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출동. ○○아파트 화재출동. 아파트 복도에서 타는 냄새. 신고 건수 다수.”
어둠을 뚫고 출동하는 소방차에서는 쉴 새 없이 무전이 흘러나온다. 덜컹덜컹. 파손된 노면을 지날 때마다 소방차가 흔들린다. 온몸으로 진동을 느끼며 무전기를 잡은 박용희 소방관.
“지휘 팀장이 알린다. 현재 화재 위치가 정확히 어딘지 모르는 상황. 현장 도착하면 층별로 모두 확인할 수 있도록.”
현장 도착. 윙윙. 소방차 사이렌 소리가 고요했던 아파트를 깨웠다. 잠옷 바람으로 대피한 주민. 창문 너머로 소방차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주민. 여기까지는 익숙한 모습이다. 하지만, 박용희 소방관을 가로막고
“불났어요? 어디서 불났어요? 뭐가 탔어요?”
“확인 중입니다.”
어쩌면 궁금한 게 당연하지만 이제 막 현장에 도착한 소방관을 막아 세우며 꼬치꼬치 캐묻는 주민들의 모습은 세월이 훌쩍 흘러도 익숙하지 않다.
“지휘 팀장, 여기 구조대! 1 ․ 2호 라인 상층부 이동하면서 세대별 확인 중”
지휘팀도 구조대, 진압대와 아파트를 오르내리며 화재 발생 위치를 찾기 위해 분주했다. 한층 한층 오를 때쯤이었다. 중년의 한 남성이 연기가 자욱한 복도에 나와 박용희 소방관을 맞았다.
“아이고, 고생 많으십니다. 어디 불났습니까?”
“네, 지금 이쪽 어디에서 불이 난 거 같은데, 세대별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아! 그래요? 우리 집은 불 안 났습니다.”
“알겠습니다. 복도에 연기가 많습니다. 밖으로 대피하시는게…”
“아이고, 괜찮습니다. 뭐 이 정도 연기로 사람이 죽기야 하겠습니까. 고생하십시오.”
화재 발생이 의심되는 층을 확인했지만, 정확한 위치를 찾지 못했다. 복도에 자욱했던 연기도 차츰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을 때쯤이었다.
“잠깐! 아까 000호 아저씨 있잖아. 내부 확인했나?”
“본인 집은 불 안 났다고 해서 확인 안 했는데요. 아이고, 설마요.”
“내부까지 다시 확인해.”
싸하다. 뭔가를 숨긴 듯한 표정과 말투. 어색한 행동까지. 박용희 소방관은 진압대와 함께 다시 그곳으로 향했다. 딩동딩동!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세요?”
“소방관입니다. 확인할 사항이 있어서요.”
“왜요? 우리 집 불 안 났어요.”
묻지도 않은 말에 ‘불이 안 났다’고 한다. 촉이 온다. 분명 여기다. 스르륵. 문틈 사이로 얼굴만 살짝 내밀며,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우리 집 불 안 났다니깐요.”
“그러니깐요. 내부만 확인을 볼게요.”
현관문 앞 실랑이가 오가고 겨우겨우 내부에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문을 열고 들어가자 타는 냄새가 집 안 가득 배어있었다. 싱크대에는 음식물로 까맣게 더깨가 앉은 냄비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불이 났으면 났다고 말씀을 하셔야죠?”
“아니. 그게 동네 창피하기도 하고, 죄송합니다. 벌금인가 과태료인가 나온다고 들어서… 무서워서 그만”
허탈했다. 창피해서? 벌금? 과태료? 때문에 그랬다니. 그 덕분에 박용희 소방관과 동료 소방관들은 두 번 세 번에 걸쳐 현장을 다시 확인해야만 했다. 허탈하니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큰 화재가 아니라 다행이라며 애써 직원들을 위로하며 소방차에 다시 오른다.
<광주서부소방서 박용희 소방경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