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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ㅈㄷ Oct 24. 2021

6. 첫날, 서툴고 설레는


사흘 간의 오리엔테이션이 마치고 추수감사절 연휴 마지막인 금요일, 드디어 우체국으로 첫 출근을 했다. 밤 근무는 오후 5시부터 밤 11시, 그리고 밤 12시부터 아침 6시, 이렇게 두 타임으로 나누어진다. 근무시간은 마음대로 고를 수 없고, 우체국에서 배치해주는 시간을 따라야 한다. 임시직이 네 명이라 둘씩 짝 지워졌다. 나는 브라이언과 짝이 되어 오후 5시부터 밤 11시까지 근무하는 팀에 배속되었다.


주차장에서 브라이언과 만나 잠시 인사를 나누고 함께 우체국 직원 오피스로 향했다. 문을 두드리자 린다가 나와서 우리를 맞아주었다. 린다는 우리가 속한 플랜트의 총괄 매니저이자 6주간 우리를 담당할 슈퍼바이저다. 그는 매일같이 몸에 꽉 끼는 검정 스웨터를 걸치고 노란 스카프를 목에 매고 다녔는데 구부정한 허리에 늘 목을 빼고 다녀서 플랜트를 감독하러 왔다 갔다 할 때마다 마치 거대한 펭귄 한 마리가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린다도 오랜 세월 우체국에서 일했다. 20년 가까이 여러 우체국을 옮겨 다니면서 일했고, 이 플랜트에서만 10년이 넘게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브라이언과 내가 일하게 된 곳은 우체국 중에서도 인근 지역 소규모 우체국들의 허브 역할을 맡은 우체국이었다. 이곳은 허브라 그런지 규모가 꽤 컸다. 우체국 직원이 되어 경험하는 우체국은 이용객으로서 창구에서 경험하는 우체국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건물 측면으로 나 있는 직원 전용문을 아이디카드로 통과하고 나면 펼쳐지는 우체국 내부는 공장이었다. 곳곳에 쌓여있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박스들과 커다란 카트들, 사용 후 아무 데나 버려져 있는 팔레트 잭, 삐삐 소리를 내며 바삐 움직이는 포크 리프트, 그리고 이름과 기능을 알 수 없는 커다란 쇠붙이 몇 개가 건물 구석에 방치되어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그 쇠붙이들은 한 때 편지 분류 기능을 하던 기계였는데, 오래되어 수명을 다하기도 했거니와 레터 분류 작업을 다른 곳으로 옮긴 뒤로는 쓸모가 없어져서 그저 방치해 놓은 것이라 했다. 린다는 플랜트 투어를 해주면서 졸린 듯한 목소리로 각종 장비의 명칭들과 사용법, 그리고 자주 사용하는 약어들을 가르쳐주었다. 플랜트에서는 수많은 약어들이 쓰인다. APC, SCF, FCM, RTS… 당최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 차차 익혀지겠지. 


화장실과 직원 휴게실을 지나면 하역 플랫폼이 나온다. 트럭으로 외부에서 들어오는 우편물을 받고 내부에서 분류된 우편물을 실어 나르는 공간이다. 앞으로 나와 브라이언이 일하게 될 공간도 바로 이곳이었다. 외부에서 우편물이 들어오면 곧장 롤러가 달려있는 분류대로 이동시켜 종류별, 지역별로 우편물을 분류해서 다시 각지로 배송하는 트럭에 실어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일은 바로 이 우편물을 분류하는 작업이었다. 5시부터 8시까지 3시간 동안 트럭에서 쉴 새 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우편물들을 정해진 시간 안에 분류해내야 했다. 그리고 그 우편물의 8할은 크고 작은 소포들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면접 때에도, 오리엔테이션 할 때에도 우리가 어떤 일을 하게 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다. 그냥 우편물을 분류하는 일이라고만 했다. 우체국 임시직에 지원하면서 상상했던 우편 분류 작업은 편지와 각종 간행물로 가득한 방에서 한 손에는 편지 뭉치를 쥐고, 우편번호를 따라 칸칸이 나누어진 선반에 차곡차곡 분류하는 모습이었다. 브라이언도 나처럼 ‘우편물 = 편지’라고만 생각했다. 아무리 임시직이라지만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최소한 구글링이라도 했으면 이렇게 당황하진 않았을 텐데... 그제야 오리엔테이션에서 왜 그렇게 안전을 강조하고 허리를 다치지 않게 박스를 나르는 방법을 교육했는지 알 것 같았다. 무슨 근거로 나는, 나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교육이라 생각했을까.  


