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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옆동네에 가야하는 이유

by 여행가J

숙소에서 나와 잠깐 길 위에 섰다. 왼쪽으로 갈지 오른쪽으로 갈지 맵을 보기 위해서.

내리꽂는 햇살에 정수리는 타들어가는 듯 했고 길 위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는 아찔하게 느껴졌다.


' 오늘은 저녁을 굶더라도 툭툭 타야겠다. '


근처, 손님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툭툭 기사에게 가서 말했다. 해외 유명한 배우가 와서 영화를 촬영한 앙코르와트 옆 동네에, 피로 캄보디아 인들의 피로 물들어진 동네로.


" 킬링필드로 가주세요. "


어느 정도 달렸을까. 40도는 훌쩍 넘는 듯한 온도, 후덥지근한 바람, 뿜어대는 매연연기. 숨이 턱턱 막히는 도로를 달려 툭툭이 일렬로 늘어서있는 곳에 도착했다. 더위에 인상을 한 껏 찡그린 나는 출입구를 통과해 매표소에 갔다. 기계적으로 표를 파는 직원의 얼굴에는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주위를 삼삼오오 모여 서성이는 외국인들의 표정에도 더위의 성가심은 없었다. 그저 귀에 꽂은 해설테이프에 집중해 인류의 참혹함을 마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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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이 슬은 창문을 지나 어떤 공간에 들어갔다. 침대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그 뒤에 벽면에는 사진들이 한 가득 걸려있었다. 대부분 고문 당하는 사람들의 사진이었고 그 끝에 이 모든 학살을 주도한 크레르루주 정권의 장본인이 있었다. 학살의 이유 ( 이유라는 말 조차도 너무 아까운 ) 는 권력이었다. 인간의 욕심이었다. 한 인간의 무자비하고 비이성적인 판단은 한 나라의 몰락을 가져왔다. 안경을 썼으면 지식인이라 반동을 주도한다고 죽였고 피부가 희면 농사를 열심히 짓지 않는 게으른 사람이라며 죽였다. 어린 아이들은 창살이 삐죽 새어나온 것 같은 나무에 돌팔매질 하듯 내쳐져 죽었다.


아직도 킬링필드에 비가 올 때면, 희생자들의 옷가지들이 씻겨나온다고 한다.

아직도 캄보디아 사람들은 그 때의 상처로 큰 소리내고 눈에 띄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직도 캄보디아는 그 때의 시대를 역행하는 사고방식으로 저성장의 늪에 걸려있다.

캄보디아 킬링필드 대학살. 1970년대, 국민의 10분의 1인 150만명이 나고 자란 땅위에 스러졌다.


캄보디아3.JPG


6.25전쟁이후 폐허가 된 우리나라에 쌀을 무상원조해줄 만큼 잘 살았던 나라는 지금 세계 10대 빈국이 되어있다. 프놈펜을 가로지르는 강가로 가면 가족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평화로운 저녁을 맞이하며 웃고 있지만 내 귀에는 나무에 내쳐지는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앙코르와트에는 분명히 캄보디아의 오랜 문화와 역사가 있다. 인류가 보호해야할 세계문화유산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 인류는 캄보디아의 찬란한 문화 외에 처절한 울음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다시는 악랄하면서 멍청하기까지 한 개인의 출현이 반복되어서는 안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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