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이 모티브가 된 하루 일기.
아이들이 커가면서, 어느새 내가 소홀해진 때가 있었다.
내 손으로 씻기고, 옷을 입혀 챙기던 시절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아직도 '어린아이' 임을 보여주듯
여기저기 긁히고 찧어가며, 신경을 써달라고 무언의 표현을 해왔다,
아이고! 어쩌다가 그랬어?
시무룩한 얼굴로 다가와 엄마- 하고 읊조리며 기대 오는 아이들이었다.
작게 벌어진 상처 위로 몽글몽글 핏방울이 맺혔다.
붓기 아래엔 보랏빛 멍이 번져 있었다.
손가락 끝, 발가락 끝.
미처 신경 쓰지 못한 사이, 아이들의 흔적들이 자라 있었다.
얇고 날카로운 잔재들이 딱딱하게 굳어가며, 아이들처럼 키를 키우고 있었다.
계속해서 들여다보고, 다듬어 주어야 했던 것들이었다.
손톱도 발톱도 길어진 채 놔두면 어느 순간 날을 세우고 흉을 남길 수 있었다.
손톱깎이를 가져와 길어진 흔적들을 잘라내었다.
손과 발을 부여잡고, 머리를 맞대며 톡, 톡 조심스럽게 잘라냈다.
길쭉하게 곧게 뻗어, 제 키처럼 주욱- 자라난 아이들의 몸. 그 낯선 성장 앞에 미안함을 느꼈다.
"엄마가 빨리 해줬어야 했는데... 미안해."
"내가 먼저 말 안 했는데 뭐, 괜찮아."
깨끗해진 아이들의 손과 발을 보았다.
물티슈로 닦아주며 뽀얀 유백색의 손과 발을 쓰다듬었다.
갖다 댄 손이 어느새 내 손을 가렸다. 언제 이렇게 자랐나 싶었다.
한 명, 또 한 명 태어날수록 내 바쁨에 치여 곱디 고운 난초처럼 정성 들여 키우지 못했는데,
저마다 고고함과 싱그러움을 머금고 아이들은 쑥쑥 자라나 있었다.
먼저 말해주지 않으면, 손톱이 자란 것도 알아채지 못하는 엄마였다.
아이들은 그런 엄마를 이해하는 것으로 사랑을 보였다.
나는 어릴 적 바쁜 엄마를 원망했는데, 우리 아이들은 그런 나를 사랑으로 보듬었다.
너무도 빨리 어른이 되어버린 것 같은 아이의 말이 가슴에 남아 사무치게 아려왔다.
"너무 무리하지 마, 엄마. 힘들 땐 힘들다고 해도 돼."
덤덤하게 툭 던져오는 1호의 말에,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애쓰는 것이 전부였다.
어른이 돼야만 했던 지난날의 내가 아이의 얼굴에서 얼핏 비치는 것 같았다.
힘듦이 무엇인지 아는 아이로 키웠다는 것에 미안했다.
"사람 인(人)을 쓸 때, 서로 기대서 쓰는 이유가 있는 거랬어.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대.
힘들 때 기댈 줄도 알고, 기대게 해주기도 하면서 사는 것이 진짜 사람으로서 사는 거래."
2호가 다가와 한자시간에 배웠다며 허공에 글씨를 적어가며 말했다.
곧은 손가락으로 공중에 쓰인 작은 글씨가 불씨가 되어 마음속에 따스함을 심었다.
부모보다 현명한 아이들이었다.
자신을 살필 줄 알고, 주변을 보듬을 줄 아는 아이들이었다.
길가의 잡초처럼 자라온, 애정에 굶주린 엄마를 대신해 날개를 접고 곁으로 다가와 준 아기천사들이었다.
그 작은 천사들이 내게 가르쳐준 사랑은, 손톱보다 더 조용히, 그러나 더 깊이 자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