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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이 Mar 04. 2024

실패인듯 성공인듯

헛된 시간은 없다.


2024년 3월 4일.

전국의 모든 유초등 및 대학교가 개학을 하는 날이었다.

설렘 반 걱정 반 상태로 등교하는 학생들과 함께 나도 출근을 했다.

갓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름 고등학생이 되어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아이들과 마주했다.

애써 포장한 늠름한 모습 뒤에 숨겨진 순수함과 천진난만함이 엿보여 아이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웃음이 새어나왔다.

교복 셔츠의 제일 윗 단추까지 꼼꼼하게 잠근 모습이며, 애국가를 제창하는 또랑또랑한 목소리며, 모든 것이 2~3학년에게서는 볼 수 없는 ‘신입’들의 귀여운 모습 딱 그대로였다.

그렇게 오전 입학식을 끝내고 마치 유치원 어린이들처럼 담임선생님 뒤로 2줄 씩 줄을 세워 교실까지 데려왔다.

‘병아리-삐약삐약’, ‘오리-꽥꽥’ 구령만 외치지 않았을 뿐, 새 유치원에 오늘 입학한 우리 딸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해 쭈뼛쭈뼛대는 아이들을 차례로 앉히고 예비소집일에 나누어 주었던 자기소개서를 거두었다.

언뜻 언뜻 보이는 글자들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지만, 찬찬히 읽어볼 요량으로 일부러 보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렇지만 언제나 결심은 깨지기 마련! 점심시간이 지나고 약간의 여유가 생기자 반 아이들의 자기소개서를 읽기 시작했다.

남 이야기를 보거나 듣는 일만큼 짜릿한 일이 또 있을까?


아이들의 진솔하고 꾸밈없는 이야기들을 훔쳐보다(?) 장래희망이 교사인 학생의 글에서 잠깐 멈추었다.

뒤적여보니 꿈이 교사인 학생이 몇명 더 있었다.

문득 고등학교 입학 당시 나의 자기소개서를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조금 센치해졌다.

갈수록 교단에 서는 일이 감정적으로 고된 일이 되어 교사 기피 현상이 번지고 있는 요즘, 그 와중에 교사를 꿈꾸는 학생이 있다는 것이 반가웠고 고마웠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교사를 꿈꾸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나는 꽤 어릴적부터 교사를 꿈꾸었다. 아마도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인 것 같다.

4살 어린 남동생을 앉혀놓고 알아듣지도 맞추지도 못할 퀴즈들을 내고 설명을 하며 ‘선생님 놀이’에 심취해있엇다.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친구들의 질문에 TMI를 쏟아내며 충실하게 답변하는 아이가 나였다.

나는 누군가를 가르치고 설득하고 상담해주는 일이 좋았다. 교사가 천직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사범대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고, 대학만 졸업하면 교사가 되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지리도 복도 없게 내가 졸업할 무렵부터 학령인구 감소를 염려하여 교원 감축에 돌입했고, 신규 교사 채용 수를 줄이는 것이 그 첫번째 정책이 되었다.

특히 나의 과목인 국어는 경기도를 제외하고는 채용 인원이 두자릿수인 곳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너무 적은 채용 인원에 교사가 될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졌고, 나는 임용을 접어야겠다는 결단에 이르게 되었다.

내가 정한 마지막 임용 시험을 치르고 난 뒤 나와 가장 친한 친구와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그 친구는 나와는 다른 과목이었고 그 과목은 그 당시에 굉장한 호황을 누리는 터라 임용을 단 한번에 합격하고 교직 생활 중인 친구였다.

그 친구는 자신이 교직에 있어보니, 인생에 큰 실패가 없었던 것이 오히려 좋지 않다고 말했다.

고등학생 때도 늘 상위권이었고, 대학에서도 높은 학점을 받았었고, 임용까지 단 번에 합격을 했으니, ‘인생의 쓴맛’을 본 적이 없는 친구는 학생들과 상담할 때 공감대가 잘 형성되지 않아 힘들 때가 많다고 털어놓았다. 그런 학생을 어떻게 상담해 주어야 할 지도 모르겠고, 해 줄 말도 없으며, 이해도 동감도 잘 되지 않아 난감하고 당황스러울 때가 많았다고 했다. 오히려 실패도 겪어보고 울어도 보고 다시 일어서보기도 한 내가 교사가 된다면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든 못하는 학생이든, 모든 학생들에게 좋은 멘토이자 선생님이 되어줄 수 있을거라며 임용을 손에서 놓지 말라고 당부 아닌 당부를 해주었다.


그땐 그 친구의 말이 마음 속 깊이 와닿지도, 큰 위로가 되지도 않았다.

‘넌 붙었으니 그리 말할 수 있는거야.’라며 마음 한 켠에선 날을 세우기도 했었다.

하지만 역시 헛된 시간이란 건 없었고, 돌고 돌아 다시 교단에 선 나는 그 친구의 말대로 어떤 학생이든 상담할 준비가 되어있는 넓은 그릇이 생겼다.

시험이 끝난 뒤 아이들의 눈빛만 보아도 어떤 마음일 지 가늠이 되고, 모른척 해줘야할지 위로를 해줘야할지 대응방식을 빠르게 판단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아이들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 것 같았다.


오늘 자기소개서를 읽으며 다음 담임 시간에 우리반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생각났다.

꼭 한번쯤은 실패를 해보라고!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결코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도.

그리고 실패를 통해 내 안의 그릇을 더 키울 수 있다는 것도.

더 좋고 더 단단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성공만 하는 것이 답이 아니라는 것도.

나의 메시지가 진부하게 들리지 않도록 나의 모든 실패를 녹여 온 마음을 다해 나의 진심을 전해보는 시간을 가져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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