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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ㅈㄷ Oct 24. 2021

5. 불행은 자석과 같아서

쉐이나 (Shaina) 이야기

내가 운 좋게 강제퇴거의 고비를 무사히 넘긴 것과는 달리, 쉐이나는 불행히도 그렇지 못했다. 우피 골드버그를 연상케 하는 후덕한 외모에 드레드락으로 곱게 땋아 내린 머리를 한 쉐이나는 시카고에서 나고 자란 흑인 여성이다. 그는 세 살 아들과 남자 친구와 함께 2년 전 즈음에 이 동네로 흘러들어왔다.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시카고를 떠나 어떻게 아무 연고 없는 이 미시간 시골 마을까지 오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나 같은 이방인이야 밥 먹여주는 곳 따라 살게 마련이지만, 그는 딱히 진학이나 이직 때문에 이사 온 것 같진 않았다. 얼버무리듯 말했지만, 아마도 남자 친구가 사고를 쳐서 더 이상 고향에서 발붙이고 살기 힘들게 된 모양이었다.


둘이 수중에 있는 돈은 넉넉하지 못했고 당연히 오자마자 직장을 구해야 했다. 고등학교 중퇴인 남자 친구는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기 어려웠다. 그나마 이사업체에서 일용직으로 일거리를 얻긴 했지만, 수입이 일정하지 않았고 그나마도 돈을 벌면 쇼핑과 술값으로 탕진하기 바빴다. 생활력이 강한 쉐이나는 남자 친구의 무능력과 소비습관이 못마땅했지만 그렇다고 헤어질 수는 없었다. 남자 친구는 쉐이나가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에게 친부보다 더 다정했다. 또 낯선 곳에서 마음 기댈 곳이 필요하기도 했다.


쉐이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친척의 소개로 회계사 사무실에서 2년 정도 일했다. 처음에는 자신이 수학을 잘했기 때문에 회계사 사무실에 소개를 받은 것이라 생각했지만, 사실 사무실에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우편물을 정리하는 정도의 잔심부름을 할 사람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래도 스스로에게 느끼는 자부심은 꽤 컸다. 고등학교 졸업 후 술집이나 전전하고 마약에 손대는 친구들이 적지 않았다. 그는 거기에 비할바 없이 고귀하고 성실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2년 간의 회계사 사무실에서의 직장생활이 경력이 되어 여기서도 회계사 사무실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시카고에 비하면 훨씬 규모가 작은 사무실이었다. 회계사와 회계업무보조 한 명, 그리고 쉐이나까지 모두 세 사람이 직원의 전부였다. 업무량은 이전 직장과 차이가 거의 없었지만, 월급은 훨씬 적었다. 하지만 딱히 다른 대안도 없었고 당장 다음 달 아파트 월세를 포함해서 식구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에 찬밥 더운밥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 한두 달 업무가 손에 익어가면서부터 슬슬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회계사와는 사이가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문제는 회계사 보조업무를 보던 여자였다. 그가 들어오던 날부터 마땅찮아하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시비를 거는 일이 잦아졌다. 일처리가 느리다며 늘 타박이었고, 하다못해 볼펜 하나가 없어져도 쉐이나의 책상을 훑어보며 의심했다. 자신이 일처리가 조금 느린 건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큰 실수를 하는 것도 아니어서 도대체 왜 시비를 거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그가 클라이언트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백인들과 흑인들을 상대하는 태도가 달랐다. 그가 자신을 싫어했던 이유가 뭔지 알게 된 것이다.

 

“그냥 내가 흑인이라서 싫었던 거지.”


 쉐이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하루 이틀 겪는 일도 아니라 당황스럽진 않았지만 짜증은 났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쉐이나도 그녀를 차갑고 대하는 것으로 샘샘이를 쳤다. 인종차별 따위는 마틴 루터 킹이 ‘나에게는 꿈이 있다’고 외친 순간 다 해결된 게 아닌가 생각하지만, 인종 간의 갈등은 아직도 여전히 일상 속에서 미묘하게 드러난다. 이런 일상에서의 갈등이 차곡차곡 쌓이다 임계점에 달하는 순간, 어마어마한 폭발력을 가지고 터지게 되는 것이다. 사적인 영역에서 터지면 드잡이질, 총질 일어나고, 사회적으로 터지면 ‘Black Lives Matter’와 같은 운동에너지로 전환되는 것이다.


