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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yes

숨겨진 눈

by Gin

#5.




" 고모가 거기를 왜 찾아 가요! "

" 당신, 그만 못해? "

" 아니, 나는 그저... 민욱이 한번 살려보려고... "

" 우리 지은이는요...? 우리 지은이는요! "

" 그만 하라고. "

" 대체 뭘 그만 해요! 저기 누워있는 우리 애는 안 보여요? 우리 애 망가진 건 안 보이냐고! "

" 올케... 미안해... 미안한데, 지은이 깨면... "

" 너도 그만해라. "

" 오빠! "


희미한 정신 사이로 흐느낌과 고성이 섞여 들려 온다. 머리를 한대 얻어 맞은 것처럼 찌르는 듯한 통증과 함께 어지러움이 밀려 들었다. 눈을 들어 처음 본 것은 새하얀 천장이었다. 그제야 코 끝에 와 닿는 익숙한 소독약 냄새, 버석하고 딱딱한 침대의 감촉에 지은은 자신이 병원에 와 있는 것을 깨달았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음은 뒤로 한 채, 표정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지은은 무덤덤했다. 몸을 일으켜 세워 창 밖을 보니 다행이 자신이 아는 곳임에 분명했다. 이 전에도 입원 해 본 적이 있던 지은은, 익숙한 듯 호출 버튼을 눌러 자신이 일어났음을 알렸다. 이내 데스크에서 분주한 소리가 들리며 의사와 간호사들이 들어 왔다.


" 지은양, 또 보네요. "

" ... "

" 일단 좀 볼게요. "


재아는 전공의에게 차트를 건네어 받으며 지은의 몸을 살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아직도 지혈이 덜 된 듯, 옅게 배어 나오고 있는 왼팔이었다.


" 일단, 상처는 제대로 잘 처치한 것 같네요. 상처 부위 많이 아프면 호출해요, 진통제 처방 해 둘테니까. 드레싱은 상담 때마다 내가 직접 할테니까 임 선생이 잘 체크해서 준비 해주고. "

" 네, 교수님. "

" 그리고 김 선생은 밖에 계신 보호자분들께 전원 면회 금지라고 안내하세요. "

" 네? "

" 그 편이 편하죠, 지은씨? "


지은은 말하지 않아도 불편함을 알아주는 재아가 고마웠다.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지은을 보며 재아는 입 안이 씁쓸해졌다. 지은이 불쑥 찾아와 약을 찾던 그 날, 이야기는 하기 싫다던 모습이 떠올랐다. 단순히 재발의 기미가 보이는 것인가 했는데 이런 결과를 가져올 줄 알았다면 그렇게 쉽게 보내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가 들었다. 지은의 보호자들은 전원 면회 금지 소식에 문 앞에서 실갱이를 벌이고 있었다. 첫 상담 때부터 매번 혼자 왔던 지은이기에 재아 조차 누가, 누구인지 몰랐다.


" 아니, 왜 못 들어 간다는 거에요? 우리 애는 괜찮은거죠? "

" 현재 환자가 각별히 안정을 취해야 하는 상황이라서 부득이하게 내려진 조치입니다. "

" 아무리 그래도 부모까지 면회 금지는 아니지 않나요...? 잠시만 들어가서 얼굴만 보고 올게요. "

" 죄송합니다, 어머님. 교수님 지시 사항이라서요. 그럼 이만. "

" 아니...! 저기, 잠깐만요! "

" 아이씨, 이럴 거였으면 괜히 기다렸잖아! 오빠, 나 가요. "


스테이션에서 가만히 대화를 듣던 재아는 한 숨을 내쉬었다. 들려오는 대화 내용만 들어 보아도 지은의 트리거가 어디서 비롯 된 것인지 알 것도 같았다. 재아는 지은의 차트에 무의식적으로 떠오른 단어들을 습관처럼 끄적여 두었다.


[ 완전한 독립? ]

[ 몇단계까지? ]

[ 강력한 트리거는? ]


병실 창으로 들어 오는 빛이 서서히 붉게 물들어 갔다. 지은은 자신이 얼마 동안 가만히 앉아만 있었는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머리 속에서 이어지는 기억들은 전혀 없었으나 오랜만의 멍 함이 달가워 그대로 있었다. 지은은 상담시간이라는 간호사의 말에 따라 재아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교무실로 혼나러 가는 학생의 기분이 이런 것이었지 하며 씁쓸한 웃음 지었다. 이내 문 앞에 서서 작게 숨을 내쉰 지은은 문을 두드렸다.


" 네. "


재아는 상담용 소파에 앉아 드레싱을 위한 세팅을 하고 있었다. 드르륵 링거줄을 끌고 들어오는 지은에게 살짝 미소를 띄우며 앉으라 손짓했다. 붕대를 풀어내는 손길이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다. 상처에서 배어 나온 진물로 인해 끈적하게 들러붙은 부위가 꽤나 아팠을텐데 지은은 표정에 한치 변화도 없이 평온 하기만 하다.


"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붙잡을걸 그랬네요. "


살짝 눌러 붙은 핏자국 때문에 붕대를 풀며 드드득 하는 느낌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재아는 길게 찢기고 깊게 파여서, 여러개의 길을 만들어 둔 듯한 상처의 형태에 소름이 돋았다. 대체 얼마나 심각한 상태였길래 이 지경이 되도록 자신의 몸을 상하게 한다는 말인가.


