자'로 피날레를 장식했으니까.
수차례의 반복된 메시지는 자꾸만 과거를 들여다보고 싶게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술을 찾고, 어둠을 찾았다.
그녀는 그런 내 모습을 싫어했다. 다시금 혼자 어딘가로 사라질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차마, 너로 인해 속이 시끄럽다고는 털어놓지 못했다.
내게 다정하기만 한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밝고 명랑한 척 가면을 계속해서 써야만 했다.
가면은 내 마음까지도 숨길 수 있다고 믿게 했다.
자꾸만 떠오르는 생각을 지우려고 애써 새로운 인연을 찾았지만, 진심 없이 이어진 관계들은 가볍게 흘러갔다,
내 안의 진짜 '나'라는 사람은 점점 사라져 갔다.
껍데기만이 남은 채, 상대에게는 텅 빈자리를 내어주었다.
일회용이 돼버린 마음만이 남은 모습에 이럴 거면 차라리 만나버리고 말자 싶었다.
네 말대로 한 번 만나고 나면, 서로가 훌훌 털어낼 수 있을 거라 믿고 싶었다.
가면을 쓰고 나 자신과 모두를 속이기보다는, 이 방법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토요일 오전 10시. 구로역 1번 출구]
하고픈 말은 너무도 많았지만 단출한 답장을 보냈다.
오면 오고, 말면 말고 식의 어설픈 결투장 같은 답장이었다.
[보내기] 버튼을 누르는 순간,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스스로 재앙을 불러들이는 꼴이 우스워 고개를 내저었다.
"나... 결국은 만나기로 했어."
늦은 밤, 그녀와 통화를 하며 고해성사를 했다.
길지 않은 침묵이 내려앉고, 들려오는 것은 한숨뿐이었다.
"괜찮겠어?"
괜찮지 않았다. 괜찮을 수가 없었다.
너무도 고통스럽게 끊어 냈던 인연이기에 잠깐의 만남이라도 대미지를 입었다.
"괜찮아져야지... 그러려고 만나는 거니까."
"혼자 가기 힘들 것 같으면 같이 가줄까?"
"아니야, 괜찮아. 혼자 다녀올게."
사람은 사람과 기대며 사는 것이라지만, 과거와 마주하는 일은 오롯이 홀로 감내해야 하는 것이었다.
홀로 서기를 해야 했다. 내 힘으로 똑바르게 설 수 있어야 했다.
친구가 되어 준 그녀의 응원을 지팡이 삼아, 앞을 보고 걸어갈 준비를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