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국민학교 때까지 살던 동네는 대구직할시 서구의 끄트머리 동네였다. 옆으로는 북구와 맞닿아있고 위쪽으로 한 동네를 더 지나가면 바로 중구랑 연결되는 위치였다. 당시의 대구는 지금보다 훨씬 더 활기차던 도시였다. 골목마다 작은 공장들이 있었고, 그중에서도 북구와 서구는 대구의 큰 공업단지들을 품고 있었다. 시장이고 상가고 다 물건을 사고파는 이들로 북적거렸었다.
내가 살던 동네는 공단과 시내에서 멀지 않았고 교통이 편했으며 큰 시장도 서쪽에 하나 북쪽에 하나 있었다. 그런 동네였음에도 아파트 보기는 힘들었다. 오래된 동네였지만 재개발할 정도는 아니었고 규모가 큰 주택가였다. 거기에다 시내도 공단도 가까워 땅값이 비싸다 보니 기존 동네를 밀어내고 아파트를 짓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근처에 놀이터라고는 학교 놀이터가 전부였다. 학교 놀이터에 있는 기구도 정글짐, 철봉, 미끄럼틀 정도여서 그곳에서 노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학교라서 오래되고 과밀이어서 오전반 오후반으로 운영되고 있다 보니 제대로 된 교내 도서관은 기대도 하지 못했다. 책 읽기가 좋았던 나는 한동안 부모님이 사주신 세계명작 전집과 과학전집 책으로 욕구를 달래고 있었다.
고학년이 되면서, 집에서 두 개의 큰 도로를 건너야 갈 수 있던 시립 도서관에 혼자서 갈 수 있게 되었다. 사춘기가 되어 놀이터와 골목에서의 놀이가 시들해진 난 하교 후에는 주로 도서관에서 놀았다. 이제는 시립 도서관들을 무료로 이용하지만 그때는 몇십 원의 돈을 내고 이용권을 사야 했다. 국민학생의 버스비가 60원 하던 시절이었고 도서관 이용료는 내가 기억하기로는 30원 정도였던 것 같다.
몇십 년이 흐르는 사이 신축건물이었던 도서관은 서른 살이 훌쩍 넘었고 리모델링으로 알록달록해졌다.
표를 사서 내 기억에 어린이 열람실이었던 1층 자료실로 들어서면 사서의 책상 옆으로 큰 스티커 판이 있었고 당월 독서회원으로 신청한 아이들이 읽은 책의 양을 스티커로 표시하고 있었다. 도서관 가운데로 들어서면 빙글빙글 돌아가는 원형 책꽂이가 있었고 거기에는 보물섬이나 소년 중앙, 어깨동무 같은 만화잡지가 꽂혀있는다. 월초에 가면 서로 먼저 신간을 읽어보려고 줄지어 서 있는데, 줄 서기에 성공해서 갓 들어온 빳빳한 신간 만화잡지를 볼 수 있는 날은 최고로 멋진 날이었다. 원형 책꽂이 주위로는 책을 읽거나 앉아서 공부할 수 있는 6인용 책상들이 줄 서 있었고, 그 책상들 뒤로는 길고 낮은 책장들이 빽빽이 서 있었다. 나는 책상에 앉아서 가지고 간 문제집을 풀거나 숙제를 하기도 했다. 해야 할 과제가 다 끝나면 서고 사이로 가서 읽고 싶었던 책을 꺼내서 책장에 기대어 앉아 무릎에 책을 올려놓고 읽곤 했다. 서가에서 나는 특유의 책 냄새 속에서 보내는 기분 좋은 시간들이었다.
도서관에서는 매달 독서회원을 모집했다. 독서회원이 되면 종이 흑 표지와 갱지 더미의 윗부분을 까만 종이끈으로 묶은 독서기록장을 주었다. 내가 책을 읽고 독서기록장에 독후감을 써서 제출하면 사서 옆에 있는 현황판에 스티커가 하나씩 붙었다. 1등을 해도 상장과 도서관 이름이 박힌 노트 한 권이 전부였는데 그게 뭐라고 국민학교 졸업할 때까지 정말 열심히도 참여했었다. 누런 갱지에 샤프로 꾹꾹 눌러 읽은 책을 쓰고 나면 하나의 스티커를 받았다. 월말이면 다른 회원들의 스티커 개수와 나의 스티커 개수가 비교가 되면서 몇 권을 더 써야 할지가 계산이 되었는데, 내가 몇 권이 뒤쳐진 상황이고 시간이 없으면 급해진 마음에 다 아는 책을 골라서 요약만 하던가 서문이나 작가의 소개글에 쓰인 평을 베껴쓰기도 했었다. 그런 날이면 사서 선생님의 눈이 마주칠 때마다 가슴이 두근두근거렸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서 선생님은 내가 어떻게 쓰는지 전혀 신경도 안 쓰고 있었으니 혼날 거리도 없었는데 베껴 쓴다는 것이 많이도 부끄러웠었나 보다. 아무튼 의미 없던 나의 스티커 받기 경쟁도 중학생이 되면서 멈췄다.
시험기간이 되면 도서관 매표소 앞은 중고등학생이나 대학생들이 길게 늘어선 줄로 북적거렸다. 그 줄을 서지 않기 위해선 아침 일찍 도서관 문 열기 전에 줄을 서서 문 열자마자 들어가는 것이었다. 열람실의 이용권은 남자, 여자 열람실을 종이의 색으로 구분하고 있었고 표에는 이용할 좌석번호가 쓰여 있었다. 아침 일찍 들어가서 공부하다가 졸리면 구내매점으로 내려갔다. 내가 제일 좋아하던 간식은 야채크래커와 자판기 밀크 커피였다. 커피에 야채 크래커를 적셔서 눅눅해졌을 때 먹는 맛은 어떠냐면, 크래커가 주는 텁텁한 맛과 커피의 쓴 맛은 사라지고 야채의 감칠맛과 짭짤한 맛과 커피의 달달함만 남아서 입안에서 섞이는 맛이다. 그렇게 간식을 먹고 나면 다시 늦은 점심을 먹으러 집에 갈 때까지 책상에 앉아있을 에너지를 얻었다.
도서관에서 오후까지 있다가 집에 가는 길에는 종종 국기 하강식을 맞닥뜨렸다. 태극기가 깃대에서 내려와서 차곡차곡 정리되면서 사이렌이 멈출 때까지 가던 길을 멈추고 정자세로 국기에 대한 경례하고 있어야 했다.
그런 나의 도서관 살이는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더 이상 도서관에 갈 필요가 없어지면서 끝이 났다.
내 딸들은 나와는 달리 도서관에 가도 오래 있지 않는다. 내가 살고 있는 신도시에는 국립도서관, 시립도서관, 아파트와 주민센터에 있는 작은 도서관, 그리고 학교 도서관 등등 도서관의 종류도 많고 개수도 많다. 학교 도서관에서도 웬만큼 책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 더더욱 학교 밖 도서관까지 갈 필요를 못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가끔 아이들이 도서관에 가서 책 읽고 싶다고 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앉아 있다 보면 나의 아이들도 신간 잡지와 만화책 코너에 제일 먼저 들른다. 4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도 너희나 나나 아이는 똑같구나 하는 생각에 웃음이 난다. 그러면서 도서관에서 머무는 이 시간이 나중에 아이들의 기억 속에도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웠던 시간으로 남았으면 하고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