대학 시절, 남들은 과외로 용돈을 벌 때, 나는 우유배달을 했다. 과외를 하기에는 실력도 부족했고 남을 가르치는 게 적성에 맞지도 않았다. 우유배달은 짧은 시간에 하는 노동치고는 대학생 용돈벌이로 괜찮았기에 선택한 일이었다. 더구나 당시 머물던 대학 기숙사 내에서만 우유를 돌리면 되는 일이라 일반 우유배달에 비해서는 그리 힘든 일은 아니었다. 그저 새벽에 일찍 일어나 한두 시간만 수고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우유가 한가득 들어있는 박스를 들고 1층에서 5층까지 계단을 오르내리며 우유를 배달하는 일은 나 같은 저질체력에게는 대단히 도전적인 일이었다. 


밤늦게까지 과제하느라 매달려있다가 두세 시간 눈 붙이고 겨우 일어나 우유배달을 가야 했다. 그런 생활을 한동안 하고 났더니 얻은 것이라곤 구멍 난 학점에 고장 난 허리였다. 그때 얻은 허리 디스크는 지금까지 나를 괴롭히는 고질병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로 나는 다시는 육체노동은 하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는데, 이 나이에 다시 육체노동이라니... 그래, 고작 6주다. 6주만 무사히 버티다 가는 거다. 


공장 투어가 끝나자마자 우리는 바로 실전에 투입되었다. 5시부터 8시까지 첫 3시간은 외부에서 들어온 우편물을 분류하는 일을 한다. 우편물은 종류와 지역, 그리고 클래스에 따라서 다르게 분류된다. 제일 먼저 우편번호를 확인하고 우편물의 종류와 클래스를 확인해서 분류해야 한다. 반송되는 우편물이나 위험물질로 간주되는 우편물도 따로 분류한다. 익스프레스 메일은 들어오는 즉시 따로 우편 행장에 담겨 가장 빨리 나가는 차편에 보내진다. 이외에도 카테고리가 너무 많아 처음에는 무엇을 어디에 분류해야 할지 헷갈렸는데, 이것도 단순노동이라 시간이 지나면서 눈에 익고 손에 익어졌다. 


우편물 분류하는 롤러에서 정신없는 세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나머지 시간 동안은 플랜트 뒤편으로 이동해 또 다른 작업을 하게 된다. 게이로드라고 하는 커다란 골판지 박스에 각종 매거진들이 지역별로 담겨있는데, 그걸  ERMC라 불리는 어른 키만 한 큰 철제 카트에 옮겨 담는 일이었다. 박스는 내 어깨 정도의 높이에 두 팔 길이의 넓이와 폭이라 그 무게도 상당하거니와 허리를 숙인다 해도 박스 가득 들어있는 잡지를 꺼낼 수가 없다. 리프트라는 장비를 이용해서 박스를 90도로 기울여 매거진을 박스 입구까지 털어낸 다음 철제 카트에 하나씩 옮겨 담는다. 첫날 우리에게 이 일을  가르쳐준 사람은 마이크였는데, 그는 박스 아래가 뻥 뚫려있으니 살짝 들어 올려 내용물을 털어내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요령도 없고 힘도 없는 브라이언과 내가 마이크가 한 것처럼 수월하게 했을 리가. 둘이서 한 시간을 낑낑대는 걸 본 켈리가 오더니 딱하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리프트 쓰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열심히 하는 것보다 스마트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러게 말이다. 나도 허리 쓰지 않고 스마트하게 일하고 싶은데, 마이크는 왜 우리에게 그렇게 가르쳐준 걸까. 요령도 힘도 없는 우리에겐 스마트한 방법이 필요한데 말이다. 켈리가 가르쳐준 방법대로 하니 훨씬 수월했다. 매거진을 ERMC에 다 옮겨 담으면 박스에 붙여져 있던 목적지 명이 적힌 태그를 떼어내서 카트에 붙이고 트럭에 싣기 위해 정해진 장소로 이동시킨다. 그리고 그 무지막지한 박스는 요령껏 접어서 차곡차곡 세워놓고, 박스를 받치고 있는 커다란 플라스틱 베이스인 팔렛은 하나씩 포개어 놓아야 한다. 이런 박스를 몇십 개 넘게 처리하고 나면 세 시간이 훌쩍 지나 퇴근할 시간이 된다.


더미로 들어오는 우편물이 카테고리별로 분류가 되고, 박스가 하나하나 해체되어 그 안에 담긴 내용물들이 목적지를 향하는 카트에 실리는 걸 보면서 느끼는 쾌감 같은 게 있다. 단순노동의 묘미랄까. 내 몸이 리듬을 타고 기계적으로 움직인다. 그 시간만큼은 난 잠시 기계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허리와 손목 발목에 무리가 가는 건 사실이다. 


일이 고되기 때문일까. 머리를 쓰는 정신노동을 하지 않아서일까. 사람들은 대부분 친절했고, 오피스 직군들이 사내 인간관계 속에서 흔히들 겪는 정신적 스트레스는 적어도 여기서는 경험할 일이 없겠다 싶었다. 미국에서의 첫 직장생활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비록 6주짜리 임시직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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