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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지안 Aug 11. 2020

곧 마흔, 심리상담을 받기로 했다

프롤로그: 피멍 든 두더지를 치료해야 할 때

지난 10여 년의 직장생활 동안 나의 인생 키워드는 '성장'이었다. 성장할 수 있다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다른 것들은 '희생'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니, 희생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성장을 하게 되면 '부수적인 것'들은 모두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의 돈, 시간, 에너지는 언제나 스스로를 성장시키는데 '투자' 되었고, 조금씩 나아지는 삶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동안 나는 '공부'에 집중했다. 자기 계발서를 끊임없이 읽었고 독서토론, 스피치 수업, 강연이나 세미나 참여, 영어공부, 자격증 및 학위 취득에 매진했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내 분야의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더욱 부족한 것을 느꼈고, 더 많은 돈과 시간, 에너지를 투자할 수밖에 없었다. 


투자를 멈추면 불안했고, 점점 후퇴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던 중에 가끔씩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이 무엇이든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두더지 게임에서 망치를 휘두르듯 온 힘을 실어 내려쳤다. 내 성장을 방해할까 봐 조마조마할수록 더 세게 내려쳤다.


지금으로부터 1년 반 전부터 그 '무언가'의 정체가 어렴풋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분노'와 가장 비슷한 감정인데, 예전처럼 망치로 세게 내려쳐도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두려워진 나는 더 세게 내리쳐봤지만, 나보다 훨씬 강한 힘으로 튀어 오르는 감정을 도저히 주체할 수가 없었다. 너무나도 두려웠다. 내가 통제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움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졌다.


'통제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공포는 곧 불안이라는 친구를 데리고 왔다. 불안을 느끼는 빈도가 높아졌고, 불안을 느낄까 봐 더 불안했다. 악순환의 쳇바퀴에 올라탄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역시 나는 '두더지 망치' 외에는 그 어떤 방법도 알지 못했다. 분노든 공포든 불안이든 그저 내려치기 바빴다. 


바쁜 일상 속에서 통제 불능인 '감정'은 점점 더 힘이 강해졌다. 불안은 더욱 심해졌고, 통제하기 어려운 분노는 더 자주 찾아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불안이나 분노를 일으키는 '상황'을 없애거나 최소한으로 줄이는데 집중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분명해진 것은 '상황'은 언제 어디서나 항상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상황은 그저 일상일 뿐이다. 점점 더 많은 상황에서, 아니 일상에서 불안과 분노를 느꼈다.


불안과 분노를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제일 가까운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다. 거기에는 나 자신도 포함된다. 오히려 적당히 거리가 있는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가까운 사람들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매우 소중한 사람이고 깊은 애정을 주고받는 사이다. 나와 애정을 나누는 사람들이 고통스럽다면, 그것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되고 점점 악화된다면, 분명 이대로 둘 수는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실직을 하지 않았다면, 아직 일을 하고 있었다면, 나는 여전히 '두더지 망치'가 효과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시간이 없고 바쁘다는 합리화로 계속 그 방법을 택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어떤 형태로 튀어나와 어떤 상황이 생겼을지 모른다. 다른 좋은 방법이 필요하다. 하지만 준비된 '퇴사'가 아닌 갑작스러운 '실직'이었기 때문에 경제적인 부담으로 인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망설여지기도 했다.


다시 지난 10년 간의 나의 인생 키워드를 떠올렸다.


'성장'


성장할 수 있다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다른 것들은 희생해도 괜찮다고 생각했지 않은가. 내 불안과 분노를 다스리고 나 자신과 주위 소중한 사람들이 고통에서 벗어나서 행복해질 수만 있다면, 다른 것들의 희생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용기를 내는데 도움이 되었다.


좋은 관계를 맺고 싶고, 깊은 애정을 나누는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은 열망이 강해졌다. 그것이 내가 그동안 그토록 되고 싶었던 '나은 사람'이 아닐까? 


나는 40년 가까이 내 인생에서 감정을 통제했던 '두더지 망치'를 내려놓기로 결심했다. 40년 가까운 긴 세월 동안 두드려 맞았던, 피멍 든 두더지를 마주할까 봐 많이 두렵다. 하지만 마주해야 할 것 같은 강한 느낌이 든다.


심리상담을 예약했다.


"성함 말씀해주세요~~ ^^"

"지안입니다."

"이름이 이쁘시네요~^^"

"감사합니다. 금요일에 뵐게요."


금요일에 만날 상담심리사에게 여기저기 피멍이든 내 두더지를 보여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소중한 사람들이 내가 '두더지 망치'를 휘두르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곧 마흔, 앞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랫동안 살아가야 한다면, 바로 지금이다. 내 안의 피멍 든 두더지를 치료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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