6개월 정도가 지난 어느 날, 아침 출근길에 시동을 거는데 뭔가 ‘투둥’하고 내려앉는 소리가 나더니 차가 움직이지 않았다. 그동안 불안 불안하던 20년 된 혼다 시빅이 말썽을 일으킨 것이다. 쉐이나는 회사전화 걸어 사정을 설명했다. 오늘 하루는 출근하기 힘들 것 같다고. 회계사는 마땅찮아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 그러라고 했다. 꿈쩍도 않는 차를 견인 서비스를 이용해 겨우 정비소에 가져갔더니 트랜스미션이 나갔다고 했다. 20년 묵은 똥차에 트랜스미션까지 갈아주는 정성을 들이고 싶진 않았지만, 중고차를 사려해도 그보다는 몇 백 불은 더 나갈 것 같아 울며 겨자 먹기로 고치기로 했다. 그렇게 차 수리하는데 하루가 다 가고 진이 다 빠져 집에 들어왔더니 몸살 기운이 돌았다. 하필 눈비가 섞여 내리던 고약한 날 차를 고친다고 하루 종일 종종 거렸더니 감기몸살이 걸린 모양이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아파서 출근할 수 없었다. 그렇게 이틀을 꼬박 앓고 났더니 여전히 기운은 없었지만 움직일 만했다. 나흘이 지나 사무실에 나갔다. 출근하자마자 회계사 보조가 회계사 방으로 바로 가보라고 했다. 습관적이고 건조한 굿모닝 아침인사도 없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불안한 마음으로 갔더니 회계사가 내일부터 회사에 나오지 말라고 했다. 해고였다. 쉐이나는 아팠기 때문에 정당하게 병가를 쓴 것이라 항변했지만, 그것과는 무관하다고만 말했다. 회계업무보조로부터 그간 업무능력에 대해 꾸준히 보고를 받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판단한 것일 뿐이라 했다. 뭔가 부당한 일을 당한 것 같지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결국 회계사와 업무보조에게 쌍욕을 날려주고 나오는 것 외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하루살이처럼 겨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갔는데, 갑작스럽게 해고를 당하니 살 길이 막막했다. 게다가 자동차 트랜스미션을 수리하는데 몇 백 불을 쓰는 바람에 예상외의 지출이 생겨 당장 다음 주 아파트 월세를 어떻게 막아내야 할지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았다. 남자 친구는 일주일째 연락이 없다. 있다 해도 생계에 도움이 되는 인간은 아니므로 아예 기대를 하지 않는다. 아파트 오피스에 가서 사정해보았지만 아파트 매니저는 요지부동이었다. ‘나는 관리인일 뿐이다. 내가 너를 도울 방법은 없다.’ 하루빨리 직장을 찾아 돈을 버는 것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었다. 한 달 뒤, 다행히 그는 월마트에서 캐셔 일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상황을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집세를 내지 못한 지 30일이 넘어가자 강제퇴거명령이 내려진 것이다.

"Eviction 1/2" by wolfpeterson is licensed under CC BY-NC-SA 2.0


몇 안 되는 구질구질한 살림살이는 모두 길거리에 내동댕이 쳐졌다. 소파며, 침대며, 이불들이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부려져 있는 꼴을 보고 있자니 쉐이나도 자포자기 심정이 되어버렸다. 사실 어릴 적에도 겪었던 일이다. 몇 날 며칠을 엄마와 형제들과 좁은 미니밴에서 지냈던 기억이 떠올랐다.


쉐이나는 옷 가지만 몇 개 챙겨 여행가방에 주섬주섬 담아 아이와 함께 아파트를 쫓겨나듯 떠났다. 다행히 이번에는 차에서 지내진 않을 것이다. 남자 친구가 이삿짐을 나르고 벌어온 돈으로 며칠은 싸구려 모텔에서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며칠만 버티면 월급이 나올 테고 또다시 저렴한 렌트를 구해 보면 될 일이다.


쉐이나가 강제퇴거를 경험한 2016년 한 해에만 미국에서 230만 명의 사람들이 퇴거명령을 받았다. 매 1분마다 4건의 퇴거명령이 내려진 것이다. 매일 6,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살던 집에서 쫓겨났다. 강제퇴거는 단지 집을 잃는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학교를 잃어버리고, 친구를 잃어버린다. 강제퇴거는 사회적 주홍글씨가 되어 다른 안전한 동네로의 이주를 어렵게 만든다. 결국 퇴거자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주거환경이 나쁜 곳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고, 심한 경우는 홈리스가 되기도 한다. 이는 극심한 우울증과 건강악화를 초래하고 실직으로 이어져 더 극단적인 가난으로 내몰리게 된다. 불행은 자석과 같아서 하나의 불행은 또 다른 불행을 끌어들인다.


그 일을 겪고 난 뒤, 쉐이나는 안정된 직장만이 생존의 필수조건이라 여기게 되었고 그 답으로 찾은 곳이 바로 우체국이었다. 미국에서 우체국은 오랜 세월 저학력과 유색인종에게 진입장벽이 낮으면서도 가장 신뢰받는 공무원 집단으로 인식되었다. 그의 외할머니는 늘 우체국 일을 동경했다고 한다. 외할머니가 젊었던 시절 흑인들이 가장 선망하던 직업 중 하나는 우체국 직원이었다. 그 당시 가난하고 못 배운 흑인들에게 경제적 안정과 공무원이라는 사회적 지위를 동시에 가져다주는 일자리는 흔치 않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삼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사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일단 임시직을 거치고 나면 우체국 정규직 직원 채용을 위한 시험을 칠 계획이다. 그렇게 우체국 정식직원으로 들어가면 수입도 안정적이 될 테고 부당하게 해고당할 일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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