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통보를 받고 약 2주가 지나서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되었다. 임시직과 계약직, 정규직까지 모두 뭉뚱그려 한꺼번에 오리엔테이션을 받았다. 사흘 간의 오리엔테이션은 우체국 근무경력 40년 차인 패트리샤(Patricia)가 진행했다. 그는 짧은 은발 머리에 체크남방과 청바지 차림으로 귀에는 연필을 하나 꽂고 나타났다. 환갑이 훌쩍 넘었고 석 달 뒤면 은퇴한다는데 호리호리한 몸에도 무거운 철제 의자 두 개를 한꺼번에 번쩍 들어 올릴 정도로 근력이 예사롭지 않았다. 오랜 육체노동으로 다져진 몸이라 그런 건가 싶었다. 패트리샤는 자신의 핸드폰에 D-day를 표시해놓고 요즘은 디데이가 다가오며 숫자 줄어드는 재미에 하루하루를 보낸다고 했다. 오리엔테이션 참석자 중 누군가가 사십 년 넘게 일한 직장에서 은퇴하는 것이 섭섭하지 않으냐 물으니 어깨를 으쓱하며 “뭐, 약간”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섭섭한 마음보다는 은퇴 후의 삶을 기대하는 마음이 크다며 우체국 일이 비록 몸은 고될 테지만, 은퇴 후의 삶을 기대하며 잘 견뎌보라고 격려해준다.
오리엔테이션에서는 우체국 역사, 윤리교육, 안전 교육, 차별금지 교육 등이 다루어졌다. 특별히 패트리샤는 우체국의 역사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우체국은 1982년도부터 납세자들로부터 세금 한 푼도 받지 않는 독립적인 기관이 되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우표 판매나 각종 우편 서비스 등으로 우체국 운영을 위한 재정을 충당하며 일체 연방정부의 지원은 받지 않는다고 했다. ‘돈 먹는 하마’라는 비난을 받으며 수 년째 지속되는 적자를 이어가는 자신의 회사에 대한 애정 어린 변호로 들렸다.
사람들은 우체국이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는 이유가 이메일의 등장과 UPS나 FedEx 같은 민간 배송업체와 경쟁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인터넷 시대가 도래하면서 우체국의 역할이 일부 축소되긴 했다. 아날로그적 감성을 불러일으킬 목적이 아니라면 요즘 우표를 붙여 편지를 보내는 일은 거의 없다. 공과금과 각종 청구서도 이메일로 날아온다. 우편함에 쌓이는 대부분의 우편물은 광고 전단지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우체국 적자난의 근본적인 이유는 아니다. 오히려 온라인 쇼핑이 늘어나면서 우체국의 영업 이익도 같이 불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체국은 10년이 넘도록 만년 적자에 시달렸다. 문제의 시작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6년, 의회에 느닷없이 ‘우편 책임 및 강화법 (Postal Accountability and Enhancement Act)’이 등장한다.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가 통과시키고 부시가 도장 찍은 이 법은 우체국이 미래의 퇴직자들의 의료혜택을 위한 기금을 미리 충당하도록 한 법이다. 즉, 향후 75년간 발생하게 될 퇴직자들의 은퇴자금을 예상해서 10년에 걸쳐 미리 비축하도록 한 것이다. 이것은 마치 30년에 걸쳐 상환할 수 있는 대출금을 단 5년 안에 미리 준비해두도록 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럴 거면 뭐하러 대출을? 우체국 노동조합의 반대를 무릅쓰고 만들어진 이 바보 같은 법 때문에 2007년부터 2016년까지 매해 약 56억 달러가 넘는 비용을 추가로 지출해야 했고, 내가 일을 시작했던 2018년까지 690억 달러가 훨씬 넘는 손실을 보게 된다. 거기다 유피에스나 페덱스 같은 민간 업체들과 경쟁하면서 정부의 보조금 없이 자체 수입으로 이 모든 비용을 조달하려니 후달릴 수밖에...
평생을 이곳에서 밥벌이를 하며 미운 정, 고운 정을 쌓았던 패트리샤에게 우체국은 직장 그 이상의 의미였던 것일까. 오리엔테이션 동안 회사에 대한 애정을 종종 드러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특별한 기술이 없던 그가 아이 셋을 대학에 보내고 은퇴 이후의 여유로운 삶을 꿈꿀 수 있는 것은 모두 우체국에서 40년간 일한 덕분이라고 했다. 패트리샤와 같이 배움이 짧고 가난한 이들에게 우체국은 중산층으로 진출할 수 있는 희망의 사다리였다.
사흘 간의 오리엔테이션이 마치자 패트리샤는 이번 팀은 정말 최고의 팀이었다며 엄지를 추켜 세웠다. 우리 팀 바로 한 주전에도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했는데, 그 팀은 정말 최악이었다고 했다. 아무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모두가 입 다물고 앉아만 있어 끔찍했다고. 활발하고 농담 따먹기를 좋아하는 그의 성격상 견디기 힘든 팀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냥 하는 공치사가 아니라 정말 우리 팀원들은 분위기가 좋았다. 일단 팀원들의 학습열의와 참여도가 높았다. 다들 농담 따먹기 대회라도 나온 것처럼 쉴 새 없이 재잘거리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었다. 단 일초의 공백도 허용하지 않는 수다쟁이들이 절반은 넘었기에 나는 말없이 조용히 앉아있어도 크게 부담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뒷자리에 앉은 조용한 임시직 네 명의 과묵함이 시끄러운 공기를 중화시켜주는 역할을 해내기까지 했다.
임시직은 나와 브라이언, 쉐이나, 그리고 타냐였다. 이 네 명을 제외한 나머지 일곱 명은 모두 정규직이거나 정규직으로의 전환이 가능한 계약직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한 열한 명은 자신의 계약 상태에 따라 그룹별로 무리 지어 앉았다는 것이다. 첫날은 모두가 섞여 앉았는데, 둘째 날부터는 정규직은 정규직대로, 계약직은 계약직대로, 임시직은 임시직대로 모여 앉았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져 있었다. 계층적 분리는 자발적으로 일어났다. 같은 교육을 받는다고 같은 계급이 아닌 것이다. 아니다. 삼 일간 모두가 같은 교육을 받진 않았다. 오리엔테이션 이튿날 임시직은 반나절 동안 교육이 없어 휴게실에서 놀았다. 정규직과 계약직들만 받을 수 있는 교육이 따로 있었기에 우리는 참여할 수 없었다. 덕분에 과묵한 임시직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 브라이언은 점심도 거른 채 아예 휴게실 소파에 파묻혀 잘 준비를 했다. 나는 집에서 싸온 도시락으로 쉐이나와 타냐와 나누어 먹었다. 샌드위치는 나눌 수 없었고, 집에서 한 움큼 집어 온 쿠쿠다스와 귤을 건넸다. “Oh, Thank you!”로 말문을 연 쉐이나와 타냐의 수다는 세 시간 내내 쉼이 없었다. 이들은 과묵하지 않았다. 단지 말할 틈도, 들어줄 귀도 찾지 못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