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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Republic Mar 02. 2023

작가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글

독자가 개같이 몰입하는 글은 어떤 글일까?


작가는 늘 독자의 사랑을 원한다


예전에 펀딩을 했던 독립 출간 책을 거의 1년 만에 완독 했다. 두껍지도 않은 책을 완독 하는데 1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이유는 이 책이 서울이 아닌 나의 본가에 배송되었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책의 초반부에 흥미를 잃어버렸다.


흥미를 잃었다는 말보다는 책에 몰입하는 것에 실패했다는 말이 좀 더 정확할까. 3명의 작가가 사랑에 관해 쓴 에세이 책으로 소제목을 달고 거기에 엮인 일화를 풀어내는 식이었다. 각각의 일화는 3~5페이지 정도. 시처럼 짧지도 그렇다고 긴 분량도 아닌 그런 글.


그렇게 6개월 전에 시작한 독서를 이제까지 질질 끌어 오다가 오늘 본가에 온 기념으로 책을 다시 손에 쥐었다. 그런데 책을 침대까지 가져왔음에도 흥미가 생기지 않아 휴대폰으로 인터넷 서핑을 계속했다. 


이제 오늘 남은 일은 독서밖에 없을 때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책을 들었다. 그렇게 순전히 부채감으로 시작된 독서는 마지막 이야기에서 아주 큰 변화를 맞이했다


마지막 이야기가 여운이 남아 읽고, 또 읽고, 계속 읽어 그 내용을 모조리 외워버리겠다는 의지가 발현됐다. 그러다 결국엔, 이 책의 저자들의 SNS 계정을 방문해 전남친에 빙의한 것 마냥 샅샅이 훑었다. 그러고선 책을 한 무더기나 사버렸다. 나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그저 그런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2명의 저자의 에세이를 다 읽고 마지막 1명이 남았을 때, 난 곧 맞이할 해방감에 설레었다. 길고 긴 이 책의 여정에 드디어 마침표를 찍는구나.


누군가 완독을 하면 '참 잘했어요!'라고 도장을 찍어주는 것도 아닌데(더욱이 그럴 나이도 훨씬 지났지만) 독서를 하는 사람이 아닌 책을 수집하는 사람이라면 완독에 약간의 집착 아닌 집착증을 가지고 있다. 책 자체가 주는 재미와 흥미보다 그날 할당된 노동량을 채운 사람처럼 의무적인 독서를 채웠다는 자기만의 기쁨.


분명 그랬는데 마지막 이야기에서 마법이 일어났다.


마지막 이야기도 앞선 에세이의 연장선일 거라 생각하며 큰 기대 없이 책을 읽었다. 다른 에세이와 달랐던 점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이야기였다는 점. 


별 기대 없이 읽어 나간 이야기는 중간 부분에서 반전 아닌 반전(클리셰 중의 클리셰)이 터지며 그때부터 나는 화자에 200% 몰입되어 한 마리 개처럼 책에 달려들었다. 등장인물의 적나라한 감정이 느껴질 때면 코끝이 아리고 눈물이 핑 고였다. 작가의 마법에 걸리고 만 것이다.


무언가를 잘한다는 건 그것에 대한 자각이 없을 때 가능하다.


나는 무언가를 잘한다, 혹은 어떤 경지에 들었을 때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 무엇일지 종종 생각한다. 예전에 어렴풋이 그 답을 찾았다. 물론 내가 그 해답을 찾은 것이 아니라 타이라 뱅크스라는 미국 슈퍼모델이 진행했던 리얼리티 쇼에서 발견했다.


차세대 탑 모델이 된다는 미명 아래 10명 남짓한 일반인들이 최종 1인이 되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내용인데 그중 모델과는 전혀 거리가 멀어 보이는 참가자 한 명이 캐스팅된다. 


그녀의 외모는 모델보다는 뿔테 안경을 쓴 조용한 학생에 가까웠는데 그녀가 최종 참가자로 선발되자 심사위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끼가 내재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날고 기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이 세계에서 시들어갈 거라고 걱정하는 이도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그녀는 최종 3인에 들었다. 남자 모델과 짝을 이뤄 촬영한 에피소드에서 파트너의 말이 인상 깊었다. ‘그녀를 자세히 보면 그 안에 무언가 있어요.’ 첫인상은 모델로 전혀 보이지 않지만 그녀와 이야기를 나눌수록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라고. 헤어질 때쯤 그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경력이 전무했던 터라 그녀의 사진 촬영 결과물은 극과 극을 달렸다. 그녀조차도 좋은 평가를 받은 사진과 탈락 위기에 놓은 사진을 촬영할 때 자신의 태도가 뭐가 다른지 몰라 어려움을 겪는다. 난 늘 최선을 다한다고!