" 어쩌다 이랬어요? "

" 몇단계까지 갔던 건지는 말 해줄 거죠? "


조개 마냥 입을 꾹 닫은 채 창가를 보고 있는 지은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적어도 자신에게 만큼은 편하게 이야기 해주기를 바라는 재아였기에 지은의 침묵이 아프게 다가왔다. 양 팔의 소독이 끝나고 붕대가 새로 갈아질 때 까지 지은은 신음 한번 흘리지 않은 채 묵묵히 창가만을 쳐다 보고 있었다. 재아는 여전히 쉽게 곁을 내주지 않는 지은에게 서운했지만 조용히 기다려 주었다.


" ... 환각이 보였어요. 고모가 팔을 붙잡은 순간 손끝부터 빠르게 썩어 들어 가더라구요... "


영혼이 빠져버린 것 같은 얼굴로 무심히 풀어내는 이야기가 지독하리만치 무덤덤 했다. 재아는 환각이 보였다는 지은의 말에 절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 처음 자신과 만났을 때에도 심각한 환각 증세로 인해 입원 치료를 권했었고, 긴 시간을 들여서 간신히 지은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왔었다. 지은의 약 처방 주기가 길어 질 수록 내심 반가웠던 재아였기에, 회기 현상을 겪고 있는 지은이 안타까웠다.


" 아프진 않았어요? "


지은은 단단히 감아진 붕대 위를 살며시 쓰다 듬는 재아를 보며 팔을 빼내었다. 아프지 않았냐는 질문이 상처를 향한 것인지, 내면을 향한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 처음 겪는 것도 아니고. 그다지 "

" 밖에 계시던 분들... 부모님 맞죠? 다른 분도 같이 계시던데. "

" 소독 끝났으면 가도 되죠. "

" 빨리 퇴원하고 싶으면 나랑 상담을 해야 하는 건 알죠? "

" ... 말 한다고 달라지는건 없더라고요. "


지은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래서 병원이 싫었다. 뭐든지 쉽게 물어보고, 퇴원을 빌미 삼아 협박 아닌 협박을 해 온다. 지은은 점차 목을 조여오는 듯한 느낌에 문을 박차고 나왔다. 어디를 봐도 갑갑한 느낌에 이 공간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 지은아. "


병실로 가는 도중 마주친 아버지의 모습은 이전과 그다지 다른 것이 없었다. 큰 풍채에서 풍기는 위압감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지은에게는 위협적이었다.


" 퇴원하면 집으로 와라. 그 정도 반항 했으면 그만 할 때도 됐어. "

' 집? 어디가 내 집인데. 반항? 그만? 어떻게든 정신 차리고 살아 보려고 아등바등 버티는 게 겨우 반항이라고...? '


자신은 하루, 하루를 지옥 불길 속에서 몸을 태워가며 간신히 버티고 있는데, 겨우 반항이라는 단어로 취급 해 버리는 아버지에게 배신감이 솟구쳤다. 지은은 둘러진 붕대 위로 다시금 벌레들이 보이려 하자 팔을 감싸 쥐고는 빠르게 병실로 들어갔다.


[ 가만히 좀 있어 봐! ]

[ 잠깐이면 돼.]

[ 네가 너무 좋아서, 그래서 그래. 나도 어쩔 수가 없어... ]

[ 한 번만. 응? 이것만 해주면... ]


온 몸에서 식은땀이 흘러 내렸다. 가위에 눌린 듯 손가락 하나 옴짝달싹 못 한 채, 기억 속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었다. 눈 앞에서 반짝이고 사라지는 빛이 살갗에 뾰족하게 내리 꽂혀 속으로 파고드는 것 같았다. 달이 차오르며 끝에서 끝으로 기울어 갈 때까지 지옥은 끝없이 불길을 높게 지폈다. 귓가에 울리는 찰칵 소리에 파고 들어갔던 빛살들이 슬금 슬금 피부를 뚫고 나와 사각, 사각 갉아 먹으며 배를 채웠다.


비가 추적, 추적 내리던 무더운 여름 날이었다. 아침 하늘이 유독 화창하게 맑았던지라 비가 올 수 있다는 아침 뉴스의 내용 따위는 가볍게 지나쳤다. 하교 시간이 되어 갈 수록 맑았던 하늘은 미술 시간이 끝난 뒤 수채통에 든 물처럼 혼탁하고 뿌옇게 변해갔다. 하교 길부터 한 두 방울 떨어지던 빗줄기는 점차 거세어져 어느새 얇은 교복 셔츠를 투명하게 바꾸었다.

지은이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집안 분위기도 사뭇 전과는 달라졌다. 사춘기에 접어든 지은을 위한 것인지 자주 집에 드나 들던 사촌들도 고모들을 제외 하고서는 되도록 마주치지 않도록 부모님의 배려 또한 이어졌다. 그 덕분에 지은은 밝았던 웃음을 서서히 되찾아 갔고 민욱과의 일은 그저 악몽 속의 이야기 쯤으로 여기며 기억 속 깊은 곳에 묻어 둘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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