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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가J Sep 13. 2023

8박 9일을 걸어 안나푸르나를 만나다(2)


이른 아침 짐을 날라줄 포터, 동행분과 함께 게스트하우스에서 출발했다.


한 가정을 책임지고 있는 그의 어깨에 나의 짐도 올려놓았다. 내가 직장에서 나의 노동력과 시간을 제공하고 월급을 받는 것처럼 그도 나에게 노동력을 제공하고 비용을 지불받는다. 삶의 방식도 삶의 무게도 각자의 책임이겠지만 마음이 불편했다. 나만 그런 것일뿐, 그는 돈을 벌게 되어 행복한 미소 뿐이었다.


지프차를 타고 들어갈 수 있는 곳까지 들어갔다. 덜커덩 거리는 돌들 위를 신나게 달렸다. 안나푸르나 가기전에 목이나 허리에 디스크가 올 것 같았다. 살짝 무섭기는 했지만 그때는 몰랐다. 그 덜컹거림이 그저 즐거운 순간이었다는 것을.


돌에 걸려 멈춰버린 지프를 뒤로 하고 두 발로 걷기 시작했다. 게스트하우스부터 쭉 걷는 사람도 있다지만 나와 동행분은 적당한 실리를 택했다. 꼬박 9일을 걸어야하는데 힘을 아낄 수 있는 부분에서는 아끼자고 합의했다. 지프에서 내려 꽤 오래 걸었다. 뒤를 돌아보니 꽤 걸어왔다. 얼마나 지났을까. 핸드폰을 보니,



아뿔싸, 겨우 30분이 지났다. 벌써 힘든 표정을 하는 나를 보며 포터가 말했다.


" 벌써 지친거 아니지? 이제 시작인데? 여기까지 왔다가 내려가면 나중에 후회할걸? "


귀신같이 내 마음을 콕 집어 얘기했다. 동행분도 찔렸는지 같이 웃었다. 날씨는 덥지도 춥지도 않았고 적당했다. 그래도 변덕스러운 봄날씨였기에 더웠다가 추웠다가 몇 번씩 외투를 벗었다가 입었다가 했다. 그러기를 2~3시간. 갑자기 주위에 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 오늘은 여기까지 걸어야겠어. 안개가 진해서 계속 걸으면 위험해. "


안개가 고맙기는 처음이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따뜻한 물에 몸을 녹였다. 머리를 말릴 드라이기는 없었지만 따뜻한 밀크티에 피로가 싹 날라가는 기분이었다. 따뜻한 난로 앞에서 반나절만에 세상과 연결되었다. 


2017년 그 당시 한국사회는 굉장한 혼란에 빠져있었다. 와이파이도 잘 터지지 않는 곳에서 고국의 폭풍같은 정세는 다른 세상의 일처럼 느껴졌다. 현실에서 도피해 안개로 둘러싸인 무릉도원에서 따뜻한 차 한잔을 하는 기분은. 오묘하면서도 복잡했다.



" 내가 지금 이러도 있어도 되는 걸까? " 

" 현실에서 도피해온 것인데, 이 여행의 끝에는 뭐가 있을까? "

"내 인생은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까? "


한 나라의 운명을 바꾼 판결문을 읽으며 내 인생의 향방에 대한 고민도 겹쳐졌다. 복잡한 내 마음과 달리 네팔의 밤 하늘에 뜬 은하수는 속절없이 아름다웠다. 쏟아질 듯한 은하수를 온전히 즐기지 못한 것은 한국에서 가지고 온 현실에 대한 고민과 불안함 때문이었으리라. 



밤 7~8시면 소등하는 숙소. 몸은 피곤했지만 눈은 말똥말똥 했다. 피곤함에 쫓겨 잠들기에는 불안함이 내 마음 속에 들불처럼 번져갔다. 매섭게 불어오는 바람소리가 왜 그렇게 애처롭게 들리는 건지.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그렇게 히말라야의 품 안에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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