하지만 표지 촬영에서 심사위원의 극찬을 끌어낸 사진을 찍었다. 인터뷰 장면에서 그녀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표정으로 웃으며 말한다. ‘이제 알았어요! 내가 무엇을 하는지 인식하지 않으면 되는 거예요!




사람의 머릿속에 오래 남는 건
이해되지 않는 얘기다.


마치 그녀는 목욕탕에서 진리를 발견한 아르키메데스처럼 환희에 차 말했지만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무언가를 잘하려면 그걸 인식하지 않아야 한다고? 그게 어떻게 가능해?’ 


인간의 뇌는 신기하다. 계속 생각하고, 답을 알고 싶은 주제는 자신이 의식하지 않아도 끊임없이 그 답을 찾으려 노력한다. 나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그녀가 어떤 의미로 얘기를 한 건지 이해되는 단계가 되었다.


인생을 반추해 보면 내가 무언가 잘했던 시기는 그걸 잘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 성과에 연연하지도 않던 순수한 때였다. 그걸 회고하자면 초등학생 시절까지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이 슬프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육상 코치는 내가 뛰는 걸 보더니 부모님에게 날 선수로 키우자고 연락했다. 나는 내가 잘하는지도 몰랐고, 그냥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부모님에게 그런 연락이 왔다. 그 소식을 받은 나는 로봇처럼 아무런 감흥 없이 받아들이고 그저 넘겼다.


부모님은 당연히 선수 제안을 거절했고(우리 집안은 대대로 공무원이 많아 자식(?)들도 자연스럽게 공무원과 같이 안정을 지향하며 조용히 사는 분위기다. 나만 좀 돌이변이.) 나는 학교 경기가 있으면 그게 당연하다는 듯 출전했는데 재밌는 일은 그다음에 일어났다. 


주변 사람의 관심과 응원을 받기 시작하면서 내가 그 사실을 인지해 버린 것이다. ‘내가 정말 잘하는 건가? 난 그냥 하는 건데. 혹시라도 실수하면 어떡하지? 1등을 놓치면 날 싫어하는 거 아닐까?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


무언가를 잘하고 싶은 욕망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 가지게 되는 감정이다. 비단, 남들에게 성과를 보여야 하는 것뿐 아니라 ‘사랑을 받고 싶다’라는 개인의 감정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시간이 흘러 혼자 이런 결론을 내렸다. 아마추어는 ‘자신이 잘하는지에 대한 자각 없이 잘하는 것’이고 프로는 ‘자신이 잘하는지에 대한 자각을 하고 있으면서 잘하는 것’이라는 걸. 그리고 그 잘한다는 경지는 위와 같은 단계가 아닐까.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인식하지 않는 단계라고.



저기요, 
개똥철학 말하는 시간 아닌데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글쓰기를 잘한다는 건 결국, 이렇다는 것이다.


글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큰 노력 없이, 애쓰는 것 없이 술술 읽히는 글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화자에 몰입해 그의 감정에 공감하며 화내고, 아파하며 눈물짓고, 웃으며 환희를 느끼게 만드는 마법을 부리는 것. 그게 결국에는 살아남는 글이며 독자들이 몰입하는 글이자 독자가 작가를 사랑하게 되는 글이다.


몰입하는 글을 만드는 하나의 공식을 말하자면 시작 부분에는 독자들의 뇌에 충격을 주지 말고 가랑비처럼 젖어들어야 한다


힘을 준 표현이라던가 과한 감정 묘사, 비현실적인 상황으로 독자를 놀라게 하지 말라. 자극적인 장면은 되려 그들을 위축시켜 독자와 작가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든다. (웹소설의 경우, 세부적인 테크닉이 들어가야 하므로 1화에 반드시 후킹이 들어가야 하지만 결국에는 웹소설도 비슷한 결이라 생각한다.)


‘그래, 나도 이런 적 있지, 이럴 수 있지’라고 서서히 공감을 얻어내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하는 순간, 예상치 못한 곳에서 독자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반전을 선사하자. ‘와, 이게 이렇게 된다고?


그 이후에는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사랑의 묘약을 마신 것처럼 글을 끝내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게 된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이 이야기의 끝을 보게 만드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마법이 아닐까.




#글쓰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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